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 9명 '작가의 길' 고백...'내 인생의 글쓰기'
매체명 : 국민일보   게재일 : 2008-01-03   조회수 : 7246
[국민일보 2008.1.3] 문인 9명 작가의 길 고백...내 인생의 글쓰기
내 인생의 글쓰기(나남)

“책은 꿀 같았다. 책을 읽다가 새벽이 되어 마루에 내려서면 코에서 뜨거운 것이 떨어졌다. 코피였다. (중략) 그렇게 헌책을 사서 읽기를 몇 년, 내 생각은 푸른 나무처럼 자라났고, 산처럼 솟았다. (중략) 생각이 많아지고 머릿속이 복잡해지니, 자연히 그 복잡한 것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나의 글쓰기의 시작이었다.”(김용택 시인·22쪽)

문학인들이 작가적 삶의 계기를 털어놓은 ‘내 인생의 글쓰기’(나남)가 나왔다. 김용택 김원우 도종환 서정오 성석제 신달자 안도현 안정효 우애령씨 등 대표작가 아홉 명이 참여했다. 이들이 한결같이 얘기하는 첫 걸음은 다독. 송나라 구양수가 얘기한 글을 잘 쓰기 위한 삼다(三多)의 첫 번째다. 촌에서 자랐던 ‘섬진강 시인’ 김용택씨의 책읽기는 성인이 돼서야 시작됐다. 산골 분교의 교사였던 그는 월부 책 장사가 어느 날 들고온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을 계기로 독서 세계에 침잠했다. 체내에 남의 글이 쌓여가자 자연스런 배변의 욕구처럼 자신의 시를 쓰게 됐다고 털어놓는다.

소설가 김원우씨는 “다른 재주는 없는 한심한 위인이었으나 유일한 장기 하나가 책읽기였다”고, 안정효씨는 “청년시절 무엇보다 맹렬하게 시간과 노력을 쏟아바친 외딴 길이 책읽기의 폭주였다”고 고백한다. 안씨의 독서 편력은 영어소설에까지 뻗쳤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서강대 영문과에 들어갔던 그는 문학도, 영어도 너무 모른다는 자괴감에 빠졌고 방학이면 도서관에서 책에 파묻혀 살았다. 우리말 문학전집과 영어소설을 말 그대로 폭식했다. 이것은 습작으로 이어졌고 대학시절에 훗날 출간 된 영어소설 ‘은마는 오지 않는다’를 썼다.

여성 작가들은 가정과 글쓰기를 병행하는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결혼으로 시인의 꿈을 접었던 신달자씨는 뭔가를 찾아 헤매는 마음의 병에 걸렸다. 어느 날 아이 울음을 뒤로 한 채 미친듯 종로거리를 걷던 그는 우연히 박목월 선생을 만났고 그토록 찾았던 것이 시였음을 알게 됐다고 적었다.

여기까지 글쓰기는 그들의 인생일 뿐이다. 그들처럼 나도 쓰고 싶은 욕구가 있는 독자라면 아동문학가 서정오씨의 글을 읽어봄 직하다. 그는 “글쟁이들은 ‘낯선 사람을 만났다’고 하면 될 것을 괜히 ‘생소한 이방인과의 조우’라고 어렵게 쓴다”며 작가들의 권위의식을 비꼬는 한편 “이제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삶 속에서 터져 나오는 생각과 느낌을 쉽게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작가가 되는 데 면허증 따위는 필요없다”면서.

손영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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