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우리를 인정하라”…투쟁은 계속된다
매체명 : 한겨레신문   게재일 : 2009-04-27   조회수 : 4712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⑦ 악셀 호네트

1949년 독일 에센에서 태어났다. 1996년 하버마스의 후임자로 프랑크푸르트대 철학과 교수가 되었고, 2001년부터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산실인 사회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오늘날 독일의 진보적 사상을 말한다면 누구나 마르크스를 기원으로 지목한다. 이른바 헤겔 좌파적 전통을 계승한 마르크스의 인간해방 사상은 부단한 혁신을 거치며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사회이론으로까지 이어지는데, 호네트는 1세대인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 2세대인 하버마스의 뒤를 이은 프랑크푸르트학파 3세대의 대표자로 일컬어진다. 1세대가 ‘계몽의 변증법 테제’를 통해, 그리고 2세대가 ‘의사소통행위이론’을 통해 현대사회를 비판했다면, 호네트는 이들의 지적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인정이론’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비판이론을 발전시키고 있다. 국내에 번역된 저서로는 <인정투쟁> <물화> <정의의 타자>가 있다.

사회는 사회적 인정의 대상과 내용을 확장하려는 인정 투쟁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투쟁은 자신을 무시한 상대방을 파괴하려는 것도, 자신을 무시한 사회 자체를 철폐하려는 것도 아니며, 새로운 인정 질서를 형성함으로써 개인의 삶을 보호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도덕적 정당성을 갖는다.

악셀 호네트의 사회비판이론은 인정 행위의 도덕적 의미에서 출발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타인의 인정을 지속적으로 경험할 때 자신에 대한 긍정적 의식을 형성할 수 있으며, 이러한 긍정적 자기의식 아래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인간의 삶을 생물학적 생명 보존이 아니라, 자기의식에 기초한 자아실현 과정으로 이해한다면 타인의 인정은 성공적 삶의 조건일 뿐만 아니라 행복한 삶의 조건이 된다. 왜냐하면 타인이 나의 인격을 존중하거나, 나의 개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나 또한 자신에 대한 자신감, 자존심, 혹은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면 나는 만족스런 삶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타인의 무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어떨까. 사실 타인의 무시를 지속적으로 경험할 때 인간은 스스로를 무시하기 쉬우며, 이러한 부정적 자기의식 하에서는 적극적 자아실현은커녕 생존 자체에 대한 의지까지도 포기하기 쉽다. 과연 그 누구의 인정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자신의 존재와 삶의 가치를 확신할 수 있을까? 아무리 독불장군이라도, 지금은 아니지만 그 어디에선가 자신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지 않다면, 자신에게 향하는 수많은 손가락질과 고독을 감당해 낼 순 없을 것이다.

도덕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마땅히 따라야 할 도리 같은 것인가. 왜 우리는 그것을 따라야 하나. 아마 그래야 인간 사이에 질서가 생기고 갈등도 해결된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질서가 필요하고 갈등이 해결되어야 하는가. 이는 결국 타인의 훼손 행위로부터 개인의 삶을 보호하자는 것 아닌가. 인간의 자기의식이 타인과의 상호작용 관계에서 형성되며, 인간의 삶이 이를 실현하는 과정이라면 인간은 타인의 부정적 반응에 쉽게 상처받는다. 따라서 인정 행위란 개인의 성공적 자아실현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개인의 삶을 보호한다는 점에서 도덕적이며, 반대로 타인을 무시하는 행위는 개인의 삶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부도덕하다.

이렇게 인정 행위의 도덕성을 전제한다면 이를 통한 사회 비판 역시 가능하다. 왜냐하면 누구를 인정하고 무시하며, 또한 어떤 존재로 인정하는가는 개개인의 임의적 기준에 따라 다양화되는 것이 아니라, 흡사 그 기준을 일반화할 수 있는 반복적 현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인정과 무시 행위를 통해 사회구성원들 간의 일상적 관계에 모세혈관처럼 파고드는 일종의 사회적 질서, 곧 사회적 인정질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으며, 이러한 사회적 인정질서 속에서 사회 구성원들이 과연 인정을 통해 성공적 자아실현을 보장받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비판할 수 있다.

그런데 현대사회를 고찰해보면 모든 사람이 완전한 사회적 인정을 향유한다든지, 아니면 모든 사람이 사회적 무시 때문에 전적으로 자아실현의 기회를 상실하는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의 자기의식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형성될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성장하기 때문에 지금은 비록 사회적 인정을 향유한다 하더라도 새로운 자아정체성 요구가 등장하면서 기존의 인정질서와 대립할 수밖에 없고, 또한 기존의 사회적 인정에서 배제된 사람들 역시 자아실현의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현존 사회에 저항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사회적 인정질서와 갈등하는 개인이 증가하고, 또한 이들의 갈등 경험이 일반화되고 집단화될 때 현존 사회는 사회적 인정의 대상과 내용을 확장하려는 인정 투쟁에 직면하게 된다. 곧 성공적 자아실현, 행복한 삶의 조건을 확보하기 위한 사회적 저항과 집단적 투쟁이 가시화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투쟁은 자신을 무시한 상대방을 파괴하려는 것도, 자신을 무시한 사회 자체를 철폐하려는 것도 아니며, 새로운 인정질서를 형성함으로써 개인의 삶을 보호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도덕적 정당성을 갖는다.

1987년 형식적 민주화가 달성된 이래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급격한 변동은 국민의 자기의식이 성장함에 따라 새로운 인정 요구가 제기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급격한 이혼율 증가가 말해주듯 부부 관계에서 사랑이란 요소가 중요성을 더해가며, 이제 남성과 여성은 전통적 성역할의 담당자가 아니라, 자신을 그 누구와도 대체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로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정치 엘리트의 권력 장악 수단으로 변질됨에 따라 이제 국민은 촛불집회에서 볼 수 있듯이 단지 선거 때 한 표 행사하는 ‘한 표 민주주의’를 넘어서 명실상부한 주권적 존재로서 우리 사회의 의사결정 주체로 인정받길 원한다.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그로 인한 경제위기가 양극화 현상과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극대화시킴으로써 단지 사회복지의 확대만이 아니라, 정규직 고용 노동자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비정규직, 실업자 모두를 사회적 노동 주체로 인정하자는 요구가 강화되고 있다.

커밍아웃이란 유행어가 말해주듯 사회적 소수자들의 등장은 동질성에 따른 것이 아니라, 이질성을 포용하는 새로운 사회적 유대 형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가 서로를 자아 형성의 주권자로 인정할 것을 함축한다. 또한 세계화가 확산됨에 따라 흡사 세계가 개인을 구성원으로 하는 하나의 통합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으며, 모든 인간이 세계 공동체 내에서 향유할 수 있는 보편적 권리가 쟁점이 된다. 이는 이제 인류의 자기의식이 서로를 세계시민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데 이르렀음을 말해준다.

이렇게 남녀 관계에서부터 정치·경제·문화·국제 영역에서 일어나는 사회변동을 ‘인정’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면 오늘날 진보적 사회운동의 규범적 목표가 새로운 인정 요구에 맞추어 기존의 사회적 인정질서를 변혁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문성훈/서울여대 교수

문성훈씨는 연세대 철학과와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독일로 유학해,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악셀 호네트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귀국한 후 인정이론을 체계화하고, 이를 통해 현대 사회 변동과 한국적 상황을 분석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현재 서울여대 현대철학 담당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현대철학의 모험>(공저), <하버마스가 들려주는 의사소통 이야기> <이성의 다양한 목소리>(공저)가 있고, <인정투쟁> <정의의 타자 >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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