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어떻게 원자력강국이 되었나

이종훈 지음

판매가(적립금) 35,000 (1,750원)
분류 나남신서
판형 신국판
면수 600
발행일 2012-10-31
ISBN 978-89-300-2094-7
수량
총 도서 금액     35,000
 

오늘날 우리는 전기 에너지를 풍부하게 사용할 수 있으며 이를 토대로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밝은 우리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전쟁의 폐허와 암흑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우리나라 전력사업을 일으키고자 한 많은 이들의 ‘어제’가 있었다. 이 책은 그 ‘어제’의 기록이자, 한평생 전력사업에 몸담으며 대한민국의 맥박을 뛰게 한 한 엔지니어 CEO의 ‘꿈’과 ‘도전’의 기록이다. 1960년대 초 조선전업에 입사하여 첫 직장생활을 영월화력발전소에서 시작한 저자는 5․16군사혁명 후 전력 3사 통합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전력 직원이 되어 화력발전 전원개발 업무와 원자력발전산업의 기술자립을 위해 평생을 몸바쳤다. 회사의 중간간부로서 원자력발전 기획에 참여하였고, 어촌에서 시작되었던 고리원전 건설현장 근무를 거쳐, 한국전력 본사의 원자력건설처장 5년, 고리원전 본부장 2년, 한국전력 부사장 5년, 자회사인 원전설계회사 사장 3년, 한국전력 사장 5년을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산업의 중심에 서 있었다. 이 세월 동안 전력산업과 원자력산업 설계기술을 자립하고 설비용 기자재를 모두 국산화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할 수 있었다. 또한 남북화해의 아이콘처럼 등장한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의 북한 원전건설을 한국전력이 수주함으로써 한국표준원자력발전소를 수출 건설하고, 중동 UAE에 원자력발전소를 건설 운영하는 세계 최대 프로젝트에 한국전력이 참여하는 개가를 올리게 되었다.

 

