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지훈문학상

수상자
김사인
수상작품
《어린 당나귀 곁에서》
수상자의 말
1.
저는 아무래도 착한 수상자 체질은 아닌 모양입니다. 얼떨결에 수상통보를 받자 그날부터 뭐라 딱히 집어 말하기 어렵게 기분이 떨떠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기쁘거나 자랑스러운 게 아니라, 잘 눌러 오던 고약한 심술이 동하면서, 불량한 기분이 들면서, 약간 억울한 듯 야속한 듯 마음이 한쪽으로 자꾸 비뚤어지면서, 그렇다고 싫은 것이냐 하면 또 그건 아니고…. 아마도 성장기의 애정결핍에서 오는 일종의 가벼운 정서장애가 아닌가 합니다. 좋아하는 여선생님 둘레를 뱅뱅 돌다가 정작 머리라도 쓰다듬기면 손을 뿌리치며 패악을 떨던 얄궂은 복합심리입니다.
밖으로만 돌아 온 이런 부류들에게 상이나 칭찬은 난감하고 쭈글스런 일에 속합니다. 머리 물칠 해서 빗고 윗도리 호크 채우고 교장선생님 앞에 차렷하고 서 있는 일입니다. 한마디로 ‘쪽팔리는’ 노릇인 겁니다. 최소한 짝다리쯤은 하고 왼쪽 바닥에 침 한번은 칙 갈길 수 있어야 ‘가오’가 섭니다. 겉보기와 달리(?) 제 속에는 이런 가출 청소년 같은 물건이 하나 쓸개 옆에 들어앉아 있습니다. 겉으로는 혀를 차지만 그 물건을 저는 내심 든든해 할 때가 많은 편입니다.
 
제 언사가 다소간 불량스럽더라도, 이 친구가 지금 상 줬다고 되레 시비하는 건가, 여기지는 말아 주십시오. 태생이 이 모양이라 그리 보일 뿐, 언감생심 그건 아니올시다. 누군가로부터 알아줌을 입는다는 것은 고금을 막론하고 인생의 큰 위안이자 힘입니다. 그 점 세 분 심사위원을 위시하여 이 상을 오늘까지 지탱해 오신 나남출판사를 비롯한 관계자분들께 마음을 다해 감사합니다.
다만 상, 그중에서도 문학상이라는 제도에 대한 원천적 불만은 작은 목소리로라도 좀 여쭈려는 것입니다. 우선 이 나라의 문학상은, 한 사람을 상 주면 나머지 아흔 아홉은 잘못도 없이 가만히 앉아서 자동으로 ‘못 쓴 사람’으로 물을 먹게 되는 꼴입니다. 더 어이없는 것은, 누구도 ‘나 그 상 받고 싶소’ 지원한 적도 없고, 애초부터 상 받자고 시 쓰는 사람은 더구나 없을 것이라는 점입니다(아니, 요즘은 가끔 그런 분이 있다고도 듣긴 했습니다. 심지어 물밑으로 문학상 받자고 섭외도 한다는 믿기지 않는 풍문도 있습디다마는). 절대 다수의 무고한 문인들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줄 세워졌다가 본인도 모르게 밀려나는 형국입니다. 눈 번히 뜬 채 망신입니다. 누가 뭐라 하든 하늘 아래 내가 있다는 꼬챙이 같은 자존심 하나로 가난을 견디는 그들에게 이건 작지 않은 수모일 수 있습니다. ‘누구건 하나라도 받으면 좋은 일이지 뭐’ 어쩌구 김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리지만, 이런 대인배 코스프레는 단연 인지상정에 반하는 것입니다. 문학상 운영이나 심사에 관여하는 분들(저도 포함됩니다) 역시 이런 대목에 오래 고심하고 있음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수상자는 차한에 부재인가. 들여다보면 그것도 아닌 게 상인가 합니다. 문학상의 일차적인 무게중심은 수상자를 기리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실은 그 상이 내걸고 있는 인물이나 가치, 이념을 현창하고 확대재생산하는 쪽에 더 있는 것입니다. 수상자는 그것을 위한 필수 소도구 역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아냥거림이 아닙니다. 임진왜란 이후 팔도에 내려진 열녀문 효자문이 실은 삼강오륜 다시 세워 왕조체제 지키자는 통치방편이었던 것은 두루 아는 바입니다. 그것이 상의 본 얼굴입니다(또한 보이지 않는 반대쪽으로 벌이라는 이름의 차가운 배제를 숨기고 있는 것이 상이지요). “앗다 뭐 그래 쌓소, 지훈 선생 기리고 김 아무개는 상금 받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지.” 이를 말씀이겠습니까. 그러나 이때도 굳이 따져 보자면, 수상자는 누이가 아니고 빛 좋은 개살구인 매부 역할일 따름입지요. 그러니 상 받았다고 으스대고 흥분하고 불콰해지는 것은 한심한 촌티이자 분수를 모르는 비극적 무지에 분명합니다.
 
