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 대한 그리움 연기하다 보면 갈증이 좀 풀릴까요”
매체명 : 경향신문   게재일 : 2009-01-13   조회수 : 6106
연극 ‘친정엄마와 2박3일’ 출연 강부자

사람은 늙어도 그리움은 늙지 않는 것일까. 칠순을 내다보는 배우 강부자(68)는 ‘친정엄마’ 소리에 금세 두 눈이 붉어졌다. 10년 전 돌아가신 친정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연극 <친정엄마와 2박3일>의 출연도 결정했다. 연극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친정엄마 연기를 하고 싶었다는 얘기다.

“친정엄마요, 글쎄 바다에 비유할 수 있으려나. 어른들 돌아가신 순서대로 저승에서 휴가 좀 보내줬으면 좋겠는데…. 내가 죽을 때가 돼도 평생 잊을 수 없는 존재 같아요. 사람들은 나보고 ‘한국의 어머니상’이다 뭐다 말하지만 사실 어머니 연기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요. TV드라마에서는 겉핥기였죠. 이번 연극 하면 좀 갈증이 풀릴지도 모르겠어요.”

<친정엄마와 2박3일>은 간암으로 3개월 시한부 인생인 딸이 친정에 와 엄마와 보내는 시간을 그렸다. 어찌보면 내용이 뻔하다. 그러나 모녀의 대화를 듣다보면 명치가 아려온다. ‘내 새끼 속 타는 냄새는 엄마가 젤로 먼저 맡고, 내 새끼 가슴에 피멍들믄 엄마 가슴이 더 멍멍헌거여.’ 딸의 병을 모르는 엄마는 오랜만에 친정에 온 딸과 지난날 감춰온 사연과 추억들을 하나씩 꺼낸다. 두 사람은 때론 가시박힌 말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부딪친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딸의 죽음을 알게 되고 애끓는 모정은 보는 이의 마음을 무너지게 한다.

“다행히 내 딸이 미국에 살아서 공연하는 걸 못봐요. 보면 가슴 아플 텐데 잘 됐죠. 어릴 때는 밖으로 나돌아다니는 엄마 밑에서 자랐다는 소리 들을까봐 많이 걱정했는데, 나보다 백배 천배는 더 훌륭한 딸이에요.”

강부자도 천생 친정엄마다. 어느새 이야기는 딸 자랑으로 옮아갔다. 한국에서도 맛보기 귀한 족편을 엄마가 좋아한다며 손수 만들어 야무지게 냉동해 보내온 얘기며, 알뜰히 남편 내조하고 외손녀 키우는 이야기가 끝없다. 며느리도 마찬가지란다.

강부자는 연극 <오구>의 노모 역으로도 유명하다. 전국에서 쉴 새 없이 초청이 와서 계속 공연하는 작품이다. 현재 MBC드라마 <사랑해 울지마>에서는 미수 외할머니 역으로 나온다. 이기적이고 철딱서니 없는 할머니다. 작품에 따라 고향처럼 푸근한 어머니상을, 때론 ‘밉고 맹추 같은’ 어머니를 잘도 그려낸다.

1962년에 데뷔했으니 올해로 연기인생 47년이다. 어떤 아쉬움이 있을까.

“진한 사랑 연기를 못해봤어요. 가끔은 조금만 더 예쁘게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봐요. 그런데 정말 예뻤으면 일찌감치 사라지고 지금껏 살아남지 못했을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아는 언니가 저보고 그래요. ‘꼭 강부자처럼 태어나고 싶다. 배우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평탄하게 살아왔고 국회의원도 한번 해보지 않았느냐. 너는 대한민국이 낳은 세계적인 끼순이다’라고요. 호호.”

지난해는 본의아니게 ‘강부자 내각’ 등으로 이름이 많이 오르내렸다. “남의 이름을 갖고 말하니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고 간단히 말한다. 해가 바뀌면서 특별한 소망을 빌지는 않았다. 그저 예년과 같이 아무탈 없이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할 수 있으면 바랄 게 없다.

“요즘 많이들 힘들잖아요. 지난 외환위기 때도 가족이 헤어지고 고통받은 분들이 많았죠. 그런데 이런 때일수록 가족이 뭉쳐야 해요. 부모들은 제 새끼 보며 힘내고요. 이번 연극도 관계를 모녀로 좁혀서 그렇지 결국은 가족 얘기죠. 아무리 힘들어도 또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는 가족에게서 나온답니다.”

<친정엄마와 2박3일>에는 강부자와 함께 이용이·전미선·이서림 등이 나온다. 작 고혜정·연출 구태환. 오는 17일부터 3월1일까지 동국대 이해랑극장.

<글 김희연·사진 김영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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