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밥' 먹고 살기로 결심한 순간… 9인의 文人, 초심을 추억하다
매체명 : 한국일보   게재일 : 2008-01-05   조회수 : 7293
[한국일보 2008.1.5] 글밥먹고 살기로 결심한 순간...9인의 文人, 초심을 추억하다
내 인생의 글쓰기
김용택 등 9명 지음 / 나남 발행ㆍ208쪽ㆍ9,000원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는 2005년부터 월 1회꼴로 저명 인사가 학부모 대상으로 독서의 중요성을 강연하는 ‘어머니 독서문화마당’ 행사를 열고 있다
. 이 책의 공저자 9명(시인 김용택 도종환 신달자 안도현씨, 소설가 김원우 성석제 안정효 우애령씨, 동화작가 서정오씨)은 모두 이 행사의 강연자로 나섰던 작가다. 이들은 청중에게 생생한 육성으로 전했던 문학과 독서, 삶의 이야기를 글로 되살려 달라는 위원회의 청탁에 응했고, 인세를 소외계층의 독서 활동 지원에 내놓기로 했다.

한국일보의 2002-2003년 기획연재 제목이었던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를 비틀어 이 책의 주제를 표현하자면 ‘나는 왜 문학을 하게 됐는가’다.

문학하는 자로서 자기 존재 증명을 시도한 것이 전자라면, 후자는 작가로서의 삶의 기원을 탐색하는 작업이다. 아홉 저자가 밝히는 원체험들은 글을 매개로 만나오던 작가의 내밀한 경험을 읽는 재미를 넘어, 호모 리테라리우스(문학적 인간)를 탄생시킨 압도적 감동에 공감할 기회를 선사한다.

저자 여럿은 독서가 자신을 거듭나게 했다고 말한다. 성석제씨는 일곱 살 때 오래된 서가에서 꺼내든 동시집에서 느닷없이 느낀 전율을 증언한다. “싸아악, 하는 소리가 났다. 쥐벼룩이 떼로 몰려오나 싶었지만 쥐벼룩은 그런 소리를 낼 정도로 크지 않았다. 그 소리는 바로 내 정수리의 머리카락이 감동으로 곤두서는 소리였다.”(101쪽) 그 감동을 재현하려 “문자와 단어와 문장을 만들고 연결하고 풀었다 재조합하는 일을 하기 시작”한 데서 성씨의 문학은 시작됐다.

60년 평생을 섬진강이 흐르는 고향 전북 임실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살아온 김용택씨에게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을 짊어지고 시골 마을로 찾아든 월부 책장수는 구원 같은 존재였다.

그가 2년간 갖고 온 헤세, 괴테, 니체, 이어령, 박목월, 서정주의 전집을 탐독하며 김씨의 박람은 시작됐고 “생각이 많아지고 머릿속이 복잡하니, 자연히 그 복잡한 것들을 정리할 수 밖에 없었다.”(22쪽) 그게 글쓰기였다.

신달자씨의 시는 신산한 삶의 역정에서 일어났다. 고등학교, 대학 시절을 거치면서 일찌감치 문재(文才)를 인정 받았지만 결혼 생활에 대한 부적응으로 정신적 고통과 무기력을 겪던 한때를 그는 진솔하게 고백한다.

“사람들은 말했다. 너의 불행이 너의 시를 존재케 한다고. … 어찌 시가 인간의 불행을 담보로 주어지는 것이던가. 나는 하느님께 대들었다. 적어도 신은 인간에게 그런 보상의 거래를 해서는 안된다고 외치며 비명을 질렀다.”(131쪽) 이런 불행은 젖먹이를 들쳐업고 다시금 시 공부에 매달렸을 때 비로소 치유됐다.

번역가로도 유명한 안정효씨는 열정적으로 외국문학 원서를 찾아 읽던 1960년대 대학 생활을 추억한다.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가 69년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안씨의 모교 도서관에 있는 영어판 <고도를 기다리며>의 대출카드엔 그가 62년에 빌렸다는 기록 뿐이었다는 것이 안씨가 자랑스레 밝히는 일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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