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지훈문학상

수상자
김중일
수상작품
《가슴에서 사슴까지》
약력
1977년 서울 출생
단국대 공학부 및 동대학원 문예창작과 석·박사 졸업
現 광주대 문예창작과 조교수
200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2012년 신동엽문학상 수상
2013년 김구용시문학상 수상
2013년 〈시로여는세상〉 작품상 수상
2015년 〈딩아돌하〉 작품상 수상
수상자의 말

어느 아침 수상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그 상은 선배님들이 주로 받으시는 상이 아니냐며 저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습니다.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저도 모르게 제 의식 속에는 지훈상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시인으로서의 어떤 기준이 있었나 봅니다. 앞선 열여덟 명의 수상 시인들의 이름이 그 기준일 것입니다. 먼저 상을 받으신 선생님들도 ‘지훈’이라는 이름을 분에 넘쳐 하셨으니 하물며 저로서는 난처할 정도였습니다.

 시인은, 살아서는 늘 죽음을 끌어안고 죽어서는 늘 살아나는 존재가 아닐까 합니다. 그 때문에 지훈 선생님과 저도 지훈상을 통해 이렇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역대 수상자들과 달리, 77년생인 저는 지훈 선생님의 생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다음 세대를 잇는 수상자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절묘한 이어짐은 시와 시에서도 당연한 듯 발견됩니다. 제 이번 시집의 표제작인 〈가슴에서 사슴까지〉 속의 상처투성이 ‘사슴’이 언젠가 슬픔의 세계에서 벗어나 환한 빛의 세계로 가게 된다면 반드시 걸었으면 하는 궁극의 길이 지훈 선생님의 〈빛을 찾아 가는 길〉에 이미 선연하게 그려지고 있음에 놀랍고 반가웠습니다.


 

사슴이랑 이리 함께 산길을 가며

바위 틈에 어리우는 물을 마시면

 

살아 있는 즐거움의 저 언덕에서

아련히 풀피리도 들려오누나.


해바라기 닮아가는 내 눈동자는

紫雲 피어나는 靑銅의 香爐


東海 동녘 바다에 해 떠오는 아침에

북바치는 설움을 하소하리라.


돌뿌리 가시밭에 다친 발길이

아물어 꽃잎에 스치는 날은

 

푸나무에 열리는 과일을 따며

춤과 노래도 가꾸어 보자


빛을 찾아 가는 길의 나의 노래는

슬픈 구름 걷어가는 바람이 되라.

 

