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비평 38호(2007.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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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사회비평 38
판형 크라운변형
면수 244
발행일 2007-11-23
ISBN ISSN 1228-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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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독재, 공공성의 붕괴, 외설사회
  최근 10여 년간 우리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유동적이라는 이른바 ‘탈현대’의 상식에 반하는 명료한 메가트렌드를 경험하고 있다. 그것이 시장독재와 공공성의 붕괴이다.
  현대사회를 조직하는 주요 자원으로 흔히 돈, 권력, 말(言)이 거론된다. 현대사회의 변동은 이 세 힘 사이의 세력관계에 좌우된다고 할 수도 있다. 87년 이전 우리사회는 (군사)권력이 돈과 말에 재갈을 물리는 병영사회였다. 87년 민주화는 이 병영사회로부터의 해방이었다. 그러나 시민사회는 자신이 주도한 민주화의 성과를 시장에 날치기 당했다. 10년 전 IMF의 겨울,  DJ의 청와대 입성은 민주화를 상징했으나, 당시 그가 들고 있던 IMF 신자유주의 정책 이행각서는 민주화의 성과가 시민사회와 시민/노동자로부터 시장과 기업으로 넘어갔음을 상징했다. 노무현 정부가 왼쪽 깜빡이를 켜면서 우회전하는 분열증을 보였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왼편의 사람들은 오른쪽으로 꺾는 정부의 행보에 실망했고, 오른편의 사람들은 계속 켜진 왼쪽 깜빡이에 무조건 혐오증을 보였다. 이런 양상이 10년 정도 계속 되면서 시민사회는 실망과 혐오의 쌍끌이 공세에 더 허약해졌고, 그럴수록 시장의 힘은 무소불위가 되어 시장의 사회적 독재가 빚어졌다. 한 재벌총수의 조폭놀이, 사회 곳곳에 뻗친 재벌의 보이지 않는 마이다스의 손, 재벌의 불법/탈법행위에 대한 법조계의 솜방망이 처벌 등은 가히 시장과 재벌이 법 위에 군림함을 상징한다. 군사독재에서 시장독재로, 정치적 독재에서 사회적 독재로, 눈에 보이는 독재에서 보이지 않는 독재로 바뀌었을 뿐, 독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시장독재는 공공성의 붕괴를 초래했다. 민주화란 공공성의 본래적 의미를 실현하는 것이다. 공공성(公共性)이란 말 자체가 공동의 것(共)을 모두의 이익을 반영하는 열린 구조 속에서(公) 운영한다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화의 성과를 날치기 당하면서, 종래의 관료적 공공성이 민주적 공공성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아예 시장논리에 포섭되어 공공성 자체가 붕괴되는 사태가 빚어진다. 모든 것은 사유화되어 경쟁에 부쳐질 때 그 자산가치가 극대화된다는 시장주의 제1원리 앞에서 공공성은 온전히 유지되기 힘들다.     
  그 결과는 벌거벗은 삶이다. 공공성은 일종의 사회의 옷이다. 그것은 냉혹한 생존경쟁의 한파로부터, 사회적 무시의 뼈아픈 고통으로부터 사회구성원들을, 특히 경쟁에 실패한 구성원들을 보호하는 기능을 맡는다. 그러므로, 공공성이 무너질 때 삶 자체가 발가벗겨진다. 발가벗긴 채 북풍한설의 길거리로 내몰리는 삶의 외설화가 시작된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직장에서 내쫓긴 숱한 삶들이 그러했다. 외설적 삶은 모욕과 멸시에 내동댕이쳐진 무방비 삶이다. 노숙자에게 한 경찰이 내뱉었다는 ‘니가 사람이야? 이 새끼야’라는 욕설은 외설사회가 모욕사회임을 웅변한다.  IMF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비정규직 노동자와, 일찌감치 절망으로 내몰리는 숱한 88만 원 세대의 삶이 외설사회의 풍경이다.  ‘20 대 80 사회’란 다름 아니라 80의 벌거벗은 삶이 무방비로 방치되고, 20이 그것을 사회적 관음증 속에서 바라보며 일그러진 인정의 욕망을 채우는 외설사회이다. 강자는 더 강하게, 약자는 더 약하게. 더 많은 사람에게 무방비 삶을, 더 적은 사람에게 관음의 즐거움을. 이것이 외설사회의 다이내믹스이다.