제1부 電力 없인 文明社會 없다  27

1. 電氣工學과의 인연  29

入試정보 없이 대학 응시  30 | 서울工大 電氣工學科 입학  31

노해면 공과대학 본관 收復  33 | 敎材 프린트 아르바이트  34

해군사관학교 전기공학 교관  35 | 轉役과 朝鮮電業 응시  37

2. 朝鮮電業 입사와 電氣 3사 통합 39

첫 부임지 영월화력발전소  39 | 전기작업계  42

운전공무계  42 | 실습생 교재 편집  43

안전관리원과 수상  44 | 영월화력 복구공사  45

사택 주거환경  47 | 자산재평가사무처  48

화력건설부 전기과  49 | 첫 공사설계 견적  50

독일어 공부  50

3. 초임간부 전기보수계장  52

영월화력 전기보수계장  52 | 강남 주택마련의 계기  54

직원 교육 훈련  55 | 영월공고 출강과 평화봉사단  56

기능직 채용 비리  56 | 첫 프로젝트 경험  57 | 正陽會  59

4. 화력건설부 전기계장과 해외연수  61

표준품셈의 개발  62 | 발등의 불 군산화력  63

첫 난턴키 사업 서울화력 4호기  64 | 영어회화 공부  66

미국 기술연수  67 | 金浩吉 박사  68 | 주택소유의 꿈  69

중곡동 지역자원봉사  70 | 용마테니스클럽  71 | 과장 승격  72

5. 중견간부 검사역 승격과 집중감사  74

감사실 咸泰巖 실장  75 | 영남화력 터빈사고와 직원기술교육  77

전국停電 조사  79 | 보수비 절감에 따른 재앙  80

자체집중감사  80 | 공사관리규정 제정  81

사업소 비자금  82 | 조직적 비리의 종언  84

6. 原子力가족:원자력 건설업무 보임  85

原電 건설업무 입문  86 | 假設備의 품질 수준  87

機資材 국산화  87 | 생략된 計裝設備  88

원자력 기초교육 수강  89 | 유럽 원자력산업 조사단  90

7. 古里原電 건설부소장과 原子爐 初臨界 92

석유파동과 물가폭등  92 | 고리원전 건설현장  94

리더의 決斷  95 | 활기 찾은 건설현장  96

紀律部長  97 | 공정준수와 夜半作業 동원  98

시운전 요원의 훈련  99 | 한국 原電의 最初臨界  101



제2부 PM, 技術自立의 첩경이다  103

8. 프로젝트매니저 수업  105

고리원전 2호기 계약  105 | 原電건설 제한작업 승인  107

새 工法 開發의 중요성  108 | 國産시멘트 채택  109

자율건설의 첫 Project Manager  110 | LA사무소  112

他山之石 臺灣電力  113 | 騎虎難丁  115

건설시공회사 선정  116 | 格納建物 建造工法 개선  117

9. 原電建設의 總責任者  119

원자력건설의 업무典範 수립  120 | KOPEC 기술전수  120

國産化 지원  121 | 공정한 購買업무 처리  122

영광원전 건설立地의 先確保  123

울진원전 건설立地  124 | 영광원전 마스터플랜  125

프랑스 기술기준과 국산화  127 | 聲東擊西  127

國保委의 韓電개혁 구상  128 | 原電건설업무 이관 논의  129

朴正基 한국전력 사장 취임  130 | 首長의 대화와 德談  132

10. 對國民弘報 위한 原電시설 공개  134

사택지역 정비  135 | 직원가족 건설현장 견학  136

下都給업체의 애로 청취  137 | 경비원 생활환경 지원  138

경제기획원 예산실장의 돌연한 고리 방문  140

원전설비 민간공개의 계기  141 | 민간공개 실현 有備無患  143

執行幹部 고리본부장  144 | 反核운동의 태동  145

환경오염 왜곡 보도  146 | 국민수용(PA) 기능  147

직원 포상 기준  148

11. 韓國電力公社 副社長과 88서울올림픽 149

예상 밖의 부사장 승진  149 | 子會社 사장 천거  150

부사장 연임  151 | 기초전력공학공동연구소 설립  152

기업의 大學硏究所 설립 嚆矢  153

대한육상경기연맹  155 | 서울올림픽 마라톤코스 선정  156

월드컵 마라톤 유치  157 | 88서울올림픽 육상운영위원장  159

12. 標準火力發電 사양의 정립 161