— 조지훈, 〈빛을 찾아 가는 길〉 전문



지난해 제 네 번째 시집 《가슴에서 사슴까지》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등단한 지도 17년이 넘었으니 그 수가 많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왕성하게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나이의 녹록지 않은 일상 속에서도 창작자로서의 긴장과 에너지를 일정하게 유지하려 노력했습니다. 마치 자신의 능력에 맞게 페이스를 조절하는 마라톤 주자처럼 꾸준히 시를 쓰려 했습니다. 그것이 시인이 된 제가 유일하게 원했던 일입니다. 아직 온 길보다 갈 길이 몇 배는 많은 저는 앞으로도 꾸준히 쓰려 합니다. 저의 이런 지속적인 열중은 아마도 결핍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천둥벌거숭이였던 공대생 시절 운 좋게 등단했고, 학부 졸업 후 IMF가 휩쓸고 간 사회에서 저는 줄곧 야근이 잦은 직장인으로의 일상을 살았습니다. 육체적, 정신적 소진 그리고 물리적으로 부족한 시간 등 창작에 열중할 수 없는 상황이, 오히려 제 무의식 깊숙한 곳의 비상 경고등을 항상 작동시켰습니다. 자칫 먹고사는 일상에 통째로 잡아먹히겠구나 하는 긴장감이 제게는 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묶은 네 번째 시집이자 수상작인 《가슴에서 사슴까지》를 저는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기록한 시집이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한때 저는 연시(戀詩)로 가득한 한 권의 시집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4년 봄에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생전 처음 겪은 육친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보름 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죽음이 순식간에 사랑을 집어삼켰습니다. 창작자로서 잡고 있던 방향키를 놓고 멈춰 섰습니다. 한동안 시를 쓰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시를 쓰며 스스로를 치유했습니다. ‘애도’야말로 사랑의 가장 첨예한 마지막 모습이자, 새로운 사랑의 시작이라는 생각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시 힘을 내서 썼습니다. 애도의 시는 애초에 제가 쓰려던 사랑에 대한 시이며, 더 나아가 궁극의 사랑에 대한 시이기 때문에 주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사랑은 늘 상처와 슬픔을 동반하고, 상처와 슬픔을 끌어안고 살아가야 다시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무너짐의 세계, 죽음의 세계를 통해 다시 일어서는 세계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죽은 사람도 계속 살고, 죽은 사람도 살고 있다는 믿음에 산 사람도 힘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제가 시적 상상력으로 도달하고픈 궁극의 지점, 그 사랑의 힘으로 말입니다. 저는 유독 ‘사랑’에 대해 첨예하게 써 보고 싶다는 당초의 계획을 더욱 확장하여 여전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 중의 한 결과물이 이번 시집입니다. 요컨대 저는 제가 원했던, 오직 사랑의 시편들로 가득 찬 애도의 시집을 가지게 되었고, 덕분에 지훈 선생님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살아가며 종종 스스로를 돌아볼 때가 있습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나이 마흔이 넘어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불쑥 안부 문자 보내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번번이 못 보내다가, 지금은 늘 못 보냅니다. 저는 저와 옷깃이 스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렇게 무심하고 무정한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적절한 표현인지 모르지만, 줄 것도 받을 것도 없어 섭섭할 것도 없는 그런 사람 그런 관계 말입니다. 부담 없는 적당한 거리의 사람. 그 오해를 풀기보다 저는 그 간격을 받아들입니다. 단지 건너편 늘 그곳에서 ‘시를 쓰고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시를 통해서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습니다. 시인으로서 시 쓰기를 지속하고 있다면, 저를 아는 분들에게 꾸준히 안부 전하는 시인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가 하면, 저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무시하는 어떤 질기고 이상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느리지만 꾸준히 수행하는 편이지만, 어떨 때는 누가 보더라도 비현실적인 일을 풀기 위해 고심합니다. 후자의 경우 그 과정이 종종 시로 기록되기도 합니다. 몇 년 전 저는 병원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손을 잡고, 황당하게도 이런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부터 아버지를 어떻게 해서 살려야 하나 ….’ 그러면서 정말로 해결책을 고심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런 해결책은 있을 리 없습니다. 그런데도 상주였던 저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단 발인을 좀 늦춰 볼까 하고 생각했을 정도였습니다. 그 사이 뭔가 죽은 사람도 일으켜 세우는 묘안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비현실적인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당시 저는 꽤 진지했습니다. 그래서 눈물도 안 나왔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의 경우 그런 비현실적인 극복 의지가 상상력으로 발화되고 결국에는 시의 몸을 얻기도 했습니다.

