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밝은 사랑채에선 금시라도 그대의 기침소리,
그 귀에 익은 기침소리 들여올 듯.

주실에서 - 지훈에게 中에서

주실에서 - 지훈에게
김종길
말로만 듣던
그대의 고향 마을 주실,
내 이제사 찾아와 보는구나.

마을 앞 숲의
후리후리한 나무들을 닮아
그대도 그렇게 키가 컸던가.

지금 그 숲엔
낙엽이 수북히 깔리고
그대 시비도 추워보인다.
안쪽 마을,
그대가 태어나 자라난 집
늦가을 하오의 햇살을 받아

아직도 밝은 사랑채에선 금시라도 그대의 기침소리,
그 귀에 익은 기침소리 들여올 듯.

아 그대는 너무나 일찍 떠나갔구나.
살아 있어도 올해 갓 여든인데
떠난 지 이미 서른한 해라니.
춘설
오탁번
城北洞 그의 집에는
芝蘭이 잠드는 소리가 들렸다.

봄눈이 춥게 내린 날
明仁이와 梅實을 들고 찾았을 때
詩人의 방에는
蘭草가 앉아 있었다.
그는 내실에서
李朝의 흰 장짓문을 열고 나왔다.

보름 후에 말 못할 세상으로 그는 갔다
키 큰 明子가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울지도 놀라지도 않고
그가 닫아버린 風雲의 時代를
덥썩 무심하게 안았다.
그는 磨石에 묻혔다
그의 살이 흙과 섞이는 장면을 본 이들이
우리나라의 지훈을 이야기하고
詩와 人生을 논할 때
나는 磨石에도 논의에도
끼지 않았다.

살과 흙이 섞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글이 흙과 섞이고 바람에 섞이는
아 저 무한한 질서를
나는 무심결에 보았을 뿐

흰 살과 흰 뼈를 거느리고
건너 세상으로
큰 새처럼 날아가는 모습을
추운 난초 옆에서 지켜봤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