표준화력발전의 사양  161 | 표준화력발전 사양의 표류  162

화력발전 사양과 공정 표준화  163

13. 영흥화력발전소 大團地 선정 166

영흥도 발전 대단지  166 | 영흥도 종합개발계획 수립  168

환경단체와 주민  169 | 영흥화력발전소 준공  169

14. 原電 종합설계의 産室, KOPEC  171

KOPEC 연혁  171 | KOPEC 사장 취임  172

부설연구소 설립과 EPC 기반조성  173

社屋 건설계획  174 | 사옥부지 매입  176

건물규모의 축소  177

15. 전력기술 해외진출 嚆矢 중국 베트남 러시아 179

중국의 原電市場 첫 진출  180

베트남 남부지역 전력시장  181

하노이지역 전력산업 시장  183

에너지부, 중공업부와 국가계획위원회  184

러시아 한국공단 조사단  186 | 러시아 화력발전소  187

러시아의 개인농장과 市場  188 | 해외사업 기반조성  189

16. Project Management 기술 宣揚  190

프로젝트 관리기법 선도  190 | 원전건설의 PM 참여  191

PROMAT(현 KPMA)의 결성  192 | 미국 PMI와 협력약정  193

PM 적용분야  194 | 국내 PM수준에 대한 반성  195

숭실대 PM과정 신설  196

17. KOPEC 개혁과 勞使 갈등 198

단일호봉 급여체계  199 | 급여차등제의 시행과 저항  200

노조 눈치 보는 간부맹원  201 | 노조위원장과의 갈등  202


제3부 세계의 電力産業을 先導하자  205

18. 韓國電力 사장 취임과 의식개혁  207

한국전력 사장 선임 배경  207 | 한국전력 사장 취임  209

새韓電暢達, 의식을 바꾸자  211 | 새 行動規範의 시달  213

기업문화의 혁신  214 | 사장 連任 배경  215

19. 公正人事制度 확립과 인사청탁 근절  216

昇格인사 불만  217 | 訓令 제1호  217

昇格제도의 확립  219 | 1직급 승격심사  221

20. 電子행정과 營業窓口 개혁  222

電子行政에 박차  222 | KBS 시청료 공동수금제도 도입  224

판매사업 SI 도입  226 | 영업창구 업무개혁  226

24시간 내 送電 제도화  228 | 방문고객 제로화 운동  228

末端사업장 폐지와 반발 수습  229

21. 電力需給 위기와 전력설비 확충 232

異常기온과 전력 需給非常  233 | 발전설비 4천만㎾ 달성  234

빈번한 停電事故  236 | 變電설비 1억㎾ 달성  237

22. 勞組와 퇴직금 알력 타결  240

退職金 累進制 마찰  240 | 정부방침과의 조정  241

전력노조의 대형집회 대책  242 | 기대치를 낮추자  243

절충안에 대한 정부의 거부  244 | 쟁의신고 中勞委 반려  245

단체교섭권 위원장이 受任  246 | 퇴직금문제의 대타결  246

勞勞갈등의 태풍  248 | 在野勢力의 개입 차단  249

사태의 수습  250

23. 세계적 電力硏究院 지향  252

한국전력 기술연구원 준공  252 | 개혁 위한 맥킨지 용역  253

연구원장에 해외인사 초빙 시도  254

金瀚中 박사 영입  256 | 인사제도特例 정부 승인  257

전력연구원 발족  258 | 연구평가단의 권고  258

개혁의 중도 폐기  260 | 硏究風土의 변화  261

24. 發電事業 분산과 민간 참여  262

실패했던 民間發電 3사  262 | 민간발전사업자 선정기준  263

適格者 발표  265 | 동아그룹의 자진 철회  266

현대그룹 음해  266 | 선경그룹  267

外換위기  268 | 민영 원자력발전회사 설립안  269

石炭火力 민영화 방안  270 | 落島발전소 한국전력 이관  271

한국전력 電友會  272 | 落島 전력사업 위탁  273

25. 中小企業 기술개발 지원사업 274

중소기업 기술지원 방침의 태동  274

중소기업 지원팀 발족  275 | 중소기업체 방문  276

연구개발 자금의 지원  277 | 해외 판매망 확보 지원  278

