여전히 곁에 계신 ‘아, 문학의 어머니’
매체명 : 한겨레신문   게재일 : 2009-04-26   조회수 : 4994
<토지>의 작가 박경리(1926~2008·사진) 선생의 1주기(5월5일)를 앞두고 추모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1주기 기념행사는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 옛집에 꾸며진 ‘박경리문학공원’에서 22~26일 열린 추모 사진전 및 시화전으로 이미 막이 올랐다. 이어 선생의 고향이자 묘소가 있는 경남 통영에서는 다음달 4~5일 유족이 참가한 가운데 1주기 추모제가 열린다. 4일 강구안 문화마당에 일반인이 참배할 수 있는 추모관이 설치되고 이날 저녁 청소년수련관에서 추모의 밤 행사가 열리는 데 이어 5일 오전 10시 산양읍 신전리 선생의 묘소(박경리 공원)에서는 공식 추모식이 진행된다.

서울 강남 신사동의 갤러리 현대에서는 5일부터 24일까지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제목의 시화전이 열린다. 같은 제목으로 나온 선생의 유고시집에 실렸던 김덕용 화백의 그림을 중심으로 선생의 육필원고와 유품, 사진, 영상자료 등이 나와 독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각계 인사들의 추모 글과 아기 때부터 노년까지 선생의 사진 20여 장을 함께 묶은 책자 <봄날은 연도에 물들어>(마로니에북스 펴냄)도 간행되어 선생을 향한 그리움을 달래 줄 예정이다. 문학평론가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도 <토지> 연구서 <박경리와 ‘토지’>(강 펴냄)를 1주기에 맞추어 내놓았다.

선생의 외동딸인 김영주 토지문화관장은 “어머님이 돌아가신 지 1년이 돼 가는데도 부재가 느껴지지 않고 늘 곁에 계시는 듯한 느낌”이라면서 “지자체들을 중심으로 어머니를 기리는 열기가 뜨거운 것은 감사할 일이지만, 지나치게 방만하게 일을 벌이는 것은 자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원주시가 연세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연구용역을 의뢰한 기념사업의 윤곽이 드러났다. 임성래 연세대 근대한국학연구소장과 건축가 정기용(성균관대 석좌교수)씨, 디자이너 안상수(홍익대 디자인학부 교수)씨 등이 연구위원으로 참여해 작성한 용역보고서는 △박경리 지도 만들기 △박경리 문학공원 정비사업 △기념 도서관과 세계문학 테마파크 등 토지문화관 사업 △<토지> 정본 작업과 전집 발간 등을 뼈대로 삼고 있다. ‘박경리 지도’는 작가 생전의 생활지도, 작가의 인맥 지도, 소설 공간 지도, 원주의 문화 인물 지도 등으로 세분된다. ‘박경리 문학공원 정비사업’은 현재의 문학공원을 재정비하고 문학공원 앞 건물을 매입해서 자료관으로 리노베이션하는 내용을 포함한다. 또 토지문화관에는 기념 도서관을 짓고 지하 수장고를 마련해서 선생의 유품을 보관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문학공원 정비사업과 토지문화관 사업을 맡은 정기용씨는 “문학공원 자료관 리노베이션은 이르면 올해 ‘토지의 날’(8월 15일)까지 마무리할 예정이지만 더 늦어질 수도 있다”면서 “자료관이 마련되면 첫 사업으로 선생이 생전에 손수 지어 입었던 옷들을 가지고 근사한 패션쇼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기념 도서관은 올해 설계를 마치면 2~3년 뒤에 완공될 것”이라며 “기존의 토지문화관 외곽에는 ‘비극의 집’ ‘대가문의 몰락’ ‘세계문학의 뿌리들’ 등 세계문학을 테마별로 조감할 수 있는 세계문학 테마공원을 조성해서 <토지>를 더 큰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토지> 정본 작업 역시 절실한 형편이다. <토지>에 관한 연구서만 네 권을 낸 ‘<토지> 전문가’ 최유찬 연세대 교수는 지난 2003년에 발표한 ‘<토지>의 성립과 판본의 변이 양상’이라는 논문에서 현행 <토지> 텍스트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정본 작업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최 교수는 “나남본 <토지>는 기존의 16권짜리를 21권으로 늘리는 과정에서 기왕의 편과 장 제목이 상당수 바뀌었으며, 두 문장이 한 문장으로 되거나 대화 한 토막이 사라지기도 하고 심지어는 여덟 줄에 가까운 문장이 몽땅 날아가 버린 경우도 있다”면서 “건물 하나 짓는 데 수십 억 드는 것에 비하면 <토지> 정본 작업은 그 10분의 1 정도의 비용으로 엄청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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