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외교 중요한 시점…‘성화폭력 대처’ 度 지나치면 곤란”
매체명 : 동아일보   게재일 : 2008-05-03   조회수 : 6339
‘이 시대의 원로’김준엽 前고려대총장에게 듣는다 -------------------------------------

《“내 등을 타고 넘어가라고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 시대에 드물게 도덕적으로 상처 입지 않은 원로로 손꼽히는 김준엽(88) 전 고려대 총장은 2일 후배들을 향해 이렇게 당부했다. 나라를 이끌 인재 양성의 의미를 강조한 말이다. 김 총장은 과거 자신이 ‘후배’였을 때는 믿고 따를 ‘선배’가 많지 않아 일기에 ‘선배가 있어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썼다고 한다. 김 전 총장은 일본 게이오대에 재학하던 1943년 일본군에 징집돼 중국으로 파병됐으나 탈출한 뒤 광복군에 합류해 항일 유격활동을 벌였다.》


김 전 총장은 이날 1990년에 냈던 ‘역사의 신’과 1997년에 출간했던 ‘나와 중국’(나남) 개정판을 냈다. 김 전 총장이 쓴 글과 제자나 후배 학자들이 김 전 총장을 주제로 쓴 글을 더했다.


김 전 총장은 이 책에서 후배들이 자신을 뛰어넘어 역사에 남을 일을 더 많이 해 달라는 당부를 여러 차례 했다. 이날 막 완성된 책을 들고 조상호 나남출판사 사장과 함께 서울 종로구 명륜동 자택에서 김 전 총장을 만났다.


그는 ‘역사의 신’ 서문에 “내 나이 이제 90을 바라보게 되어 기력이 모자라 앞으로 다시 무슨 책을 간행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썼다. 그러나 이날 만난 김 전 총장은 2시간 인터뷰 내내 의자에 등을 붙이지 않았고, 과거의 일을 연도까지 정확하게 짚어낼 정도로 정정했다. 시종일관 얼굴에 웃음을 띠었고 우스갯소리를 섞어가며 과거와 현재 이야기를 들려줬다.


김 전 총장은 중국 학계와 정부가 인정하는 중국 전문가다. 최근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 때 빚어진 폭력 사태에 대한 생각부터 물어봤지만 “한국과 중국의 외교 관계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데 도가 지나치면 곤란하다”며 말을 아꼈다. 이어 “티베트 문제는 수십 개의 소수 민족이 있는 중국의 현실을 감안할 때 티베트만의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서도 김 전 총장은 “우리가 계속 문제 제기를 하니까 요즘은 쏙 들어갔다”면서 “동북공정은 중국 정부가 소수민족을 염두에 두고 벌이는 정치적 문제”라고 말했다.


김 전 총장은 군사정권 시절 고려대 총장직에서 물러난 뒤 23년 동안 학문 외길을 걸었다.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총리 직을 맡아 달라는 제안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본분이 아니다”며 이를 거절했다.


김 전 총장은 이날 “딱 한 번 정부와 관계된 직책을 맡은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1972년으로 기억합니다.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박 대통령이 무역으로 번 돈의 1%를 내서 학술 관련 재단을 만들었습니다. 그때 이 재단의 대외 원조 고문을 맡아 달라고 해서 해외에 한국학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맡았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까지 해외에 한국학 연구 기틀을 다지느라 애쓴 것은 1958년 미국 하버드대에 교환교수로 갔을 때의 경험 때문이었다고 그는 밝혔다.


“세계에서 제일 좋다는 그 대학 교수들이 한국을 모르고, 한국이 고유의 언어를 갖고 있는지도 모릅디다. 중국, 일본은 아는데…. 당시 유럽에 갔을 때는 누군가가 ‘한국에도 아이스크림이 있느냐’고 묻더군요. 어떡하든 한국이 있는 대로 인정받아야겠다는 생각, 그러려면 그 나라에서 한국을 연구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 전 총장은 그런 면에서 “지난해까지 목표를 다 이뤘다”고 밝혔다. 외국 곳곳에 한국학 연구 풍토를 조성했고, 특히 중국에는 11개 유명 대학에 한국학 연구소를 설치했다. 상하이 임시정부청사 복원을 비롯해 한국의 역사와 인물이 중국에 남긴 흔적을 찾아 사적화하는 작업도 원하는 만큼 이뤘다고 덧붙였다.


그 덕분에 본인의 생일을 챙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김 전 총장에게 중국의 지인과 제자들은 세 번이나 생일상을 차렸다. ‘나와 중국’에는 그가 85세 생일 때 당시 95세이던 베이징대 지셴린(季羨林) 교수가 붓글씨로 써서 준 축하문이 실려 있다.


‘어찌 미수에만 머물꼬(何止於米), 다수까지 기약하노라(相期以茶).’


88세인 미수(米壽)에 그치지 말고 중국에서 108세를 가리키는 다수(茶壽)까지 건강을 누리며 학문을 계속하자는 뜻으로 써준 글이다.