지원사업의 성과  278 | 대전 EXPO와 전기에너지관  279

금탑산업훈장 수훈  280

26. 韓電株 뉴욕證市 상장  282

양키본드 발행  282 | 한국전력 주식 뉴욕證市 상장  283

글로벌 본드 발행  285 | 세계은행 보증제도  286

百年債券의 발행  286 | 株式轉換 社債 발행  287

27. 韓電 사장과 社會團體 활동 289

한국엔지니어클럽 회장  289 | 클럽회관 매각과 강남 이전  291

한국공학한림원 설립  292 | 한국工學翰林院 初代 이사장  293

한국공학한림원 大賞  294


제4부 低炭素 成長, 原子力 외엔 代案 없다  295

28. 원자력발전의 黎明期  297

시슬러 씨의 ‘에너지박스’  297 | 원자력법 제정과 원자력원 발족  298

한국전력, 원자력발전 업무 담당  299 | 原子爐型의 선택  300

29. 標準原電 爐型戰略 개념 정립  301

장기 原電정책 구상  301 | 原電 기술자립 장기 비전  302

설계의 표준화  304 | 原電 기술자립촉진회의  306

사업추진체제의 정립  307

30. 한국 標準原電 PWR 爐型 확정 311

표준원전 爐型 논란  312 | 한국전력 사장의 臺灣電力 방문  312

ANS 고위층회의 참가  314 | 馬鞍山 원자력발전소  315

標準爐型 PWR로 확정  316

31. 標準原電 開發 위한 核心기술 도입  317

원자로 설계 원천기술 도입 준비  318

종합설계와 터빈발전기업체 선정  318

원자로 계통설계 기술전수 주체의 선정  320

원자력연구원 원자로설계 참여  321

원자로 핵심기술 전수 국제입찰 안내  322

원자로설비 업체의 입찰  323 | 입찰평가 발표  325

원자로 설계기술 도입 계약서명  326

32. 原子力事業에 대한 정치권 저항 329

한국전력에 대한 정치권의 압박  330

국회의 의혹 제기와 논쟁  331 | 검찰 수사와 무혐의 처리  332

反核운동과 야당  333 | 趙喜澈 의원 소신의 변화  334

金大中 총재의 原電 支持  335 | 原電설계시장 개방 저지  337

33. 靈光原電 3,4호기 건설과 標準原電 개발  339

전력그룹협력회 권한  340 | 원전 건설사상 최초의 기록들  341

사업 책임자의 보직관리 典範  342 | 공동설계요원의 미국 파견  343

영광원전 3,4호기 프로젝트의 성과  345

한국 표준형 원전 설계의 완성 346 | 차세대 신형원자로 개발  348

차세대 신형원자로 개발 1단계사업  349

한국 신형원자로 APR-1400 개발  350

신형원자로 APR-1400의 완성  352

34. 電力産業 技術基準 제정  354

기술기준 개발財源 부담 시비  355 | 기술기준 개발사업의 위기  356

대한전기협회의 참여  357 | 미국 기술기준과의 협력  359

35. 使用後核燃料 재처리 향한 로비  360

영국 John Major 수상과 주한 영국대사  361

마포포럼의 NDI  363 | 미국 대통령 취임식  364

로비 협정 체결  365 | 미국 하원의원과 NRC 위원장 예방  366

하버드대학 Joseph Nye 학장  367 | 미국 정계인사 접촉성과  368

새 정권 핵심인사 설득  369 | 로비계약의 종결  370

36. 原子爐 계통설계 업무 이관  372

과학기술처의 원자력행정 일원화 구상  373

설계사업단 한국중공업과 합작안  374

설계사업단 분리안  375 | 구조조정 안 이사회 결의  377

초기 노심과 재장전 노심 설계업무  378

원자력위원회 의결  379 | 업무이관 규정 의결  380

노조원의 시위와 무마  380

37. 放射性폐기물 처분장 업무 한국전력 이관  382

방폐장 업무 연구소 관할로  383 | 거듭되는 부지선정 실패  384

굴업도 방폐장 안  384 | 활성단층 발견  385

방폐장 업무 한국전력 이관  386 | 天時逸失의 아쉬움  388

38. 러시아 우라늄 농축공장 인수 논의 390

우라늄협회 受賞  391 | 러시아 원자력부 장관  392

러시아 농축공장 시찰  393 | 바이칼 호반의 만찬  394