이상입니다. 10년 전부터 입이 근지럽던 말입니다. 쪼잔하고 삐딱한 트집을 참고 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소수 몰지각한 불평분자는 언제나 있는 것이니, 행여 ‘말 많은 문학상 그럼 없애버릴까’ 식의 극단적인 생각은 말아 주십시오. 기개 높던 대인 지훈 선생님 영전이 아니면 제가 어디서 이런 어깃장을 부려 보겠습니까. 각설.
 
2.
〈완화삼〉(玩花衫)과 〈고사〉(古寺)도 황홀합니다만, 무엇보다 제게 지훈 선생은 〈낙화〉(落花) 한 편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선생의 자전적 고백에 따르면 8・15 두어 달 전, 스물여섯 무렵의 작품입니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꽃이 졌다고 바람을 탓하겠는가. 체념과 달관인 듯, 그 아래로 실은 울분과 한숨이 깊이 스며 있는 탄식입니다. 꽃은 질 만하니 지는 것이겠고, 져야 또 열매와 씨앗의 시간을 열 것이겠습니다만, 꽃이란 처지에서만 보자면 억울하고 섧기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이것까지가 또 ‘꽃 됨’의 생략될 수 없는 일부이겠습니다만). 그렇게 문득 허두를 떼어 글의 처음을 삼습니다. 그리고는 넌즛 소매를 들어 주변으로 시선을 이끕니다.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주렴은, 설사 몰락했을지라도 유생의 서재나 사랑에 어울릴 소품이지요. 더구나 새벽 소쩍새 소리를 ‘귀촉도’라 적고 그 고사의 비통함에 자신을 의탁할 만한 사람이니 시의 주인공은 문자와 서권에 익은 이겠습니다.
 
무엇보다 봄날 동틀 녘을 단 두 마디로 건져 올려 세우는 말짓의 저 품새 좀 보십시오. 이 두 구절의 절묘함은 음양 강약 원근 고저의 대비로서 세계를 포착하고 질서 짓는 한시문 대구의 원리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별은 스러지고(멀어지고/滅) 산은 다가섭니다(가까워짐/生). 수직의 하늘이 높이 훤해지고 대지의 수평이 멀리 열립니다. 그 앞에 한마디씩의 형언이 더해지니, 별은 주렴 밖의 성긴 별이요, 산은 귀촉도 울음 뒤의 먼 산입니다.
 
한 시공간을 손놀림 한 번으로 촤악 열어 세우는 초식이 이러합니다. 노련한 소리꾼의 쥘부채 놀리는 맵시처럼, 한 쾌에 천지와 일월성신(日月星辰) 조수어별(鳥獸魚鼈)이 척 펼쳐집니다. 이것이 깊은 한학 교양의 한국어적 자기실현, 한문이 주가 된 이 땅의 1천 년 문자생활의 내공이 달성한 문어체 문장의 한 진경입니다. 그 우미함과 형언의 적절함은 경이로울 지경입니다.
그다음은 더욱 견디기 어렵습니다.
 
촛불을 꺼야하리/ 꽃이 지는데
 
아아…, 절묘하다는 말은 이때를 위해 있어야 합니다. ‘날이 밝아 오니 불을 끄자’가 아니라 ‘꽃이 지니 불을 끄자’는 것입니다. 꽃이 지는데 차마 촛불을 켜둘 수 없는 것입니다. ‘꽃의 짐’의 저 속수무책 앞에서, 시의 주인공은 촛불을 끄는 것으로 간신히 예를 갖추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꽃 짐’의 참혹에 맞서는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심미적 균형감각이자 동시에 매우 예민한 윤리감각입니다. 이 대목이야말로 미세한 듯하지만 조선적 유가 미학의 한 절정이 과시되는 지점이라고 저는 느낍니다. 동도서기(東道西器)라 할 때의, 그 ‘동도’의 진수가 이런 지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에 묻어 있던 허탈과 울분은 여기에 이르러 비로소 눈부시고 아슬한 심미적 균형을 획득합니다. 〈낙화〉가 이미 한 편의 시로서 아름답지만, 특히 이 귀신이 곡할 대목에 이르러 나는 거듭 찬탄을 금치 못합니다.

그 뒤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이 경이로운 미적 세련, 낭비 없는 형언의 경제는 한 개인의 능력만으로 이를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멀리는 인류가 창조한 말하기와 글쓰기의 신비로운 힘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고, 그중에서도 동아시아 문화권 수천 년 적공의 침전물인 것이며, 그 지극한 한 끝에서 조지훈이란 예민한 단말기가 한국어 버전으로 이 전아한 변주를 구현하고 있는 것이지요.
 