  외설이냐 관음이냐, 모욕이냐 인정이냐는 당신에게, 당신의 경쟁력에 달렸다고 시장은 다그친다. 하지만 그런 다그침이, 그런 경쟁 자체가 외설이다. 이 외설적 경쟁 때문에 초등학생 어린 아이들이 새벽 1-2시까지 학원가를 배회하고 있다. 아동학대, 외설사회가 구조적으로 강제한 아동학대가 아닐 수 없다. 언론도 자사이익의 추구에 최소한의 머뭇거림도 없다. 흔히 인터넷 공간을 염치없고 부끄러움 모르는 외설적 공간이라고 한다. 그러나 거기엔 한 줌의 재미나 귀여움이라도 있다. 하지만 기업, 정치, 언론, 교육 등등 기존 제도의 외설에는 추악함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신이 내린 직장, 공기업의 악취를 외면하자는 말이 아니다. 흔히 공기업의 문제를 도덕적 해이에서 찾는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시장주의가 도덕적 해이의 해결책일 수는 없다. 그것은 도덕적 해이를 도덕적 무시로 대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공공성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선, 도덕적 해이와 도덕적 무시 중에 하나를 고르는 부당한 선택을 거부해야 하며, 국가중심의 관료적 공공성인가, 시장주의에 의한 공공성의 파괴인가라는 그릇된 선택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시민사회의 힘이 커져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3권분립이 필요하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법조계까지 굴복시킨 기업사회의 현실은 입법, 행정, 사법의 제도적 3권분립이 돈 앞에 얼마든지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전통적인 3권분립만으로는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어려운 시점에 이르렀다. 단순한 독재가 아니라 시장의 사회적 독재에 대항하여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3권분립이, 즉 돈과 권력과 말이라는 3가지 자원이 서로를 견제하는 사회적 3권분립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무너진 민주적 공공성을 다시 세우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이를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은 공공성이 왜, 어떻게 훼손되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특집 1에서는 사회, 정치, 언론, 교육제도의 영역에서, 특히 IMF 이후에 두드러진 공공성의 위기가 왜, 어떤 양태로 등장하는지를 진단하고 대안을 가늠해본다. 
  먼저 김동춘(성공회대 사회학과)은 병영사회를 대체하여 등장한 기업사회에서 사회가 기업의 식민지로 변하면서 공공성이 어떻게 붕괴되는지를 진단하고, 언론, 정치, 법조인들이 재계의 ‘공동’ 고용인으로 전락하는 ‘고용된 민주주의’의 위험을 지목한다.
  임혁백(고려대 정치외교학과)은 애초에 한국의 정치적 공공성은 강한 가산주의 성향 때문에 미숙아 상태였는데, IMF 이후 정치의 시장화 바람이 거세지면서 이 미숙아의 생명마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진단한다.
  한숭희(서울대 교육학과)에 따르면, 우리의 공교육 체계는 애초에 허울뿐이었다. 교육의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한 사유화 투쟁만 있었으며, 학교는 학생들을 도중에 탈락시키는 식으로 실패를 체계적으로 조직했다. 이 구조가 IMF 외환위기 이후 강화되어 교육은 아예 투기판으로 바뀌었다.
  강명구(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에 의하면, 민주화 이후 언론은 권력으로부터 독립했으나 격심한 시장경쟁에 빠져 깊이 없는 텅 빈 말만 난무한다. 가족주의의 감성적 언어가 한편으로 격심한 시장경쟁 속에서 시끌벅적한 선정주의를 낳았고, 다른 한편 저열한 정치게임 속에서 적대적 언어와 위선적 언어를 낳았다.
   주요 제도영역을 중심으로 공공성의 위기와 그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특집 1에 이어서, 특집 2에서는 문화적 맥락에 초점을 맞추어 공공성에 대한 새로운 실험과 상상력을 찾아본다.    
  국가와 시장을 넘어서는 자율적 공동체가 시급하다는 관점에서 강수돌(고려대 경상대)은 시장의 제국주의에 저항하여 대안 공동체를 실험하는 노농연대운동과 대안교육운동에 주목하여 거기에 담긴 공공성에 대한 새로운 상상의 사회적 함의를 고찰한다.
  김예란(한림대 언론정보학과)은 말하기-놀기-사랑하기라는 인간조건의 디지털 존재양식 속에서 새로운 공공성의 윤곽을 타진한다. 특히 위계적 문화질서에서 해방된 다중의 글쓰기와 말하기, 다감각적 문화소비가 이 시대에 비로소 가능해졌다는 점을 중시한다. 그러나 여기에 함축된 공공성에 대한 막연한 기대나 섣부른 무시는 모두 경계한다.
