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의 길을 따라] "무엇이 옳은가 질문하고 삶으로 답하세요"
매체명 : 매일경제   게재일 : 2019-07-18   조회수 : 610

만년의 퇴계가 세운 세 칸짜리 초름한 한옥, 그 이름은 도산서당(陶山書堂)이다. 퇴계는 세로 54㎝, 가로 22㎝인 현판을 직접 써서 툇마루 옆에 걸었는데, 두 번째 한자는 한눈에도 미소를 자아낸다. 해서체 뫼 산(山)이 아니라, 뾰족한 삼각형이어서다. 경복궁 전각 현판을 죄다 쓴 명필(名筆) 퇴계가 상형(象形)으로 장난을 친 것이다. "익살스러운 현판이지요. 퇴계가 왜 그랬을까요. 자신의 권위에 짓눌러 두려워하지 않도록, 제자와 후학이 편하게 오르도록, 자신을 낮추는 경(敬)의 사상을 실천한 상징입니다." 현판을 가리키며 말을 잇는 인물은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74)이다. 1971년 제10회 행정고시로 공직생활을 시작해 통계청장, 조달청장,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차례로 거쳤고 노무현정부에서 기획예산처 장관을 역임한 그다. 지난 4월 퇴계 이황(1501~1570)이 서울 봉은사에서 안동 도산서당까지 향하던 450년 전의 귀향길을 재현해 언론의 주목을 받더니 이번엔 퇴계의 정신을 알리고자 `퇴계의 길을 따라`(나남 펴냄)를 출간했다. 퇴계의 `물러남의 가치`를 11년째 역설 중인 그를 18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났다.

 

퇴계의 길을 권하는 사유로 책은 서두를 연다.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개의치 않고 즐겁게 머물다가 조정의 부름을 받으면 사양하다 마지못해 다시 나아가기를 반복한 삶이었습니다." 과거에 머물러 고립되지 않고 현재와의 대화를 끊임없이 시도하는 이 책에는 넘어지는 `7포 세대`, 우리 세대의 욜로(YOLO) 문화, 한·중 공존, 4차 산업혁명 등 2019년 대한민국의 현재를 퇴계학의 시선에서 공감하는 진정성이 엿보인다. 책에 담긴 퇴계의 일화에서는 단절돼버린 세계를 이어 붙이려는 열망까지 감지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민모습을 볼까요. 아동과 청소년의 삶은 최하위고, 노인의 불행도 이루 말할 수 없지요. 리투아니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새로 가입해 한국이 2위로 밀려났다지만 자살률은 이전까지 15년째 1위였습니다. 불행한 사람은 왜 계속 늘어날까요. 반목과 갈등은 왜 날로 심해집니까. 이기심과 물질만능주의가 그 요인이라고 봅니다. 모두가 철저히 `나` 중심이죠. 사람은 미숙하므로 새로운 선진 시민의식으로 나아가야 해요. 그것이 퇴계 정신의 근본이요, 화목과 화합을 앞당기는 길임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평등에의 신념도 정신의 길이었을까. 퇴계 증손주의 일화는 퇴계의 휴머니즘을 드러낸다. 출산 6개월 만에 둘째가 들어서 젖이 나오지 않자, 손자며느리는 곡식에 가루를 타서 끓인 `암죽`으로 첫째를 겨우 연명시켰단다. 때마침 하녀 학덕이 출산하자 퇴계 손자는 조부에게 `학덕을 젖어미로 보내달라`고 애걸복걸한다. "당대에는 흔한 요구였으나 퇴계는 일언지하에 거절했어요. 남의 자식을 죽여 네 자식을 살릴 수 있겠느냐, 신분의 차(差)가 있을지언정 생명에는 차별이 있지 아니하다고…." 결국 증손주는 두 돌께 사망했다.

퇴계 정신은 현실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이기도 했다. 절망과 고통이 심해질수록 퇴계 후손은 세계를 방치하지 않고, 도리어 삶을 버려 세계를 구했다. "퇴계의 11대손 향산 이만도 선생은 24일을 굶어 순국해 불의 앞에서 정신을 지켰습니다. 또 초대 국무령 이상룡 선생은 한겨울 일가족을 만주로 데려가 저항에 힘을 바쳤어요. `무엇이 옳은가(理)`란 질문을 삶의 정수리에 세우고 실천으로서 질문에 답해내는 것, 말(言)에 갇히지 않고 치열하게 답해 저들은 나라를 구했습니다." `나`를 버려야 세계를 구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양선(揚善)을 좇으라는 주문도 탁자 위에 올랐다. 고려를 지킨 정몽주 선생을 두고 퇴계는 다음 문구로 답했다. `허물이 있는 가운데서도 마땅히 허물이 없는 것을 찾아야 하지, 허물이 없는 데서 허물이 있는 것을 찾아서는 안 된다(當於有過中求無過 不當於無過中求有過).` 허물은 덮고 착함을 드러내는 일은 `중용(中庸)` 제6장에 나오는 `은악양선(隱惡揚善)`과 일맥상통한다. "타인의 선행을 찾아내, 육하원칙으로 칭찬하세요. 자아와 타자의 불가능을 가능케 합니다. `양악(揚惡)`은 절대로 하지 마세요. `나`를 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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