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민병욱의 민초통신 33 外
매체명 : 신동아   게재일 : 2011-08-00   조회수 : 2634
[이달의 추천도서] 기자 민병욱의 민초통신 33 外
저자가 말하는’내 책은…’
기자 민병욱의 민초통신 33 _ 민병욱 지음, 나남, 324쪽, 1만5000원

이 책은 20세기 후반 한국인의 삶에 대한 기록이다. 그렇다고, “독재정치에 신음하면서도 세계가 놀랄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는 식의 거시적 기록은 아니다. 신음하며 기적을 일구어내는 순간순간, 이 악물고 한국사회를 지탱해준 풀뿌리 백성, 그 민초들의 생활기록이다.

나는 1976년부터 30년 동아일보 기자를 했다. 1970년대 사건기자 시절 얻은 별명이 민초(閔醋)다. “식초를 친 듯 시큼한 기사를 잘 쓴다”고 붙은 별명이지만 나는 민초를 ‘풀뿌리 백성’ 민초(民草)로 환치했다. 서민에 뿌리 둔, 서민의 편에 선 기자가 되겠다는 각오였다.

그러나 각오가 평생 가는 걸 본 적이 있는가. 나 역시 어느새 이름 높고 잘난 사람만 취재하는 잘나가는 동아리에 섞여갔다. 유신, 신군부 독재에 재갈 물렸다는 핑계를 대며 찢어지게 슬프고 복장 터지게 가난한 서민의 삶은 애써 외면했다. 위수령 강제징집 요정정치 장발단속 기름밥 삥땅 등 오직 1960~80년대 한국사회에만 있던 단어가 생긴 속사정을 꼼꼼히 전한 것은 그때 못쓴 기사를 다시 쓰고픈 심정이 간절해서다.

어떤 이는 책이 “새로 유행하는 복고풍에 기대 창고에 숨은 옛것을 꺼낸 일종의 추억장사 아닌지?” 물었다. 일정 부분 맞다. 애초 글은 나의 후배가 “쿠데타나 민주화, 압축 경제성장 등 20세기 한국사회 ‘거대담론’은 누구나 안다. 그것 말고 민초들이 살아온 모습을 재현해달라. 한국사회 미시사를 써달라”고 청탁해 비롯됐다.

청탁을 받아들이며 나는 “한국인의 속살을 가능한 한 샅샅이 열어보자”고 다짐했다. 정말 풀뿌리 서민이 울고, 웃고, 앓고, 괴로워하던 얘기를 하리라 마음먹었다. 우리 기억에서 사라진 순간들, 그 조각난 편린을 하나하나 맞춰 내 부모 형제 친구의 오늘을 만든 DNA를 설명해주자 결심했다.

그러니 추억을 되살려 ‘글 장사’하려는 것은 맞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 교수님들이나 언론인 선생님들이 어디 시시콜콜한 집안의 숟가락 하나까지 찾아내 기록해준 적이 있는가? 나는 그래서 ‘숟가락 하나 달랑 들고 감히 한국풍속사 밥상머리에 앉은’ 심정으로 글을 썼다.

책 제목 속 33은 33개의 에피소드로 6780이야기를 시작해 붙였다. 우리의 6780서민사가 33개의 에피소드로 끝나지 않을 것임은 자명하다. 나는 지금도 계속 ‘민초통신’을 날리고 있다. 어쩌면 100개의 에피소드, 그 이상을 띄울 수 있을지 모른다.

바람이 있다. 더 많은 사람이 우리가 살아온 기록을 더 많이 남겼으면 하는 것이다. 21세기 ‘신인류’처럼 살아가는 나의 자식, 손자들이 제 아비 할아버지는 어떻게 살며 어떻게 이 나라를 가꾸었는지 알 수 있게 해주자는 말이다. 민초통신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추억의 삶의 현장은 날개를 타고 계속 이어질 것이다.

민병욱 │백석대 교수·전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
2011년 08월호 623호 (p588~595)
담당·송화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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