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물 시대’ 해법을 찾아라
매체명 : 한겨레신문   게재일 : 2008-03-06   조회수 : 7020
사회비평’ 봄호 특집

우석훈 지배층부터 속물 현상 벗고 내부 견제·반성 필요
김홍중 공동체 성공가치 너머 자기 스스로의 윤리회복을
장은주 무시·모욕 풍조가 문제…모두가 존중받는 사회로

지난 대선에서 경제 의제는 압도적이었다. 다수 후보들이 유권자들을 부자로 만들어주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부자 되세요’는 새해 덕담으로 자리를 잡았고 어린 아이들도 ‘부자라서 행복하다’고 되뇌인다. ‘경제 만능’의 가치를 앞세운 정부의 출범으로 이런 흐름은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한겨레> 칼럼에서 ‘속물시대의 시작’을 예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익과 돈 제일주의를 추구하는 속물, 속물주의가 한국 사회의 중심가치 및 행동범주로 등장하였다는 것이다.

영어로 ‘스놉’(snob)이라고 불리우는 ‘속물’은 근대 이행기인 19세기 유럽 사회에서 등장했다. 돈과 명예 등 세속적 가치 추구에만 몰두하는 부르주아에 대한 경멸·비판의 어조가 담겨 있다. 계간 <사회비평> 봄호는 특집 ‘속물, 우리 시대의 초상’에서 11년 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고 있는 우리 사회를 속물이라는 개념으로 집중 분석했다.

우석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글 <속물의 정치경제학-만개한 속물의 전성시대에 부쳐>에서 한국과 유럽의 속물현상에서 가장 큰 차이는 지배계급 내에서 속물현상에 대한 자각과 비판이 있는지 여부라고 했다. 그는 한국의 맥락에서 속물을 “중산층 이상의 지배계급 중에서 겉모습과 유행만을 따라가고 정의롭지 않은 행위를 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유럽에서 스노비즘(속물주의)이 발원한 배경에는 지배층 내부의 상호견제가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지배층 스스로 자기계급의 문제에 대한 자각이 ‘스노비즘’의 탄생과 확산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정치적으로 건전한’(politically correct)이라는 단어가 이와 비슷한 구실을 한다. 유색인종에 대해 편견을 가지지 않고, 지나치게 마초적 사유를 하지 않고, 개발도상국에 유연한 입장을 갖는 것을 지배층까지도 ‘건전한’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지배층 내부의 상호 견제는 없고 그들 스스로 거대한 “우리끼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게 우 위원 판단이다. 그는 부동산 투기를 보기로 들었다. 유럽 지배층은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 경우 서로 속물이라고 놀리고 그렇게 하지 않도록 견제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건전한 보수’의 기준도 존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우 위원은 신자유주의의 흐름에 한국식 속물주의까지 결합해 “문제를 풀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한국의 ‘건전한 보수’ 내부의 반성과 견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김홍중 대구대 교수는 글 ‘스노비즘과 윤리’에서 87년 체제에서 97년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세계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축으로 스놉이라는 주체의 형식이 등장했음을 강조했다. 이름하여 ‘스노보크라시’이다. 거대담론이 막을 내리고 의미있는 이야기가 부재한 시대에 한국 사회에서 거의 유일하게 매력적인 동기를 부여하고 특정한 효과를 발휘하는 이데올로기 기능을 ‘스노비즘’이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노비즘은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산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유’와는 거리가 멀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바로 속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스노비즘의 대척점에 ‘윤리’를 뒀다.

김 교수는 푸코가 <성의 역사> 2권에서 차이를 두고 설명한 ‘모럴’과 ‘윤리’의 개념을 통해 스놉의 시대를 극복할 방안을 성찰한다. 모럴은 “가족, 교육기관, 교회 등과 같은 다양한 규제체제를 통해 개인이나 그룹들에 제시되는 행동규칙과 가치들의 총체”이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공동체의 준칙들, 즉 명령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윤리는 자신 고유의 판단과 성찰과 행위 양식을 뜻한다. 가족이나 학교 등 공동체의 모럴이 제공하는 확고한 해답(성공)이 의심되고 부정되면서, “자신을 알고” “자신을 배려할때” 윤리적 삶에 다가갈 수 있다고 김 교수는 적었다.

그는 “스노보크라시의 시대는 모럴 과잉의 시대”라면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부여된 정체성이 균열되는 과정에서 그것을 넘어서는 보다 공적인 주체성의 가능성이 움틀 것이라고 적었다.

장은주 영산대 교수는 글 ‘상처 입은 삶의 빗나간 인정투쟁’에서 속물주의 이면에는 “우리의 근대성에서 일상화된 체계적인 모욕과 무시의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면서 “모든 개인이 평등하게 존중받으면서도 그들의 자질과 속성이 저마다 나름의 방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정치적 조건을 만들어낼 수 있는 비판적 문화운동과 정치”가 절실하다고 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이전글 산다는 것이 생명에 대한 연민이더라    
다음글 당신 마음속의 속물 근성을 해부한다
prev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