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와 8년에 걸쳐 사단칠정 논변을 펼친 고봉 기대승이 선계(仙界)에서 세월호 사고를 놓고 나누는 대화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첫 장부터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극중 퇴계는 아이들을 ‘가만히 앉아 있게 만든’ 장유유서의 권위주의적 질서 형성에 일조한 장본인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그리고 앉아 있던 아이들을 일으켜 세워 새 시대의 주역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아름다운 선비’라는 이름을 가진 고교생 라이언에게 빙의된다.
말썽꾸러기 고교 일진의 ‘하이틴 로맨스’를 밑바닥에 깔아 반전이 풍부하면서도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재미를 제공한다. 고교 폭력서클의 일진인 독고라이언은 연상의 교생 선생님 채민들레에게 빠져 상사병을 앓던 어느 날, 자신에게 빙의된 퇴계 선생과 하나의 육신을 시간대별로 번갈아 써야 하는 우여곡절을 겪는다. 둘은 라이언이 잠들기 전 휴대폰 동영상으로 질문을 녹화해 두면 자는 사이 퇴계가 동영상으로 답변을 녹화해 두는 방식으로 대화를 나눈다. 독특한 구성의 표지 일러스트는 그 기발한 설정을 보여주고 있다.
라이언은 처음엔 퇴계 선생에게 저항하다가 결국 그의 설득에 넘어가 조선시대 명종임금대로 3년간 시간여행을 떠난다. 웜홀을 통해 458년 전 시공간으로 이동한 라이언은 그가 ‘명언형님’으로 부르게 되는 괴짜 선비로부터 공부를 오락처럼 즐길 수 있는 방법과 공부의 비기를 전수받고 퇴계의 감동적 일화, 그의 여자관계에 대해서도 전해 듣게 된다. 시간여행 전까지의 이야기 전개속도가 시속 80킬로, 시간여행 과정이 100킬로라면 시간여행에서 돌아온 후부터는 속도계가 150킬로를 넘나드는 고속질주다.
양념처럼 재미로 첨가된 라면의 기상천외한 레시피, 라면의 추억과 맛을 재치 있게 형상화한 극중 라이언의 자작시 〈라면별곡〉은 누구에게나 무릎을 칠만한 공감을 자아낸다.
퇴계 필생의 역작이자 극중 빙의의 모멘텀이 되는 성학십도를 쉽고 간명하게 풀어낸 《新성학십도》는 단순한 흥밋거리를 넘는 인문학적 울림을 전달한다. 음양오행에 입각한 퇴계와 율곡의 운명 비교, 한자는 중국의 문자가 아니라 한글과 함께 ‘한민족의 문자창안 DNA’가 만든 우리 고유의 문자라는 가설 등 논쟁적 요소도 가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