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선진화 방안, 공동체 자유주의에 있다
매체명 : 조선일보   게재일 : 2008-05-31   조회수 : 7063
공동체자유주의
박세일·나성린·신도철 공편|나남|454쪽|1만8000원
이선민 논설위원 smlee@chosun.com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난 후 건국·산업화·민주화의 발전 단계를 거쳐온 대한민국의 다음 과제는 선진화이다. 미국·일본·유럽국가들처럼 경제적 풍요와 사회적 품격을 아울러 갖춘 나라를 만들려면 국민의 정신적 지표가 되고 국가 운영의 정책적 지침이 될 이념이 필요하다. 중도우파 학자들의 연구모임인 안민정책포럼은 공동체자유주의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해서 2006년 상반기 매주 토론회를 개최했고 그 결과물을 이번에 책으로 묶었다.

공동체자유주의(Communitarian Liberalism)는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하면서 그 한계를 공동체 정신으로 보완하려는 것이다. 개인의 존엄과 자유를 중시하는 자유주의는 역사 발전의 원동력인 성장·효율성·경쟁력을 가장 잘 달성할 수 있는 이념이지만 불평등과 소외계층 발생이라는 문제를 낳는다. 가족·사회·국가 등 공동체의 가치와 연대를 중시하는 공동체주의를 통해 이를 보완·보강해서 개인과 공동체의 동시발전을 도모하자는 주장이 공동체자유주의다.

이 책은 13편의 논문을 4부로 나누어 수록했다. 1부는 자유주의, 2부는 공동체주의를 다룬 글을 각각 실은 후 3부에서 공동체자유주의에 관한 글을 통해 이를 종합한다. 4부에서는 경제·노사관계·법치·복지·교육·환경 등 각 분야의 정책과 공동체 자유주의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검토한다.



2006년 11월 서울 덕수궁 앞에서 벌어진 청년실업 대책 촉구 가두행진 광경. 복지국가의 정부는 실업·양극화·독과점·환경 문제 등을 시정·완화해야 하지만, 개입 수준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 조선일보 DB

〈자유주의란 무엇인가〉(이근식)는 서양근대사의 산물인 자유주의의 발생 과정과 인간관, 기본원리 등을 정리했다. 시민사회의 주역인 부르주아(중소상공인)들은 인간은 인식과 도덕에서 불완전하다는 전제 아래 사상과 비판의 자유, 관용을 주장했다. 개인의 생명·재산·자유 보장, 만인평등, 입헌주의와 법치주의, 민주주의 등 정치적 자유주의는 보편타당성을 갖고 있지만 자유시장경제를 핵심으로 하는 경제적 자유주의는 빈곤과 사회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필자는 이해 상충을 상생(相生)의 원리로 승화시키자고 주장한다.

〈한국자유주의의 역사〉(문지영)와 〈미완의 프로젝트로서의 한국자유주의〉(김일영)는 한국에서 자유주의 전개 과정을 다루었다. 전자는 조선말기에 개화파 지식인들에 의해 근대화의 이념으로 수용이 모색된 후 반(反) 봉건, 반(反) 제국주의, 근대국가 수립, 반(反) 독재, 반(反) 권위주의 운동에 사상적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본다. 후자는 한국에서 헌정적 자유민주주의가 대한민국 건국과 함께 주어졌고, 그래서 헌법 규범과 헌법 현실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 과제가 됐다고 본다.

〈공동체주의에 대한 성찰〉(박효종)은 왈저·샌들·테일러 등 공동체주의 철학자들의 논의를 중심으로 자유주의적 공동체의 가능성을 짚어본다. 공적 영역이 사적 영역을 압도하지 않고, 타협·협상·양보가 어려운 정체성보다 실용주의에 따른 이익을 추구할 때 자유공동체가 탄생한다고 주장한다.

〈공동체자유주의: 이념과 정책〉(박세일)은 개인을 앞세우는 구 우파와 사회·국가를 내세우는 구 좌파는 모두 인간을 공동체와 분리해서 생각하는 데카르트적 이원론에 기초하고 있다며, 건강하고 유덕(有德)한 공동체를 유지 발전시켜야 개인의 자유가 더 꽃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공동체자유주의의 정책적 실천에 대해서 자유 확대와 공동체 연대, 현장주의와 당사자주의, 역사 존중과 협치(協治)의 원리를 기본 방향으로 제시한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공동체자유주의의 이념적 기초로 동양전통에 주목하는 점이다.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불일불이(不一不異)로 보는 불교에서 공동체자유주의롤 발견하거나(홍성기),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유교의 유기체적 관점에서 시민공동체의 가능성을 찾는다(이상익·손동현). 국가와 개인 사이에서 가족이 복지의 매개 역할을 하는 한국 상황을 공동체자유주의의 실현으로 보는 관점(류석춘·왕혜숙)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 책은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안고 있다. 우선 지적할 것은 필자들간의 미묘한 입장 차이다. 한국자유주의의 역사를 다룬 두 편의 글은 모두 한국에서 자유주의가 서구와 달리 사회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문지영은 그것을 공동체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반면, 김일영은 집단주의로 보아 극복의 대상으로 인식한다. 이익의 정치에서 자유공동체가 나올 가능성이 더 크다는 박효종의 지적에 대해서 류석춘·왕혜숙은 혈연 등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사회자본이 공동체의 출발이라며 반박한다.

다른 하나는 공동체자유주의가 추상적 이념 차원에서는 쉽게 동의할 수 있지만 구체적 정책의 수준으로 내려올 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경제정책(나성린)을 다룬 글은 "경제성장과 효율성 증진을 위해 자유시장경제에 기반을 두되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공동체주의에 입각한 사회복지정책을 채택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교육 부문에서 경쟁과 평준화의 갈등처럼 막상 현실에서는 적절한 균형점을 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이런 점에서 공동체자유주의의 본격적 모색은 이제 시작됐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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