러시아의 농축공장 투자 제의  395 | 러시아 총리 방한  396


제5부 電力事業, 海外에서 活路 찾자  397


39. 필리핀 말라야화력 복구사업  399

세계화에 따른 위험 감수  400

한국전력의 기술수준과 Brand Power 401

필리핀 바탄원자력발전소  402 | 필리핀 정치권과의 접촉  403

바탄 原電 再開 설득 노력  404 | 말라야발전소 복구  406

대통령 임석하에 계약 서명  409

40. 필리핀 일리한 복합화력 受注 411

EPC업체 Raytheon  412 | 七轉八起의 고비  413

출자와 Project Financing  415 | 외국 IPP업체 참여 희망  416

필리핀 사업의 위기 극복  417 | 필리핀 再訪問과 감회  419

41. 베트남 원자력사업 진출 탐색  421

하노이대학 총장  422 | 장관급 원자력 세미나  423

Vo Van Kiet 수상과 原電 立地  424 | 김영삼 대통령 방문  426

베트남 고위인사 연수  427 | 베트남 사업의 중단  429

42. 중국 原電市場 진출을 향한 丹心  430

原電 관장하는 두 기관  430 | 廣東核電公司 昝雲龍 사장  431

大亞灣 원자력발전소  432 | CNNC와의 기술협력  434

차세대 원전 공동개발 제의 435 | 海陽 原電 기술과 경제성 공동조사 435

海陽 原電 타당성 조사  436 | 重水爐 시운전  438

43. 江澤民 주석과의 原電 대화 440

江澤民 주석 만찬  440 | 王忠禹 무역경제위 주임  443

한국원전에 부정적인 중국 반응  444 | 韓中修交 사절단  445

CNNC와 국가계획위원회  447 | 江澤民 주석 再會  448

胡錦濤 중앙위원 내한  449

44. 중국 화력발전사업 진출 협의  451

延吉시 열병합발전소 건설 제의  452

東北전력공사와 연길발전소 입지  453

길림성 정부의 무성의  454 | 연길사업의 종결  455

석탄화력 건설사업  456 | 華北전력과 기술협정  456

고위층과의 연쇄 접촉  457 | 에이전트 협약  458

北京사무소 개설  459 | 山西省 석탄화력 발전사업  460

山東省 석탄화력 발전사업  461 | 경영권 없는 투자  462

45. 인도 화력발전사업 진출 노력  463

인도의 重水구입 인연  464 | 인도 통상장관  464

대통령 인도 巡訪  465 | 인도의 電源 개발사업  466

라울 총리 비서실  467 | 기술협력 협정 체결  468

외환위기로 사업 중단  468

46. 밀려오는 전력사업 海外進出 기회 470

인도네시아와 원자력협력 협정  470 | 표준원전 합동설명회  472

루마니아 중수로  473 | 코스타리카 대통령 면담  474

터키 원전 진출 노력  476 | 레바논  478 | 에콰도르  478

GE Welch회장  479 | 해외사업의 축소  480


제6부 光通信網이 IT産業의 神經腺이다  481


47. 갖추어진 情報通信 기반시설  483

OPGW 全國網 활용  484 | 통신설비 일원화의 문제점  485

CATV 전송망 사업자  486 | 정보통신사업의 확장  487

한국전력 정보통신 참여  488 | LG텔레콤에 망 제공  490

정보통신 경쟁  491

48. 情報通信사업의 저항과 극복  492

전송망 사업자  493 | 이동통신 컨소시엄  494

국제전화 사업자  495 | 통상산업부의 참여 반대  496

미국 PCS 지분 참여  497 | 재정경제원의 거부  498

재정경제원 차관의 협조  500 | 傳送網사업 중단  501

49. 멀티미디어 Thrunet과 MS 제휴  503

멀티미디어사업 민간제휴  504 | 멀티미디어회사 운영 얼개  504

시내전화사업 참여  506 | 말레이시아 Super Corridor  507

레인보우 프로젝트  507 | MS와의 사업개발 구상  508

미국 유명 IT회사 투자 권유  509 | IT관련 언론인의 관심  510

마이크로소프트MS회사  511 | Bill Gates와 협약 서명  512