 또한 제 상상력의 가장 기본적인 전개는, 세상의 모든 만물은 매우 달라 보여도 무조건 실낱같은 부분이라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그래서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것들 사이에서 연결고리를 찾아 가는 과정의 기록이 곧 제 시가 됩니다. 사실 대부분 실패하지만, 그것은 제 능력이 부족해서이지 나와 너, 이것과 저것 사이를 잇고 있는 부분이 없어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인은, 시를 쓰는 ‘나의 기억’과 시를 읽는 ‘너의 기억’을 잇고 연결하여 ‘우리의 기억’을 만들어 가는 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의 기억과 너의 기억은, 너와 나와 함께 언젠가 잊히지만, 우리의 기억은 지훈 선생님의 시처럼 세대와 세대를 잇습니다. 앞으로도 시가 계속되기 위해서는 시 안에 우리의 기억이 깃들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게 시는 밝은 등불입니다. 여기서 밝다는 것은 단순히 조도가 높다는 뜻이 아닙니다. 너무나 밝은 빛 속에서는 풍경과 사물이 지워집니다. 시가 밝은 등불인 것은, 시를 쓰고 있는 자신의 내면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알맞은 밝기를 내뿜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를 쓰고 읽는 시간에 저는 제 텅 빈 내면의 구석구석을 적나라하게 보게 됩니다. 안 본 데 없이 보고, 혹시 안 본 데가 있나 보고, 본 데를 또 봅니다. 내면의 창틀에 방금 앉은 먼지 하나까지 훑어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자신에 대해서나 제가 사는 공동체에 대해서 대체로 깊은 불행을 느낍니다. 동시에 시인이 된다는 것은, 단지 시만 써서는 안 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임을 알아 갑니다.

 단지 시만 써서는 안 되는 사람이 되어, 어렵게 한 권의 시집을 내면 비로소 뜨거웠던 한 계절을 보냈다는 기분이 듭니다. 흡사 한낮의 열기가 가라앉은 저녁 길에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기분입니다. 한 계절을 떠나보내며, 한 권의 사진첩처럼 시집을 얻는 것입니다. 그 대가로 저는 다음의 낯선 계절이 태풍처럼 북상하고 있는 폭풍전야의 텅 빈 거리에 남겨지게 됩니다. 비바람에 날아가는 것을 붙잡고, 날아오는 것을 얻어맞으며 또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늘 시를 쓰면서 자신이 어떻게 쓰고 있는지 알아채 왔습니다. 이런 막막한 불안, 불안만큼의 호기심이 여전히 느껴지는 걸 보니 제가 쓰기는 또 쓸 것 같습니다. 더구나 지난 몇 년간 차례로 저를 찾아와 준 두 딸들이 나중에 혹시 제 시를 읽을까 하는 기대로 더 노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나 공기처럼 마실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었습니다. 눈물처럼 쏟을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었습니다. 아직까지는 실패하고 있습니다. 실패만 하고 있는 이름 없는 까마득한 후배 시인에 대한 지훈 선생님의 응원으로 이번 상을 기억하겠습니다. 나남출판사와 지훈상 운영위원회에 감사합니다.


 

김중일

심사평

열아홉 번째를 맞는 지훈상 문학 부문의 후보작으로 시단의 중견들이 상재한 이십여 권의 시집들을 골라 검토하였다. 다채롭고 풍성하다는 느낌을 감추기 어려웠다. 지금이 시의 시대인지는 몰라도 시인들이 분투하는 시절임은 분명해 보인다. 이 성찬에 흔연해하는 가운데, 올해의 '지훈상'은 이전보다는 한결 젊은 목소리를 찾아가게 되었다. 시의 젊음과 상의 젊음이 만나 어울리지 못할 까닭은 없다. 목하 시 인생의 절정에 다가선 듯한 김중일 시인의 《가슴에서 사슴까지》가 이번의 수상작이다.


"사슴"은 "죽은 이의 가슴"(<가슴에서 사슴까지>)을 부르는 이름이라 한다. 그것은 죄 없는 죽음의 애틋한 상징이면서 동시에 죽음의 기억과 더불어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시적 화자의 속절 없는 내면을 은유한다. 오래 기억되는 애도의 시편들이 늘 그러하듯 이 시집 역시, '인간은 결코 죽지 않는다'는 오류문이 참임을 입증하기 위한 고난의 상상력을 담고 있다. 《가슴에서 사슴까지》 속의 시간은 2014년 4월과 그 이후 지금까지의 시간이며, 시인은 그때 육친을 여의었고 '세월호 참사'라는 국가적 재난을 목도했고, 이 사태와 더불어 오래 앓아 왔다. 


