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지향적 '개혁 보수'로 사회,국민통합 이뤄내야"
매체명 : 중앙일보   게재일 : 2008-06-05   조회수 : 6690
“미래지향적 ‘개혁 보수’로 사회·국민통합 이뤄내야”
‘공동체 자유주의’ 주창, 신보수 이론가 박세일 서울대 교수

지식인들 시대적 과제 공론화 못해
쇠고기 파동 등 사회적 혼란 생겨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제로 촉발된 국정 혼선을 누구보다 안타깝게 바라보는 이가 있다. 박세일(60·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안민포럼·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며 이념적 지표로 채택한 ‘신보수 선진화론’의 이론적 대부로 꼽힌다. 혼란스러운 현 정국을 그는 어떻게 볼까. 마침 그가 『공동체 자유주의』(나남 출판사)를 최근 펴냈다. 중도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인 안민포럼에서 지난 2년간 한반도 선진화 방향을 놓고 토론한 결과를 엮었다. 이를 기념해 5일 오후 4시30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공동체 자유주의’ 심포지엄도 열 예정이다. 심포지엄에 앞서 우리 시대의 핵심 과제로 그가 이 책을 통해 제시한 ‘공동체 자유주의’가 무슨 뜻인지 들어봤다. 쇠고기 문제로부터 대화를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는 대한민국이 풀어가야 할 시대적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약한 것 같습니다.”

그의 시국 진단이다. 시대적 과제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더 이상의 얘기는 삼갔다. “100일 밖에 안된 정부에 더 이상의 언급은 자제하는 것이 예의”라고 보기 때문이다. 못다한 얘기는 가을께 책을 통해 하겠다고 했다.

그는 시대적 과제부터 짚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전통적으로는 선비라 불린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이라고 했다. 시대적 과제를 공론화 시키지 못한 지식인의 직무유기가 오늘의 혼란을 초래한 주요 원인이라는 지적을 빼놓지 않았다.

“지식인이 정파적 언행만 일삼으며 공부를 안하면 국민이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지식인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뭘까요. 당파적인 주장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객관적 기준인 공론과 정론을 만들어가야 할 것 아닙니까.”

해방 이후 우리가 달려온 건국-산업화-민주화의 진로는 압축적 성공의 역사였다. 하지만 고속압축의 발전과정에는 시행착오와 무리도 많았으며, 또 다른 무리와 오류가 21세기 세계화 시대에도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다고 그는 생각한다.

더욱이 냉전이 아직 끝나지 않은 한반도의 특수 상황으로 인한 가치관의 분열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현실이다. 이념과 역사관 차이의 깊은 골을 남겨 둔 채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고 나아가 성공적 국가발전도 이루어 내기 어렵다고 그는 보고 있다. 그래서 21세기 국정 원리로 그가 내놓은 이론이 공동체 자유주의다.

“개인의 존엄과 자유의 확대를 기본으로 하되 공동체의 건강과 조화에도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제로 주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20세기 좌파의 집단주의와 다릅니다. 자유주의의 장점인 성장·효율성·경쟁력을 국가발전의 기본 동력으로 살려나가면서, 자유주의가 필연적으로 초래하게 될 불평등과 소외계층의 문제를 우리 전통의 공동체주의를 통해 보완했으면 합니다.”

그의 주장은 한마디로 극단적 자유와 극단적 평등 사이의 갈등을 넘어서는 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중도 보수’ 대신 ‘중도 통합’이란 표현을 선호했다. 중도에서 좌·우의 합리적 세력이 만나야 한다는 의미다.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어우러지는 새로운 이념의 미래를 그는 전망했다.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가 정책을 놓고 토론을 하면 대개 70%는 같은 결론이 나옵니다. 이는 20세기와 달라진 21세기 세계화·정보화 시대의 특징이며 세계적 추세이기도 합니다. 개인과 국가가 함께 발전하고 우리가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가야할 길은 이 길 뿐입니다.”

대한민국을 선진화로 이끌 세력에는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모두 포함된다고 했다. 두 세력이 힘을 합쳐 선진화를 이뤄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보수 세력의 솔선수범을 강조했다.

“보수가 앞장서서 사회통합과 국민통합을 이뤄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보수는 좀 더 자기 희생적이어야 합니다. 그랬을 때 국민에 대한 교육과 설득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겠지요. ‘철학적 보수’는 적고, ‘정치적 보수’가 많아 문제입니다. 보수의 자기성찰, 자기반성, 자기개혁이 부족했어요. 이제 과거의 방식으로는 안됩니다. 21세기 세계화시대를 리드할 미래지향적 ‘개혁 보수’가 요청됩니다.”

배영대 기자

◇박세일=1948년 서울 출생. 서울대 법학과 졸업. 미국 코넬대 경제학 박사. 현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이에 앞서 서울대 법대 교수, 대통령 정책기획수석비서관·사회복지수석비서관, 경제정의실천연합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제17대 한나라당 국회의원과 정책위의장, 여의도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학계·시민단체·정계 등을 오가며 쌓은 다채로운 경험을 바탕으로 한반도선진화재단과 안민포럼 등을 이끌며 우리 사회에 아직 낯선 싱크탱크의 선례를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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