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발사된 미사일,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안 한다’
1998년 인천시 연수구 동춘동 봉재산에 위치한 공군방공포대에서 탄두가 장착된 미사일이 잘못 발사되었다. 유도 통제에 실패한 이 미사일은 발사 3초 만에 자폭장치에 의해 지상 300m 상공에서 폭발했고, 다행히 큰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16년 전의 이 사건을 두고 시인 김영승은 미사일이 1초만 먼저 폭발했더라면 자신이 살고 있던 봉재산 인근 아파트 전체가 날아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그의 시 〈흐린 날 미사일〉은 오발의 순간에 달린 생과 사의 허무 내지는 ‘오발탄’ 같은 어느 하나의 인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는 이제 너무 뻔하지 않은가.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이 시(〈흐린 날 미사일〉)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한다. 이런 식이다. 나는 걷는다, 나는 앉는다, 나는 아무것도 안 한다, 나는 서 있다… 그리고 즐거워한다. 일단은 ‘내가 이럴 수도 있구나’ 하는 발견이고, 거기에 은근한 자부심이 더해지면서 ‘이런 삶은 어떤가’ 하는 제안이 된다. 이 시를 두고 ‘무위(無爲)에의 찬미’ 운운한다면 그것은 너무 당연해서 좀 따분하다. 김영승의 시는 대체로 당연했던 적이 없으며 확실히 따분했던 적이 없고 이 시도 그렇다.”
‘심오하게 적나라하고, 정교하게 제멋대로인…’
〈흐린 날 미사일〉을 표제작으로 시인 김영승이 5년 만에 아홉 번째 시집을 선보인다. 《화창》(세계사, 2008) 이후 5년 만에 세상에 그의 시 43편이 소개된다.
시인 김영승은 시의 진영이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으로 뚜렷이 구분되었던 1980년대에 등장했지만 그 어디에도 귀속되지 않고 양쪽을 아우르는 것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해나갔다. 그의 시적 개성은 이후 한국시를 풍요롭게 했을 뿐만 아니라, 당대 시대상을 풍성하게 하기도 했다. 강자와 약자, 위너(winner)와 루저,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로 양분되는 사회에서 그는 스스로 누락한 자가 되어 자신의 존재로써 눈길을 받지 못한 곳까지 시대상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슬퍼하지 않았고, 청승떨지 않았으며, 너저분한 현실을 특유의 재기발랄함으로 관통하면서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자아냈다.
이번 새 시집에서도 그는 여전히 그의 작품 앞에 당당하고 자유롭다. 지난 세월, 여전히 가난과 고독이라는 무거운 단어를 곁에 두고 쉽지 않은 전업시인의 삶을 묵묵히 살아왔지만 그만의 웃음은 작품 안에 고스란하다.
과거 그는 극빈과 건강의 악화라는 절망적인 상황을 짊어진 자신의 처지가 낭떠러지를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말고삐를 잡고 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새 시집을 발판으로 낭떠러지 앞 비상(飛上)을 꿈꾼다. 《흐린 날 미사일》에서 “심오하게 적나라하고, 정교하게 제멋대로”인 그의 언어가 보여주는 무장무애의 시 세계가 펼쳐진다. 시인 김영승의 유감없는 날아오름을 기대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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