'세월호'를 두고 많은 시들이 쓰였지만 더 많은 시들이 언어 이전의 상태에서 쓰였을 것이다. '말할 수 없음'이란 형태와 방식으로, 시인들의 몸은 오래 희생자들의 죽음과 삶을 적어 왔고 또 적고 있다. 시인들의 무의식이 '세월호'가 되어서 말해 왔고 지금도 쉼 없이 말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저 자신도 평상시엔 듣지 못하는 이 말들을 의식의 표면에 불러내는 일은 그래서 심연을 들어올리는 일과 다르지 않다. "잊고 있었지만 잊지 못한 그 빈자리"(<흐르는 빈자리>)는 잊지 않겠다, 기억하겠다는 모두의 다짐이 보통 이상의 강박이 되는 고통의 자리이다. 


이 다짐들은, 망각이 얼마나 쉬운 것이고 기억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알려주는 문장들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이 말들은 시인에게는 망각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었고 기억이 얼마나 항상적인 것이었나를 보여주는 표지 같다. 기억의 엄습도 망각의 엄습도 뜻대로 방어할 수 없기에 시집의 화자는 그 둘 사이 어느 지점에서 아득히 정신을 잃을 때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시집의 말들은, 예의 정신 없는 시간을 견디려는 주문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인은 "이 계절이 오는 걸 막을" 수도 없고 "가는 걸 붙잡아놓을 수도 없"(<가슴에서 사슴까지>)는 곤경을 자처하여, 쉼 없이 귀환하는 타자들의 목소리에 제 몸을 내준다. 아니, 그들과 더불어 산다. 


《열자》의 '기인지우' 이야기에는 군걱정에 대한 경계가 들어 있다. 하지만 그때의 중국이 대전란의 시대였음을 헤아려보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의 근심을 현실이 아니라 말할 수 없다. 오늘의 우리도 천붕지괴의 파국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국가가 사라지고 세계에 구멍이 난 비극 가운데서는 하늘이 그저 형체 없는 기운의 공간이고 땅이 단단한 흙의 퇴적임을 믿을 수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 시집의 광활한 배경, 그러니까 우주와 지구, 하늘과 땅과 바다, 해와 달이 등장하는 풍경은 다 시인이 바람과 나무, 꽃과 새와 아이들을 불러 울고 웃는 진혼의 무대이자 부활의 터이다. 이들은 요동치고, 구멍 나고, 거꾸로 서고, 돌아오고, 어딘가로 흘러간다. 세상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우주가 쏟아질 수 있"는 곳에서 모두가 "잿빛 댐처럼 지구를 가둔 땅을 틀어막고 있"(<매일 무너지려는 세상>)는 안간힘의 묘사는 힘차고 아프다.


《가슴에서 사슴까지》가 후보작들 가운데서 빼어나게 수려하다거나 완성도가 가장 높은 시집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 시집은, 미완의 발화들로 된 미완의 형식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심사진은 여기에 스민 내적 불가피성에 감명을 받았다. 수습되지 않은 시상의 희미한 매듭들에 어쩌면 시인도 잘 모르는 진심이 배어난다고 보았고, 이 내면성의 끈질김과 뜨거움이 곧 이 시집을 자신만의 개성으로 들어올린 힘이라 판단하였다. 시인이 떠난 이들의 "여생"을 더 곤히 걸어서 "죽은 사람 산 사람 다 같이 살아가는 이 시집 속"(<나무는 나뭇잎이 꾸는 꿈, 나는 네가 꾸는 꿈>)에 "빛을 찾아 가는 길"(조지훈, <빛을 찾아 가는 길>)을 더 멀리 내었으면 한다. 수상을 축하드린다. 

제19회 지훈문학상 심사위원회
심사위원장 이영광
심사위원 김기택・나희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