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지훈국학상

수상자
이정철
수상작품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약력
1965년 서울 출생
고려대 문과대 사학과 및 동대학원 석・박사 졸업
2006~2008년 미국 UCLA 방문학자
2009~2012년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
2012~2018년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
수상자의 말

제가 쓴 책이 제19회 지훈국학상에 선정되었다는 전화를 받고 어리둥절했습니다. 처음에는 ‘보이스 피싱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화 통화가 이어지며 그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그런데 어떻게 내 책이 이런 상을...”하는 생각이 뒤따랐습니다. 전화를 끊고 역대 지훈국학상 수상자들을 검색해보았습니다. 분야는 조금씩 달라도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송구스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그 마음이 가시지 않습니다.


 대학원에서 저의 첫 공부는 조선후기 사회경제사였습니다. 어찌어찌 석사논문을 마치고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당시 논문주제와도 관련되었던, 학계에서 통용되던 중요한 학술용어 하나가 조선시대 사료에서 나왔다기보다는 외국에서 수입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출처가 어디인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제 느낌이 맞았습니다. 그런데 이 작업으로 뜻밖의 성과를 얻었습니다.


 그 용어의 출처를 찾는 과정에서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태리, 러시아, 미국, 일본 등의 근대화 과정에 대한 해당 국가 연구자들의 연구를 봐야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근대화의 전형으로 생각했던 영국 모델이 사실은 전혀 전형적이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근대화 방식은 나라마다 달랐고, 나아가서는 내재적 근대화가 필연적이라는 것은 어디에서도 실례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합니다. 그리고 근대이전까지 한국은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는 높은 수준의 문명을 운영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암암리에 조선시대 연구자들을 압박했던 서구 중심의 ‘근대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대학원 박사과정 수업을 듣는 기간은 박사논문 주제를 정하는 기간이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기간이 다하도록 논문 주제를 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리 된 데에는 개인적인 생각 하나가 빗장처럼 가로놓였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오래전에 지나가 버린 일들에 대해, 사람들이 별로 진지하게 궁금해 하지도 않는 일들에 대해 전문가가 된다는 것이 지금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는 것입니다. 몇 달 고민 끝에 나름의 타협책을 마련했습니다. ‘어느 시대나 지식인들이 고민한 당대의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조선후기에 지식인들이 어떤 문제로 고민을 했는지 확인하는 것은 지금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런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임진왜란 이후부터 조선왕조실록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논문주제는 저절로 정해졌습니다. 뽑혀진 사료들이 스스로 자기 자리를 찾아갔습니다. 그것들은 세금 개혁 즉 대동법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이 주제에 대한 주장이 실록에 실렸고, 동시에 같은 내용을 문집에도 남긴 사람만 400명이 넘었습니다. 16, 17C에 이 문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이나 입장이 없는 사람은 지식인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대동법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어렵다는 세금제도 개혁 정책입니다. 지금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거대한 개혁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것이 정상적인 국정 논의를 통해서 추진되었다는 점입니다. 저는 대동법을 통해서 조선이 어떻게 국가 현안을 수렴하고, 어떻게 그에 관한 정책을 수립하고, 또 그것을 운영했는지 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저의 첫 번째 책이 되었습니다.


 이후에 저는 대동법 성립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들을 검토했습니다. 조선은 중앙집권적 관료제 국가입니다. 때문에 조선이 어떻게 운영되었는지 알려면 누구보다도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실제로 그것을 운영했던 사람들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제도는 그 자체의 구조적 정합성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도 같은 수준으로 중요합니다. 이것은 저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사료에 반복해서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이, 이원익, 조익, 김육을 다룬 저의 두 번째 책은 이런 작업의 결과입니다.


 이번에 수상을 하게 된 책에 대한 서두가 길었습니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은 제 두 번째 책에 대해 어떤 신문 기자의 긴 서평 제목입니다. 제목의 함의는 ‘그렇게 민생을 위해서 애쓴 지식인과 관료들이 왜 다른 때에는 정치를 그렇게 엉망으로 했나’라는 것일 것입니다. 아마도 조선시대 당쟁을 가리켜 말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거기에 대해 제가 별로 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이 책은 그에 대한 답변입니다.


저는 당쟁이 처음 일어났던 임진왜란 이전 선조 대에 주목했습니다. 알려진 대로 선조 대에 처음으로 사림이 집권했습니다. 그들은 대동법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던 인물들의 아버지 세대입니다. 임진왜란이 선조 25년에 일어났으니 이 시기도 한 세대가 되는 시간입니다.


 이 시기를 접하며 처음 들었던 의문은 이런 것입니다. 적어도 집권 이전 두세대에 걸쳐서 세계관과 가치관을 공유했던 밀도 높은 가치 공동체인 사림이 왜 집권과 함께 내부 갈등에 빠져들었나 하는 것입니다. 16C 들어서 사림은 조광조로 대표되듯이 명확한 정치세력을 형성합니다. 이어서 이황 등에 힘입어 자신들의 세계관에 대한 논리체계를 가지게 됩니다. 선조 대에 빚어진 당쟁이 단순히 현실권력을 향한 욕망 때문에 기존의 신념과 가치를 저버린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피상적입니다. 실제와도 거리가 있습니다. 책은 당쟁이 일어난 선조 8년부터 임진왜란 직전까지 약 15년간을 다루었습니다.