한국전력 回路網 건설 중단  513

50. YTN 인수와 經營正常化 지원 515

YTN 인수의 타당성  516 | 인수계약 체결  517

KDN 통한 출자  518 | 경영정상화 방안  518

한국중공업 출자  519 | 퇴임 직원 한국전력 수용  520

경영 정상화  521


제7부 北韓 KEDO사업, 原電 輸出의 첫걸음이다  523


51. 북한의 NPT 탈퇴와 제네바 합의 525

북한 原電건설 정보 입수  526 | 丁渽錫 부총리 월성 방문  527

대통령, 대북 경수로 지원방침 천명  527

한 언론의 왜곡 보도  529 | 美․北 제네바 합의  530

미국主導 전략 봉쇄  531

52. KEDO 발족과 韓電 主契約者 참여 534

輕水爐企劃團과 KEDO 발족  535

KEDO측에 한국전력 입장 천명  536

원자력연구소 주계약 참여 주장  537

羅雄培 통일원 장관 울진 방문  538

원자력연구소의 조직적 대응  539

KEDO 이사회의 결정  540 | KEDO 사무총장  542

외무부 출입기자단  543 | 청와대 대책회의  544

KEDO 주계약자 韓電지정 협정 체결  546

Bosworth 주한 미국 대사  548

53. 총공사비 推算과 事前작업 착수  549

건설 공사비 韓電 내부 推算額  550

KEDO제출 槪算額  551 | 시공업체 선정  552

초기공사와 事前작업 착수 지시서  553

북한 潛水艇 침투와 사업중단  554

54. 新浦건설본부 발족과 부지정지 기공식  555

자료 流出 음모설  555 | KEDO의 깊은 신뢰  556

전문가팀의 방북  557 | 초기 현장공사 本陣 出航  558

南北간 전화개통  559 | 초기 현장공사계약 서명행사  560

기공식 행사 위해 양화항으로  561 | 양화항구의 풍경  563

비포장 도로  564 | 부지정지 착공식  565

만찬과 漆夜속 여행  566 | 마전리 노동자 휴양소  567

함흥 선덕공항  568

55. 外換위기와 費用분담 조정  569

비용분담 문제의 대두  570 | 體制 차이로 인한 갈등  571

한국의 外換危機 여파  572 | 여객선 운항개시와 本工事 착수  573

북한 송전 전압문제  575

56. 설날에 이루어진 新浦현장 방문  576

고려항공과 直昇機  576 | 구내 후생설비  579

설날 위로행사  580 | 활기 띤 양화부두  581

新北靑 시가지  581 | 골재채취장과 현장시설  582

평양과 고려호텔  583 | 凍土 평양을 떠나며  585

KEDO 사업 중단  586 | KEDO사업의 감회  587

 

1953년 안동농림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전기공학과에 입학했다. 해사에서 전기공학 교관으로 복무하고 중위로 전역했다. 1961년 조선전업 공채 5기로 한전에 입사하여, 영월화력 운전, 인천, 서울, 군산 화력발전소 건설에 종사했다. 1973년 고리원전 업무를 담당하여, 원자력발전 최초임계를 달성하고. 원전자력건설의 첫 프로젝트매니저가 되었다. 이후 원자력건설처장 5년, 원자력본부장 2년, 한전 부사장 5년, 원전설계회사 사장 3년, 한국전력 사장 5년을 역임한 후 1998년 퇴임하였다. 평생을 한전에 몸담으며 화력발전과 원자력발전의 설계제조기술 자립과 기자재 국산화를 선도하였고, 해외 화력발전사업에 최초 진출하였다. 또한 한국 표준원전이 KEDO에 채택되어 북한에 처음으로 수출되도록 하였으며, 신형경수로 개발완료로 UAE 원전수출의 기반을 구축하였다. 금탑산업훈장과 은탑산업훈장을 수여받았고, 한국공학한림원 대상, 한국경영대상(공기업 최초), 에디슨 상(미주 밖 전력회사 최초)을 수상하였으며,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과 ‘한국 100대 기술주역’(2010)에 선정되었다. 저서로는 소남 이종훈 한시집《만경탐시(나남)가 있다.


prev next
prev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