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영구 주둔 군사시설을 구축하라”
한반도의 흉터, 일본군 요새를 추적한다
2014년 현재 우리가 발 딛고 사는 한반도는 일제강점기 일본 제국의 군사요새였다. 일제가 한반도에 본격적으로 군사시설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은 러일전쟁(1904~1905) 부터다. 전남 신안군 옥도 일대의 팔구포방비대와 경남 진해만 일대에 조성한 송진포가근거지방비대가 그 시작이다. 그 이후 일제는 식민지 한반도를 강제 지배하고 대륙침략을 위한 발판으로 삼기 위해 한반도 곳곳을 요새화하는 작업을 추진한다. 특히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5년에는 본토결전에 대비하여 충북 영동에 대규모 땅굴을 파고 ‘조선판 마쓰시로(松代) 대본영’을 구축하여 미군과 최후의 일전을 준비했다. 제주도를 포함한 한반도 남부지역에는 그 당시 일제가 구축한 땅굴, 포대, 해안특공기지, 비행장 등 수많은 군사시설들이 남아 있다. 하지만 해방된 지 70년이 지난 현재 이런 시설들은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개발과정 속에 훼손되고,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가고 있다. 이 땅에 흉터처럼 남아 있는 일본군 전쟁기지의 흔적들을 KBS 이완희 PD가 3년여에 걸쳐 추적, 조사하여 책으로 발간했다.
일제가 제주도에 알뜨르비행장을 건설하여 중일전쟁의 전초기지로 삼고 본토결전에 대비하여 제주도 전역을 요새화하였다는 사실은 꽤 알려진 편이다. 사실 이와 같은 ‘전쟁기지화’는 태평양전쟁 발발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으며 특히 미군의 상륙이 예상되었던 한반도 남서부지역에 군사시설이 집중 구축되었다. 저자는 2008년 봄부터 직접 50개가 넘는 현장을 수차례 답사하고 시사다큐 프로그램 전문 PD다운 취재력으로 정보를 모으고 체계화하여 원고를 구성했다. 일제강점기를 직접 체험한 지역의 원로들과 향토사학자의 증언을 듣고, 일본 전쟁유적 전문가와 학자들의 자문을 받았다. 또한 일본국립공문서관에서 운영하는 대규모 아카이브 ‘아시아역사자료센터(JACAR)’의 기록문서와 당시의 신문자료, 연구 논문들을 대조하여 역사적 사실에 좀 더 가까이 다가앉고자 노력했다.
러시아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용산 등지에 주둔지를 확보한 일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서도 군대를 철수시키지 않고 오히려 장기 주둔을 위한 영구시설 구축에 착수했다. 그것은 향후 조선을 군사적으로 완전히 지배해가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자 거대한 군사시설을 통해 조선인을 위압하고 장기 주둔을 기정사실화하는 정치적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 본문 중에서
일본군이 한반도에 군사시설을 구축한 구체적인 의도와 유적을 함께 살펴볼 수 있도록 본문을 6개 부로 나누어 구성했다. 부산과 여수지역에 구축한 요새시설과 서남해안과 도서지역에 구축한 주정기지, 해안가에 구축한 특공기지 등 새로운 군사시설들이 많이 소개되었는데, 특히 태평양전쟁 말기 한반도 곳곳에 비행장을 구축하고 특공대원들의 훈련과 발진기지로 활용했다는 것 등 지금까지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새롭고 놀라운 사실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책을 덮고 나면 일제가 식민지 조선에 저지른 만행의 끝은 대체 어디인지 묻게 되고, 무심코 오르내리던 동네 뒷산에서도 ‘혹시 여기에도?’ 하는 생각에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저자는 “우리가 사는 삶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것은 아주 당연한 개인의 과제”라고 말한다. 어두운 과거, ‘당한’ 과거라고 해도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역사’다. 근현대사ㆍ일제강점기 역사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 다음 세대들의 역사의식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교사, 역사학계 연구자들, 다큐 제작ㆍ역사 현장 취재에 관심이 있는 방송인 등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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