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토론 프로그램에 ‘토론’이 없다? 물론 가뭄에 콩 나듯 아닌 경우가 없지 않지만, 서글프게도, 그렇다. ‘명을 받드는’ 데 대한 의문 자체를 거세해온 일상의 군사주의적 생활양식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흐름이 탄력을 받고 있다고 해도, 척박한 소통/설득문화 속에 각질화한 습속의 더께를 말끔히 치워내기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이리 보면 오늘날 한국의 현실을 둘러싼 갈등과 ‘소모적 대결’은 기실 ‘소통술의 부재’를 북돋운 오랜 반공-군사주의 문화의 업보일지 모른다. 이런 가운데 대화/설득의 기술이 일상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하는 필수적인 삶의 기술로서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각광받는 현실은, 군사주의 문화가 초래한 업보로부터 자유로울 문화적 토양을 일구어가려는 욕구의 구체화라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서로 다른 목소리의 소통이 빚어내는 무늬의 가치에 주목하면서 이와 같은 흐름의 전방위적 확산에 힘쓰는 지적 탐색과 노력이 그 깊이를 떠나 일단 반갑고 소중한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김영석(연세대 신방과 교수 겸 언론홍보대학원장)의《설득커뮤니케이션》은 앞서 언급한 우리의 소통현실과 관련, 대화와 설득상황을 둘러싼 다양한 지적 접근과 그 성과/한계를 개괄적으로 조망하고자 하고 우리 소통 및 설득문화의 질적 고양을 바라는 이들에게 더 없이 적합한 안내서이다.
총 6부, 23개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설득을 다룬 사회과학 및 인접분과의 성과를 총망라, 설득사례에 대한 단순한 인식을 넘어 그 이면에 담긴 심리학적 원리를 이론적으로 고찰하는 한편, 인간활동의 모든 영역이 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 영역이라는 가정하에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포괄적인 맥락 속에서 설득 또는 설득현상의 위상과 발생 메커니즘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자 했다.
우선, 제1부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설득의 개념들을 다루고 있다. 설득 개념의 정의로부터 시작해 설득연구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살핀다. 설득을 이해하는 기초개념인 신념, 태도, 행위 간의 관계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으며, 특히 오랜 동안 설득의 핵심개념이었던 태도를 어떻게 파악?측정할 수 있는가가 1부에서 다루는 주요 내용이다.
제2부에서는 설득현상을 설명하는 심리학적 이론을 다룬다. 가장 오랜 전통을 지닌 행동주의 이론과 인지주의 이론, 그리고 사회적 판단 이론을 소개한다. 또한 최근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는 정교화 가능성 모델과 그 응용사례들을 살핀다.
제3부에서는 설득 커뮤니케이션의 구성요소를 분석적으로 제시한다. 우선, 정보원의 특성을 공신력 개념과 연결해 제시했다. 아울러 현대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는 전달자와 수용자가 동시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전제하에, 전통적인 의미의 수용자라는 개념 대신 커뮤니케이터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그 특성을 살폈다. 또한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설득의 관계를 조명하면서 그 설득적 메시지의 구조와 순서에 따라서 설득의 효과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고찰했다. 마지막으로 비언어적 단서들이 설득에 미치는 효과와 관련된 연구들을 종합·제시했다.
제4부는 설득이 이루어지는 맥락적 상황을 다룬다. 선의건 혹은 악의적이건 간에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하여 사람은 누구나 속이기를 행한다는 점을 고려, 거짓말과 관련된 이론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거짓말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과 그것을 간파할 수 있는 단서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또한 어떤 상황에서 공포 소구, 유머 소구, 성적 소구, 따스함 소구 등의 동기적 소구가 유용한지를 분석했다. 이밖에 신념이나 태도 등의 내적 변화 없이 행동의 변화만을 유도하는 순응의 전략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도 다루었다. 이를 위해 미리주기, 단계적 요청, 역단계적 요청, 미끼기법 등의 순차적 설득기법과 집단의 영향력이 개인의 동조현상에 미치는 영향력을 살폈다.
제5부는 시각 및 특수한 형태의 설득을 다루었다. 흔히 이미지라고 일컫는 설득도구의 한 형태로서 건축물, 예술, 영화, 광고, 포토저널리즘 등을 그 사례로 이용, 분석하였다. 특수한 형태의 설득사례로는 잠재의식을 이용한 설득, 음악이나 향기들을 이용한 설득을 다루었다.
제6부는 미디어를 이용한 사회적 설득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적 기제와 그 응용사례들을 제시하고 있다. 미디어가 사회적 실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미치는 영향력을 이론적으로 분석·고찰하였고, 그것을 이용한 정보 캠페인이나 개혁확산의 실례들을 제시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최근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함께 새로운 연구영역으로 등장하고 있는 설득적 도구로의 컴퓨터와 관련된 캡톨로지(captology) 분야를 소개하고 있다.
이상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듯, 김영석의《설득커뮤니케이션》은 사회과학 전반에서 이뤄져온 설득연구를 총망라한 것으로, 우리 삶을 둘러싼 다양한 설득상황을 지적으로 탐구하려는 이들에게 더없이 상세하고 친절한 입문·소개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비언어적 설득상황관련 부분에 사진 및 시각자료들을 최대한 활용·제시함으로써 다소 방대한 분량의 글읽기가 유발할 지루함 내지 버거움을 최소화하려 한 것 또한 이 책의 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