근현대의 한국어 시쓰기들 가운데, 가람 지용 지훈으로 이어지는 이 계보의 노력 속에는 조선어 말하기/글쓰기의 어떤 정수를 살쿠려는 눈물겨운 고심과 모험이 있습니다. 그들이 아니었던들 동아시아 한자문화의 전통을 현대 한국어의 미적 결로 지금만큼 흡수・변환시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근래 ‘동도서기’란 용어에 애달프게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 땅의 백 년 역사(동도서기란 용어가 1876년 개항 이후 쓰였으니 140년쯤이 되겠습니다만, 편의상 ‘백 년’이라고 부르겠습니다)의 지향을 크게 아우를 표현으로 이만큼 적실한 게 또 있을지요. 때에 따라 개화로, 근대화.현대화로, 세계화로, 혹은 개혁으로 포장이 바뀌지만, 그 고갱이의 핵심은 요컨대 동도서기였습니다. 서세동점의 객관적 불가항력과 세불리 앞에서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세웠던 슬로건이자 땅에 떨어진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슬픈 허세와 핑계의 수사이기도 합니다(그 또한 중체서용의 조선판 번안입니다만).
 
우리는 때로 일본을, 때로 미국을 중개지로 삼아 ‘학서‘(學西)에 매진해 왔습니다. 더 모질게 말한다면 흉내 내기와 베끼기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백 년을 그렇게 앞뒤 돌아볼 겨를 없이 사력을 다해 허겁지겁 내달아 와 오늘에 이르러 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아리아리랑이나 얼씨구절씨구, 어즈버 태평연월 대신 ‘오 마이 베이비’를, ‘워나 키스 유 마 보이’를 아무런 어색함이나 반성적 자의식 없이 나른한 콧소리로 즐기는 국영문혼용체의 시대에 마침내 당도했습니다. 동도서기를 넘어 무애자재 혼융원만에 이르렀습니다. 압축성장을 통해 목표를 초과달성한 것입니다. 대성공인가요?
 
저 자신이 그 도도한 대열을 허겁지겁 좇아 여기에 이르러 있습니다. 온 가족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어린 저를 도시로, 서울로 유학시켰습니다. 1974년, 꿈에도 그리던 국립 서울대학교에 눈물을 글썽이며 20년 걸려 도착해 보니 달아 주는 배지에 ‘Veritas Lux Mea’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아는 게 힘이다’도 아니고 하다못해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도 아니고 이런 ‘듣보잡’의 서양 중세방언이 웬 날벼락입니까. 웃다가 웃다가 통곡을 할 코미디가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제일 좋은 학교라고 국립 자 붙여 세금으로 떠받들어 온 학교의 수준이자 정체였습니다(실은 우리 모두의 수준이었습니다).
 
지금의 저 또한 고민이 늘었을 뿐 크게 달라진 바 없습니다. 베껴 온 집, 흉내 낸 집에서 흉내 낸 음식을 먹으며, 흉내 낸 나라의 흉내 낸 시민 노릇을 하며, 흉내 낸 웃음을 웃으며, 공부 흉내, 생활 흉내를 사는 것인 줄 알고 삽니다. ‘시’가 아니라 ‘poetry’의 흉내를 번역투 문장으로 쓰며 시인 행세를 합니다. 심지어 저의 울분조차 어디선가 베껴 온, 흉내 낸 울분이 아닌가 머리털이 때로 곤두섭니다. 어디가 동이고 어디가 서인지, 무엇이 도고 무엇이 기인지, 마침내 알 수 없이 되었습니다.
 
지난 시대의 애국지사처럼 비분강개하며 침을 튀기는 것도 촌스러운 노릇이 된 지 오랩니다. 죽은 조상이나 산 위정자를 탓하는 것도 부질없는 일입니다. 다만 나의 괴로움을 하소연할 따름입니다. 내 삶, 나의 시가 무엇을 하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한국문학은 과연 있는지, 한국인이 한글로 쓰니 한국문학이란 말인지, 깊은 부끄러움과 울분 속에서 돌아보게 된다는 말씀을 드려 볼 뿐입니다.
 
