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현대 미국 문화가 탄생하다
문화를 통해 바라본 20세기 초 미국 사회의 풍경
워런 서스먼, 그리고《역사로서의 문화》
워런 서스먼(Warren I. Susman, 1927~1985)은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뛰어난 역사학자 중 한 사람이다. 살아 있는 동안 그는 미국사, 특히 20세기 미국문화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과 열정적인 강의로 학생들과 청중을 사로잡았으며, 도발적이고 창의적인 문제제기로 미국에서 새로운 문화사가 뿌리내리는 데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을 거의 글로 출판하지 않았으며, 드물게 출판할 경우에도 별로 잘 알려지지 않은 학술지나 선집에 실을 뿐이었다.
워런 서스먼이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한 유일한 단행본인 이 책은 1960년대 초부터 사망 직전까지 서스먼이 쓴 논문들을 선별하여 편집한 것이다. 전부 14편의 논문이 실려 있는데, 이 논문들은 크게 4개의 주제―‘신화와 이데올로기로서의 역사’, ‘문화로서의 이데올로기’, ‘역사로서의 문화’, ‘이행과 변형’―로 나뉘어 있다.
이 책에서는 지식인과 보통사람들을 포함한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어떻게 이해하고 이용하고 심지어 남용하는지에 대한 관심, 정치에 있어서 보수적 전통을 지속하는 미국적 특징, 미국인과 비(非)미국인 모두에게 ‘미국의 예외주의’로 불리는 미국 특유의 문제들, 혹은 20세기 전반의 근/현대성에 대해 보통의 미국사람들이 받아들인 이중적 가치, 나아가 유․무선전신, 전화, 영화, 라디오 등의 커뮤니케이션 혁명이 미국문화 전반에 끼친 영향 등이 주요한 주제로 등장한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주요 키워드들―문화, 문명, 변환, 보수주의, 개혁, 역사의 유용성, 청교도, 프런티어, 이데올로기, 사회주의, 아메리카니즘, 지식인, 풍요의 문화, 소비사회, 개성, 품성, 커뮤니케이션 혁명, 대중문화, 도시, 대기업, 1920년대, 헨리 포드, 브루스 바튼, 베이브 루스, 광고, 스포츠, 오락, 1930년대, 대공황, 미국적 생활방식, 세계박람회, 보통사람들―만 살펴보아도 그의 책이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를 독자들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로서의 문화》의 의미와 가치
서스먼의 책을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첫째로 1990년대 이후 한국 학계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신문화사’(New Cultural History)를 보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상 ‘신문화사’라는 용어는, 이 방면의 대표주자 중 하나인 영국의 문화사가 피터 버크(Peter Burke)도 지적하듯이, 미국에서 가장 크게 받아들여졌다. 그럼에도 유럽사를 대상으로 하는 유럽학자들만이 신문화사를 연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한국적 상황에서 서스먼은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신문화사와 미국을 대상으로 하는 서스먼의 새로운 문화사가 어떻게 유사하고 얼마나 다른가를 알게 되는 것도 제법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둘째, 그가 제기한 문제들은 오늘날 한국에서도 씨름해야 할 문제들로 남아 있다. 미국 지식인들 간의 이데올로기―청교주의(Puritanism)나 프론티어(Frontier) 테제, 보수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미국주의와 사회 개혁의 문제 등―를 둘러싼 문화적 헤게모니 투쟁은, 비록 다루는 이념의 내용이 같지는 않지만, 현재 진행 중인 한국에서의 이념 논쟁을 연상시킨다.
셋째, 특히 소비사회와 ‘풍요의 문화’가 담고 있는 역사적 조망이 그러하다. 한국도 1990년대 전반부터 본격적인 소비사회로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신․구세대 간에 가치관을 비롯한 문화적 갈등이 첨예화되기도 했는데, 이런 문제는 1920년대와 1930년대 미국에서도 커다란 이슈로 자리 잡고 있었다. 따라서 이 책은 자연스럽게 1990년대 이후 소비문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한국 사회를 비교사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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