해외에서 한국학 연구 붐 조성에는 성공했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한국에서 역사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라고 김 전 총장은 지적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표해록’을 쓴 최부(1454∼1504)를 몰라요. 최부는 조선 성종 때 문신으로 당대의 천재였고, 한국 역사상 대표적인 천재인데 말입니다. 요즘 한국 관광객들이 중국에 많이 가는데 관광지만 보고 올 게 아니라 한국 역사가 남아 있는 유적지도 둘러봤으면 좋겠습니다.”(표해록은 최부가 중국 남부에 표류했다가 베이징까지 이동하면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기행문이다.)


김 전 총장에게 최근 한국 사회의 현안에 대한 질문을 꺼냈다. 교수들의 정치 참여에 대해 그는 “나는 능력이 안 되고 취미가 맞지 않아 정치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인간의 기본 욕망이 생존과 돈, 벼슬 욕심 같은 게 아닌가 싶다”며 “정당하게 돈을 번 사람들, 정당하게 벼슬하는 사람들은 존경받아야 한다. 단 돈을 번 사람들, 벼슬을 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정당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후배들, 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기를” ----------------------------------------

아직도 좌우의 이념 대립이 여전한 한국 사회의 현실에 대해 김 전 총장은 “정치적 문제니까 내가 언급할 일은 아니다”면서도 “이것 하나만은 말하고 싶다”며 현실을 지적했다.


“요즘 일부에서 얘기하는 사회주의는 유럽식 사회주의가 아니라 공산주의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러시아와 베트남, 중국의 공산주의가 어떻게 됐습니까. 다 변하지 않았습니까. 안 변한 건 북한뿐인데 그런 북한을 바라보는 건 곤란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북한도 개방해야 합니다. 개방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는 건 세계 역사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역사의 신’에서 “중국 유격대에서 일본군과 싸우며 충칭(重慶)에 있는 우리 임시정부까지 6000리를 장정(長征)하는 동안 너무 고생스러워 동행했던 장준하 동지와 ‘못난 조상이 되지 말자’고 수없이 절규했다”고 밝혔다. 그 목표를 이뤘느냐는 질문에 김 전 총장은 “내 딴에는 못난 조상 되지 않겠다며 하노라고 했는데 후세가 어떻게 평가할지는 모르겠다”며 웃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김 전 총장은 줄담배를 피웠다. 그는 고려대 총장 시절에는 하루에 3갑씩 피웠고 지금은 하루 한 갑이 조금 안 되게 피운다고 했다.


김 전 총장은 “그때 정부가 하도 말을 안 들어서 담배를 많이 피웠다. 이놈이 말을 제일 잘 들었지. 불을 붙여도 가만있고, 밟아도 가만있거든”이라고 말했다. 총장 시절에 워낙 고생을 해서 73kg이던 몸무게가 총장에서 물러날 때 61kg으로 줄어들었다는 얘기도 했다.


여전히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을 묻자 그는 1948년 충칭에서 겪은 일화를 들려줬다.


“그때 신장 결석을 앓았습니다. 한국에 돌아가서 수술을 하려고 톈진으로 배를 타고 갔는데 한국행을 타려면 한 달이나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프기도 했지만 이때 아니면 기회가 없겠다 싶어 피가 나는 소변을 봐가며 베이징을 여행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한국에 들어와서 수술을 할 때는 시기를 놓쳐 돌만 제거하지 못하고 신장 하나를 아예 떼버렸죠. 그때 의사의 권유로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물을 한 컵씩 마셨습니다. 건강 비결을 물으면 물을 마시는 습관 때문이 아닌가 얘기합니다.”


그는 한국처럼 작은 나라는 인재를 키워야 살 수 있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유능한 인재가 혼자 잘해선 안 되며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화와 영어교육의 관련성에 대해서도 그는 “예전부터 영어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는데 국제무대에서 한국을 알리려면 의사소통이 우선 돼야 하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극단적으로 가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말을 부탁하자 ‘역사의 신’ 표지에 쓰인 글귀를 내밀었다.


“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아라. 역사의 신을 믿으라. 정의와 선과 진리는 반드시 승리한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 김준엽 전 총장 약력-------------------------------------------------------------

△1920년 평북 강계 출생 △1943년 일본 게이오(慶應)대 중퇴 △1948년 중국 국립중앙대학 대학원 수학 △1951년 국립대만대학에서 연구 △1958년 미국 하버드대 객원교수 △1971년 건국대 명예법학박사 △1984년 연세대 명예문학박사 △1999년 아주대 명예경영학박사 △1944∼1945년 광복군 참가 △1946∼1949년 중국 국립동방어문전문학교 전임강사 △1945∼1982년 고려대 문과대 교수 △1961∼1974년 유엔총회 한국대표 △1969∼1982년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소장 △1979∼1982년 공산권연구협의회 회장 △1982∼1985년 고려대 총장 △1982년∼현재 고려대 사학과 명예교수 △1989년∼현재 사회과학원 이사장 △1993년∼현재 중국 베이징대, 푸단대, 항저우대, 랴오닝대 명예교수 △1994년∼현재 중국 산둥대 명예교수 △1997∼현재 한국국가기록연구재단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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