 제가 도달한 결론은 이렇습니다. 집권 전까지 사림은 비판자 역할에 머물렀습니다. 현실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정치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현실에 책임을 질 필요도 없었습니다. 다른 측면에서 이것은 그들이 구체적 현실을 잘 몰랐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자신들의 주관적 신념과 객관적 현실 사이에서 그들은 앞쪽에 치우쳤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암묵적으로 자신들이 집권하면 이상적 정치에 쉽게 도달하리라 믿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집권을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집권 후에 자신들의 처지가 바뀌었음을 즉각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이제 비판자가 아니라 책임지는 입장에 있게 되었습니다. 당쟁이 발생하기 직전에, 처음으로 그리고 당분간 거의 유일하게 상황을 이해한 사람이 이이입니다. 선조 7년 그가 올린 <만언봉사> 첫 문장은 그의 이런 생각을 집약해 보여줍니다. “정치는 시의(時宜)를 아는 것이 귀하고, 일은 실공(實功)에 힘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치를 하면서 시의를 모르고, 일을 당하여 실공에 힘쓰지 않으면, 비록 성군(聖君)과 현신(賢臣)이 서로 만나도 성과가 이뤄지지 않습니다.” 이이는 時宜 즉 시대정신과 實功 즉 구체적 성과를 강조했습니다. 조선후기의 관료와 지식인들이 그를 경세론(Statecraft) 즉 국가 운영 이론의 선구자로 여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책을 낸 이후로 좀 더 앞 시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선조 대에 정치적 갈등을 가져왔지만 임진왜란 등 외침 때마다 의병으로 나섰던 이들, 거대한 개혁 대동법을 성립시켰던 그 신념의 공동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하는 것에 대한 궁금함 때문입니다. 그 공동체의 표준적 인간형이 바로 선비입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는 독서인이지만, 아주 먼 옛날부터가 아닌 15C 후반에서 16C에 걸쳐서 새롭게 만들어진 조선의 새로운 인간형입니다. 그것은 마치 상인(商人)이 초역사적인 존재이지만 부르주아(bourgeois)는 근대에 등장한 역사적 인간형인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시대를 대표하는 이상적 인간형은 특수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갖게 마련입니다. 시대가 바뀌면 이상적 인간형도 바뀐다는 면에서 특수성을 갖지만, 시대가 바뀌어도 이상적 인간성의 일부로 지속된다는 점에서 보편성을 갖습니다. 선비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시대 선비를 그대로 지금 현실에 가져오는 것도 곤란하지만, 그것을 구시대의 유물로만 여기는 것은 더욱 적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조지훈 선생님이 말씀하신 ‘지조’는 선비의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 조선시대 용어로 말하면 강개(慷慨)함입니다. 우리가 선생님의 <지조론>을 읽으면서 내면에 무언가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선비가 여전히 현재적 함의를 가지고 있음을 뜻합니다. 선비에 대한 공부를 하는 중에 지훈상을 받게 된 것이 개인적으로는 우연이 아닌 것만 같습니다.


 끝으로 지나치게 과분한 상을 주신 나남출판사 조상호 대표님, 지훈상운영위원회, 그리고 박길성 조성택 한명기 세 분 심사위원 선생님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상에 못 미치는 공부는 앞으로 채우라는 뜻으로 알겠습니다. 저를 위해서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여러분들께 깊이 머리 숙여 인사드립니다.


 

이정철

 

심사평

심사위원들은 제19회 지훈상 국학 부문 수상작으로 이정철 선생의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2016, 너머북스)를 선정했습니다. 2018년 제18회 지훈상 국학 부문에서 수상작을 내지 못했던 심사위원들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보통 심사 당해 연도에 출판된 저작들을 검토하여 선정하는 것이 관행인 상황에서 이정철 선생의 본 저서가 누락되었던 것은 심사위원들의 실수였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는 제목부터 이목을 집중시키는 책입니다. 저자도 언급했듯이 라인홀드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의 제목과 문제의식을 연상시킵니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는 동서분당(東西分黨)이 빚어졌던 1575년(선조 8)부터 기축옥사(己丑獄事)가 일어나고 일단락되는 1590년(선조 23)까지 15년의 정치사를 탐구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당시는 조선 역사에서 처음으로 사림(士林)들이 정국의 주도세력으로 등장했던 시기입니다. 사림들은 강렬한 도덕적 자부심을 바탕으로 과거 중종∼명종 연간까지 이어졌던 훈척정치(勳戚政治)가 남긴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이상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림들이 공론(公論), 국시(國是)를 내세우며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 했지만 결과는 비극적이었습니다. 그들은 기축옥사라는 정치적 격랑에 휘말려 좌절했고, 조선은 기축옥사 직후 찾아온 임진왜란을 맞아 국망(國亡)의 위기로 내몰리게 됩니다. 도덕적 이상에 불탔던 사림들의 열망이 원치 않았던 파국으로 귀결된 원인은 무엇일까요? 또 훌륭했던 사림들의 인격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작용했던 정치적 힘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저자는 바로 이 두 가지 물음에 메스를 들이댑니다.                 

