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 그의 글은 횃불이다 그의 펜은 칼날이었다
매체명 : 중앙일보   게재일 : 2009-01-24   조회수 : 5717
대기자 김중배
김중배기자 50년 기념집 발간위원회 엮음
나남, 639쪽, 2만8000원

엄혹했던 군사정권 시절, 시대를 밝히는 횃불 같은 글로 읽는 이의 가슴을 뛰게 했던 명칼럼니스트. 적지 않은 기자들을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던 치열한 기자정신을 기리는 글모음이다. 김중배 ‘기자’의 명칼럼을 가려 뽑은 1부와 주변 인사들의 추억담을 담은 2부로 구성됐다. 사실 그는 이력만으로도 빛난다. 두 신문의 편집국장을 지냈고, 신문사· 방송사의 사장도 역임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많은 이들은 그를 논객(論客)으로 기억할 터다.

80년대 초 그의 신문칼럼은 말 그대로 장안의 화제였다. 우선 글이 명문이었다. 긴박감을 주는 문체에 담긴 안목은 깊고 넓어 동서양의 고전을 아우르고, 인문사회과학을 넘나들었다. “인간은 부끄러움을 아는, 또는 부끄러움이 필요한 유일한 동물”이란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명언과 중국의 사상가 맹자의 이루편(離婁篇)에 나오는 부끄러운 남편을 둔 부끄러운 아내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식이었다. 적재적소에 명언과 예화, 석학의 예지를 동원한 그의 박람강기에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현란한 수사법보다 읽는 이들의 마음을 울린 것은 글에 담긴 뜻이었다. 1987년 고문으로 숨진 박종철 군을 다룬 글에서 “뜻이 있거든 촛불을 켜주기 바란다…4천만이 모두 그 촛불을 켜들 때, 이 땅에도 새벽은 온다. 그 새벽이 오기까지 우리는 불면의 뜬눈으로 촛불을 밝혀 나가야 한다.”고 했다. 어쩌면 부당한 국가권력 행사에 국민적 저항을 요구한 이런 글을 당시 감히 쓸 수 있었는지. 그러니 그 자신은 정권의 절필· 추방 위협에 시달렸고 식구들은 행여 가장이 ‘남산’으로 끌려가지 않았을까 날마다 마음 졸였다. 그런데도 그는 달을 달이라 하지 못했다며 부끄러워했다. 현안을 적시하지 못하고 ‘오늘의 일’ 등으로 표현하거나 은유와 수사로 에둘러 뜻을 전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그의 글을 암호 풀이하듯 읽는 재미도 만만치 않았음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작가 최일남은 이 책에 실린 글에서 논객의 붓끝은 필봉(筆鋒)이며 필봉은 그냥 끼적거리는 게 아니라 반드시 ‘휘두르는 것’이라 풀이했다. 그러면서 그를 두고 논객과 칼럼니스트를 아우른, 타고난 언론인이라 평했다. ‘뜨거운 글’을 찾은 이들이 꼭 읽어볼 책이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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