아마 대한민국의 어느 문예창작과에서도 시경과 당시를 가르치지 않을 것입니다. 고려가요와 민요, 옛시조도, 판소리도 가르치지 않을 겁니다. 하다못해 소월과 미당을 읽히는 곳이 몇이나 될까요. 한반도 북부 지역의 한국어 공동체, 연변과 중앙아시아, 북미의 한국어 공동체의 말과 글에 대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대신 그리스 사람의 시학과 하이데거와 보들레르와 네루다와 보르헤스를 가르칩니다. 식은땀이 나게도 나는 바로 그런 문창과에서 선생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한국문학인지 알지도 못하는 채.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의 저 경이로운 심미적 실천과 균형감, 그 안간힘 앞에서 저는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지훈 선생의 〈낙화〉 이후 70년이 경과한 지금, 우리 시가, 그리고 내가 달성하고 있는 시적 동도서기의 기구한 현주소를 생각하면 잠 속에서도 가위가 눌립니다. 듣도 보도 못한 흉한 꼴들이 횡행하는 복판에서, 어떻게 하면 저 ‘촛불 끄기’의 예라도 갖추는 게 될 것인지 막막하고 또 막막합니다. 꽃들은 오늘도 속수무책으로 지는데요.
 
울적한 말씀만 밑도 끝도 없이 늘어놓아 송구합니다만, 지훈 선생께서는 제 등을 두드려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김사인

 

심사평

심사위원들은 본심에 추천된 열 권의 시집을 각자 신중히 검토한 뒤 한데 모여 의견을 교환하였다. 그 결과로 김사인 시인의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를 제 15회 지훈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이 시집이 최근 우리 시단이 거둔 뛰어난 수확이면서 동시에 지훈 선생의 심미의식과 정신적 면모와도 친연성을 띠고 있어 각별한 의의를 느꼈기 때문이다.


김사인 시인은 지금까지의 시력에서 인간과 현실과 역사 어느 한 방면도 소홀히 하는 바 없이 자신의 시적 과제로 감당해 온 시인이다. 모두가 새로움을 쫓아 제각기 질주하는 시대에 문학 동네의 후위에 남아 오래된 듯하지만 여전히 소중한 문제들과 씨름해 온 이력의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어린 당나귀 곁에서》는 서정과 리얼리즘이 드물게 높은 수준에서 한몸이 된 경지를 열어 보여준다. 서정시의 발상과 문법에 충실하면서도 동시대의 사람살이와 현실의 그늘지고 어긋난 자리를 비상한 애착과 필법으로 그려 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십여 년 만에 펴낸 이 시집에는 고향과 유년에 대한 깊고 애잔한 그리움, 그때 그곳과 지금 여기의 외롭고 버림받은 인간들에 대한 변함없는 연민, 그리고 시대의 정치적 타락에 대한 비판과 괴로운 회고가 들어 있다. 비명에 간 이들을 더듬더듬 불러 기릴 때는 마치 쓴 사람이 제 수명을 덜어 보태는 듯해 읽는 마음을 아득하게 만들기도 한다.


때로 상투를 두려워하지 않고 어눌한 목청을 무심결에 드러낸다는 점에서 이 시집의 시편들은 어떤 눌변의 시학에 접근한다. 이는 타인의 삶에 대해서건 자기 삶에 대해서건 또는 악화일로인 오늘의 현실에 대해서건 시인이 말로 어떻게 하기 어려운 난처한 사태 앞에 자주 자신을 세워놓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시가 본래 더듬거림이라면 그 발성법의 요체는 더 잘 더듬거리려 애쓰는 데 있지 않을까. 눌변의 사태를 어떤 시적 능변으로 변환시켜 내는 데 이 시집의 개성이 있고 진정이 있다.


심사위원들은 이 시집의 이러한 목소리가 오늘의 서정시를, 그리고 기존의 리얼리즘 시를 한발 전진시키는 성취라 보았다. 문학의 전진은 미지에 대한 탐색에도 깃들지만 지켜야 할 자리를 굳게 지키려는 태세에도 깃드는 것 같다. 시인은 역사의 참담한 갈피들에서 인간의 얼굴을 찾아내기도 하고, 약하고 이름 없는 현실의 인간들에게 역사의 이름표를 달아 주려 애쓰기도 하며, 정처도 없고 대책도 안 서는 자기 삶의 발밑을 난감하게 내려다보기도 한다. 때로 간절하고 때로 헛헛한 이 목소리에 깃든 변함없는 겸허함 또한 인상 깊다.


생각해 보면 기품 있는 서정, 현실과 역사에 대한 준엄한 성찰이 바로 ‘지훈’ 시의 본령이 아니었던가. 상이 임자를 만난 듯해 더욱 흔연하다. 혼란스럽되 풍요롭기도 한 시단의 현황을 볼 때, 우리 시의 미래는 낯설고 다양한 얼굴들을 하고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김사인 시인의 시가 우리 시의 ‘오래된 미래’에 닿기를 기대한다. 수상을 축하드린다.

제 15회 지훈문학상 심사위원회
심사위원장 이남호
심사위원 김승희·이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