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과 순수성-만주국과 동아시아적 근대

프래신짓트 두아라 지음 한석정 옮김

판매가(적립금) 28,000 (1,400원)
분류 학술명저번역총서(학술진흥재단) 031309
판형 신국판
면수 504
발행일 2008-06-25
ISBN 978-89-300-83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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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국, 동아시아 근대의 블랙박스를 열다.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과 관련하여 만주가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다른 한편 동아시아 근대가 학문적 유행상품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만주에 대한 관심은 민족주의적 상상을 넘어 만주국의 역사적 실체와 의미로 나아가진 못했고, 동아시아 근대의 기본속성과 윤곽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 두 가지 결함은 모두다 지금까지 만주가 동북아 역사의 터부였다는 사실에 기인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주는 국민국가의 경계로 구획된 한국, 중국, 일본사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변방이었고, 만주에 대한 기억은 동서양 모두에 걸쳐 억제되었다. 그러나 만주국은 오늘날까지도 그 그림자를 깊이 드리우고 있는 동북아 근대사의 블랙박스이다. 예컨대 만주국은 폭력, 신체의 기율화, 발전을 엮는 파시스트적 발전국가의 모델이었으며, 여러 면에서 동아시아적 근대의 복잡한 면모를 그대로 담고 있는 역사적 냉동실험실이었다.
최근 굳게 닫혔던 이 역사 실험실의 문을 두드리면서 만주국을 새롭게 이해하려는 다양한 흐름이 나타났는데, 이번에 출간된 두아라 교수의 책《주권과 순수성》은 이 흐름 중에서도 단연 독창성과 현실성에서 돋보이는 저작이다. 이 책은 이제 문을 열기 시작한 역사적 냉동 실험실로의 반가운 초대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 근대 일반이 그랬듯 만주국은 민족주의와 제국주의가, 전통과 근대성이, 중심과 변경이 복잡하게 엉켜있는 역설의 장소이다. 만주국에서 나타나는 민족주의, (신)제국주의, 근대성 간에 존재했던 복잡한 관계를 해명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인데, 그 주지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첫째, 1차 세계대전 이후 구제국주의는 민족자결 같은 새로운 이념조건에 적응해야 했고, 반제 민족주의도 새로운 정치적 형태를 통해 치열한 영토경쟁에 적응해야 했다. 이 맥락에서 민족주의는 전통적 제국주의에 반대했으나 새로운 지배양식으로 발전할 잠재력을 갖고 있었다. 이 점에서 만주국의 아시아주의와 다민족주의 이념은 이 잠재력의 일본식 표현이었다. 또한 중심과 주변의 차이 대신 동질성을 동원한 일본의 만주 지배는 냉전기 미국과 소련이 우방을 통제할 때 사용한 신제국주의 기법의 모델이었다.
둘째, 만주국은 “신성한 국가와 민족”이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특히 만주국은 근대국가의 건국에서 패망까지의 전체 역사가 냉동상태로 잘 보존되어 있어서, 국가, 민족, 정체성 형성의 기술과 책략, 과정들을 잘 보여준다. 이 맥락에서 폭력과 발전, 신체의 기율화와 사회동원 같은 근대국가의 여러 특성들이 어떻게 서로 뒤엉켜있는지를 잘 확인할 수 있다.
셋째, 만주국의 국가, 민족 만들기는 동아시아에서 근대 민족형성에 무엇이 필요한 요소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특히 이 책은 외부 세계와의 경계선을 설정하는 이른바 ‘순수성의 체제’를 통해 민족주의가 확보된다고 주장하면서, 만주국에서 주권의 주장이 어떻게 만주의 원시림, 원주민들, 희생적 구세집단의 여성들, 향토 등의 순수한 문화를 수호하고 대변하는 주장들에에 유래하는지를 보여준다. 나아가 두아라는 이 순수성의 체제가 만주국의 일본 지배자들이 수행한 정체성 구성 프로젝트의 산물이며, 동시에 중국과 일본의 상호작용과 담론의 접점이었음을 보여준다.
넷째, 그러나 그 과정은 글로벌 문명과 지역적 전통 간의 상호작용을 반영하기도 한다. 만주국은 민족과 국가들을 도덕적으로 순수한 독립체로 만들고 정당화하기 위해, 새로운 세계문화로부터의 자극, 범주, 규범, 도식, 방법들이 어떻게 번안되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민족을 형성하기 위해 역사적, 지방적, 지역적 자원, 관행, 개념, 상징들이 어떻게 글로벌 담론/관념들로 번안, 조율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요컨대, 이러한 여러 요인들이 바로 ‘동아시아적 근대’의 프로필을 형성하는데, 이들과 이들 간의 복잡한 관계를 두아라 교수는 ‘주권과 순수성’이라는 말로 요약한 것이다.
동아시아 근대성에 관심이 있는 인문, 사회과학 분야의 연구자들은 물론이고 일반 독자들도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정치적 틀이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었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이 냉동 역사 실험실에서 많은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는 여전히 관점으로만 남아 있던 탈구조주의 및 탈현대의 관점들이 구체적으로 역사 속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고, 어떤 성과를 거둘 수 있는지에 관해서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프래신짓트 두아라
미국 시카고대학 역사학과와 동아시아 학과의 교수. 1989년 미국 역사학회의 페어뱅크(J. K. Fairbank)상을 수상한 Culture, Power, and the State: Rural Society in North China, 1900-1942[문화, 권력, 그리고 국가: 북부 중국의 농촌사회, 1900-1942](1988)의 저자이자 Rescuing History from the Nation: Questioning Narratives of Modern China[민족으로부터 역사구하기: 근대중국 역사기술의 분해](1995)의 저자이기도 하다.
역자: 한석정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 시카고대학에서 사회학박사. 현재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 만주국에 대한 전문가로《개정판: 만주국 건국의 재해석》(2007), 《화려한 군주》(2003) 등의 저, 역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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