  심사위원들은 저자가 제시한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 이 책이 지닌 다음과 같은 장점들을 주목했습니다. 우선 수많은 정치적 사건들을 꼼꼼하게 탐구하여 정치적 상황과 입장들을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그려내고 역사적 의미를 분석하여 스토리텔링으로 승화시킨 능력입니다. 조선시대 정치사, 그 가운데 ‘당쟁(黨爭)’에 일찍이 주목한 것은 일본인들이었습니다. 1907년 시데하라 다이라〔幣原坦〕가 《한국정쟁지(韓國政爭志)》를 출간한 이래 식민사가들은 조선의 ‘당쟁’이 ‘사사로운 감정의 충돌’에서 비롯되어 ‘고질적으로 지속된’ 현상으로 매도했습니다. 반면 1970년대 이후 한국 학계에서는 ‘붕당정치론’이 등장하여 ‘상호 비판과 공존’, ‘견제와 균형’을 언급하면서 근대적 정당정치의 성격이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선조대 동서분당과 관련하여 ‘붕당정치론’이 식민사관을 극복하는데 기여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당시 15년 동안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고, 각 사건들이 어떤 연관 속에서 변주(變奏)되어 다음 시대를 규정하게 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고찰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는 ‘주관적 신념’으로써 ‘객관적 현실’에 대응하려했던 사림들을 통해 복잡다단한 15년 동안의 정치사를 생생하게 그려내는데 성공했습니다.

  다음으로 목릉성세(穆陵盛世)라 불리는 선조 시대에 명멸했던 수많은 중요 인물들의 활동, 언행에 대한 서술과 정치적 해석이 탁월하다는 점입니다. 정치의 주체는 사람입니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는 선조를 비롯하여 이준경(李浚慶), 박순(朴淳), 이이(李珥), 이산해(李山海), 김우옹(金宇顒), 정여립(鄭汝立), 정개청(鄭介淸), 정철(鄭澈), 성혼(成渾), 이항복(李恒福), 최영경(崔永慶) 등 당시 인물들의 캐릭터 뿐 아니라 그들이 남긴 언행이 갖는 의미와 미묘한 상호 연관성을 세밀하게 그려냅니다. 주지하듯이 임진왜란 이전의 사실을 기록한 〈선조실록〉은 매우 부실합니다. 전쟁으로 사초(史草) 등이 대부분 불타버렸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치열하게 벌어진 정쟁(政爭) 때문에 사관(史官)의 객관성이 흔들리고, 그에 따라 〈선조실록〉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선조수정실록〉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부실하고 서로 정치적 입장이 다른 두 개의 실록을 앞에 두고 과거의 실제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자는 실록을 ‘크로스 체크’하고, 정치인류학 이론의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각 인물들이 남긴 언행의 이면에 담긴 정치적 의미를 분석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럼에도 선조대 활약했던 수많은 인물들이 여전히 낯설 수밖에 없는 독자들을 위해 책의 말미에 간략하면서도 핵심을 담은 인물사전까지 수록했습니다. ‘사람이 살아 숨 쉬는 정치사’를 지향한 저자의 시도는 성공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오늘 우리의 현실이 떠오르는 점입니다. 특히 에필로그에 실린 저자의 문제의식은 시사적입니다. “사림의 분열은 스스로에 대한 강렬한 도덕적 확신에 기인했다. 이제 사림은 훈척에 대한 도덕적 비판자의 역할이 아닌 국정과 민생을 책임져야 하는 새로운 상황을 맞았던 것이다. 도덕적 확신에 찬 사람은 결국 그것보다 강력했던 권력에 대한 욕망의 자장(磁場)으로 빨려들고 마침내 함몰되었다. 그들은 정치세력 간의 시비가 아닌 민생개혁에 대한 추구가 자신들도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지 못했다.” 

 사림들은 연산군∼명종대의 부정한 정치를 비판했다가 사화(士禍)라는 혹심한 고난을 겪지만 도덕적으로 우위에 서게 됩니다. 그런데 선조대에 이르면 그들은 이제 비판자가 아니라 정책을 집행하는 실행자가 됩니다. 하지만 도덕적으로 완벽하다는 확신 속에 공론(公論)은 자신들의 배타적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독선에 빠지게 됩니다. 저자는 “공론이란 누군가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옳고 그름에 달린 것이다.”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겸허하게 민생을 챙기면서 독선을 극복하지 못해 파국에 이르렀던 사림들에게 아쉬움과 연민의 눈길을 던집니다. 정치가 국민의 고민과 고통을 보듬고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도리어 정치를 걱정해 주어야 하는 오늘 한국의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대목입니다.

  요컨대 이정철 선생의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는 상을 받을 만한 책이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고 싶습니다.

 

제19회 지훈국학상 심사위원회
심사위원장 한명기
심사위원 박길성 · 조성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