  김동윤(건국대 EU문화정보학과)은 도시에서 시적 삶이 어떻게 가능한가 라는 인문학적 문제의식에서, 진정 좋은 삶과 웰빙을 지향하는 심미적 공간이 절실함을 강조한다. 산책로에서 작은 발견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 때, 도시에서도 시적 삶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문화비평>에서는 문화적 공론장의 주요 부분인 문학과 연극, 그리고 메타비평의 영역에서 묵직한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노벨상 소동을 보면서 이명원(문학평론가)은 한국문학의 죽음이 논란의 대상이 되는 때에 원로/중견 작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노벨상의 욕망이 아니라 진정한 대가의 삶의 품격과 필사적인 문학혼을 견지하는 진정성이라고 일갈한다.
  노이정(연극평론가)은 현실법칙에 매몰된 한국 연극의 일그러진 모습을 통렬히 비판한다. 우리 연극에서 보이는 것은 동시대인의 삶이 아니라 그저 이 사회에 잘 적응해 성공하려는 연극인들의 욕망뿐이다. 대학로는 연예인 지망생으로 들끓고, 연극은 꼬리를 흔들어 사랑받는 애완견 꼴이라는 것이다.
  신형철(문학평론가)은 대중지식과 전문비평 간의 D-war 논쟁에서 비판의 위상이란 문제를 끌어내면서 이제 비평은 계몽주의 전략을 벗어나 자신의 담론구조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디지털오디세이>에서 최혜실(경희대 국문과)은 인쇄매체의 총아인 소설과 시가 디지털 대양에서 벌이는 모험, 즉 놀이로서의 이야기와 엽기로서의 환상의 만남, 현실재현의 긴장감에서 벗어난 꿈꾸기로서의 역사소설의 등장, 다중주체의 성장소설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평>에서 박명림 본지 주간(연세대 국제대학원)은 2007 남북정상회담의 중요한 역사적 의의로서, ‘국제’관계를 통한 북한의 압박과 견인에서 ‘민족’을 통한 ‘국제’협력의 추구와 유도로의 이행, 통일이 최대강령적 ‘목표’ 개념에서 현실적 ‘과정’ 개념으로 하강한 점, 남북공동 평화이니셔티브를 통한 한반도 평화문제 해결, 안보/평화와 경제를 결합한 이중협력 모델 등을 지적한다.
  <사람과 사상>은 왜 오늘날 중국의 모든 사상적 흐름들이 루쉰의 비판을 통해 자신의 활로를 개척하려는지, 그러면서도 왜 루쉰 사상의 불꽃은 계속 타오르고 있는지를 차분히 설명해준다.
  그리고 <이 책을 말한다>에서는 한국인의 마음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전(前)-성찰적 문법을 유교와 무교의 결합체로 해명하는《한국인의 문화적 문법》과, 미국 사회과학의 발생에 미국 예외주의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반영되고 작용했는지를 해명하는《미국 사회과학의 기원》을 소개한다. 한국인의 정체성이나 한국 사회과학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많은 것을 시사해줄 것이다.
공공성의 위기를 극복하는 일은 거친 파도 때문에 파손된 배로 그 파도를 이겨내야 하는 것만큼이나 지난한 일이다. 배를 고칠 안전한 수선소는 따로 없다. 배와 선원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파손된 부분을 현장에서 수선하면서 거친 파도와 싸우는 길이다. <사회비평> 역시 이런 지난한 이중과제에 직면해있다. <사회비평>도 수선되어야할 공공성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만큼 <사회비평>이 떠맡은 책임이 무겁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그 책임을 엄중히 받아들일 것을 약속드린다.
 
편집자의 말 :  시장독재, 공공성의 붕괴, 외설사회
특집 1 : 공공성의 붕괴와 대안
사회의 기업화와 공공성의 위기-김동춘
공공성의 붕괴인가, 공공성의 미발달인가: 한국에서의 허약한 공화주의-임혁백
허울뿐인 공교육: 교육의 상품화와 실패의 조직화-한숭희
공적 세계에서 말의 질서의 혼란-강명구
특집 2: 새로운 공공성의 실험과 상상
신성한, 지극히 신성한-김예란
새로운 공동체 실험과 공공성의 새로운 상상력-강수돌
좋은 삶과 웰빙 지향성의 공간: 도시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김동윤
문화비평
노벨문학상과 한국문학-이명원
한국사회에서 연극은 필요한가?-노이정
나의 판타지를 침범하지 말라-〈디 워〉논쟁의 일각(一角) -신형철
디지털 오디세이
디지털 시대의 문학-최혜실
시평
2007 남북정상회담: 의미와 비전
사람과 사상
루쉰, 현대 중국의 최고 성인-황희경
이 책을 말한다:
정수복의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 방편적 근대와 살모(殺母)에의 의지 - 김홍중
도로시 로스의 《미국 사회과학의 기원》: 미국 예외주의와 사회과학 - 정병기
나남의 새책
한국학술진흥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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