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외길 70년, 기업인의 근본을 묻는 시간
화천그룹 창업자 권승관의 뚝심경영
서암 권승관은 1916년에 태어났다. 일제강점기였다. 모두가 가난했으므로, 그도 굶었다. 10대 소년 권승관은 일본인이 경영하는 주물공장 견습공으로 들어갔다. 기계와의 첫 만남이자 기업인의 근본을 묻는 시간의 시작이었다.
서암 권승관이 1952년 설립한 화천그룹의 역사는 한국 기계공업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한다. 화천이 세운 발자취를 잠깐 일별해 보면 알 수 있다. ‘국내 최초 벨트식 피대선반 개발’, ‘국내 최초 NC선반 개발’, ‘국내 최초 CNC밀링기 및 COPY밀링기 단독 개발’, ‘국내 최초 NCTC 개발’ 등. 가장 기본적인 공작기계조차 드물던 시절 서암은 선반을 국산화하고 독자적 기술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화천은 ‘공작기계의 메카’로 자리매김했다.
시련도 많았다. 1970년대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발맞춰 창원기계공단에 대규모 공장을 조성하려다 회사가 위태로웠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고난은 노ㆍ사가 화합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위기에 빠진 회사를 위해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봉급 보류를 감수했고 운영자금을 변통해 온 것이다. 서암의 리더십과 인격을 믿지 않았더라면 이뤄지기 힘든 선택이었다.
회사 규모가 커지자 주변의 유혹도 많아졌다. 서암은 업종 다각화, 부동산 투자 등을 여러 차례 권유받았다. 그때마다 그는 “쇳물 먹고 살아온 사람은 다른 물 마시면 안 된다”면서 유혹을 뿌리쳤다. 그가 70년 외길인생을 묵묵히 걸어온 비결이다.
오락가락하는 세상이다. 언뜻 무수한 가능성으로 가득해 보이지만 정작 뭐 하나 진득이 붙들고 물어지기는 또 어렵다. 휘청대고 넘어지기 일쑤인 젊은이들에게 서암 권승관이 손을 내민다. 말을 건넨다.
“그러나 나는 어쩔 수가 없다. 내가 한번 선택해서 나아가고자 한 길을 좀 어렵다고 해서 바꾸거나 되돌아설 수는 없었다. 앞길에 난관이 닥치면 오로지 이겨내고 뚫고 나가야 한다는 일념一念뿐이었다. 바로 이런 신념이 지금까지 나를 밑받침해 준 것이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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