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 ‘자율’을 넘어서라
매체명 : 교수신문   게재일 : 2008-04-28   조회수 : 6485
[리뷰]『한국의 세 번째 기적: 자율의 사회』 정범모 지음 | 나남 | 2008

“자율의 성숙은 규제·통제를 최소화하고 자유·자율의 폭을 넓히는 ‘밖’의 역량도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자유·자율을 책임 있고 유능하게 그리고 도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의 능력이라는 ‘안’의 조건도 만족해야 한다.”


원로 교육학자 정범모 한림대 석좌교수가 ‘자율’을 화두로 또 하나의 에세이집을 출간했다. 그의 이번 저작이 돋보이는 이유는 ‘규제의 탈피’에 초점을 맞춘 자율의 논의를, ‘인간됨’이라는 주체의 역량 확대에까지 확장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자율의 사회를 앞선 두 가지 기적, 즉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넘어서는 한국사회의 세 번째 방향으로 설정하고, 이를 위한 토대인 자율의 역량 확대를 본격적인 화두로 제시했다.


자율을 한국사회의 시대적 키워드로 제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 교수는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거의 모든 영역의 문제들의 공통분모가 자율의 문제, 뒤집어 말하면 지나친 중앙집권적·권위주의적 규제·통제·타율이라는 문제였기 때문”이라고 선언적으로 진단한다. 그 선언 뒤에 그가 포착하는 한국사회의 징후들은 여러 가지다. “민주적 선거는 있으나 자유·자율은 없는 민주주의”가 일면적 징후라면, 경제주체들과 교육주체들은 스스로의 의지와 활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부가 정하는 규준에 맞추는데 에너지를 소비해야 한다. 이러한 질서 속에서 사회주체들의 새로운 성취들이 나올 수 없다는 일반적인 ‘자율론’에 정 교수는 동의를 보낸다.


그러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지배질서의 수사로서의 자율론과 달리 정 교수의 자율론은 좀 더 근본적이고 성찰적이다. 우선 그가 말하는 ‘자율’은 성과를 위한 도구적 개념이 아니라 인간이면 누려야만 한다는 아주 본질적인 개념이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 “사람은 자유·자율이 인용되지 않은 정도에 따라 ‘나도 어엿한 한 인간’이라는 느낌을 갖지 못하고, 인간 아닌 개·돼지나 노예나 로봇으로 전락했다는 비애에 잠긴다.” 명령자가 만들어 놓은 범위 내에서만 선택권을 갖는다는 것은 곧 노예로 전락한 상황에 빗대어지는 것이다.
또한 그의 자율론은 무조건적 욕구의 실현 상태를 엄격하게 제한한다. 그가 보는 자율은 “放資가 아니라, 안팎의 여러 가지 제약조건 또는 한계조건 속에서 이뤄져야 하는 ‘자’기규‘율’이다.” 이처럼 정 교수는 스스로 합당한 것인가에 대한 성찰적인 물음을 자율의 기본 개념이자 ‘단서’로 보고 있다. ‘사람대접’을 받으려면 그 자신이 ‘사람다워야’한다는 단순하고도 자명한 이치다.


이러한 ‘단서’가 윤리적 차원에서의 요구로만, 즉 개인의 의지로만 충족될 수 있는 것일까. 원로 교육학자 정 교수는 “단순한 지식의 전달(도덕적 요구)은 자유의 역량에 포함돼 있는 복합적인 사고력, 판단력, 비판력 등의 습득에는 별 효과가 없”다고 지적한다. 주체와 다른 주체들, 그리고 사회적 조건들이 지속적으로 만나는 곳에서 제약조건과 한계조건을 인식해 가는 교육의 과정이야 말로 자율을 위한 전제조건이라는 것이다.
자율은 억압적이고 규제적인 외적 구조도 없어야 하는 것인 동시에, 누군가가 선뜻 쥐어줄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자율’이라는 수사가 난무하는 시대, ‘자’기규‘율’이라는 원로학자의 제언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김혜진 기자 khj@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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