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비평 37호(2007.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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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사회비평 37
판형 크라운변형
면수 256
발행일 2007-08-28
ISBN 1228-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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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우리 사회는 온통 회색빛이다. 현실진단도, 미래비전도 명쾌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일반 서민들의 삶도 그렇다. 밝고 맑은 미래의 비전과 희망에 대해 말하고 싶지만 현실의 여러 통계와 실상을 보면 참으로 쉽지가 않다. 곤혹스런 상황이다. 생각해보면 세계 전체가 어디로 갈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는 채 방황하고 뒤뚱거리는 잿빛이 아닌가 싶다.
근자에 민주화보다 더 희망적인 언어는 없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민주화는 시장화와 일치되어 진행되었다. 독재의 사슬을 벗어나자 시장의 굴레가 기다리고 있었다. 일반 서민과 민중의 삶은 여전히 야근이다, 맞벌이다 피곤에 지쳐 있다. 시장의 굴레를 넘어선다는 것은, 먹고사는 문제로 인해 시장에서 비인간적, 비인격적 취급을 당하지 않는 사회를 말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네 삶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적, 인격적 가치와 존재이유의 거의 모든 것을 양보하고 희생하고 인내해야 하는 모욕사회로, 굴욕사회로 치닫고 있다.
세계화도 그렇다. 삶의 세계적 동시대성, 수평적 공간적 연동성은 높아졌지만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세계적 동질성과 평등, 개체적 자유를 증대시키고 있는가를 물으면 대답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세계화는 인권, 자유, 민주주의, 평등, 복지의 세계화가 아니라 시장, 불안, 테러, 공포, 갈등의 세계화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고 민주화와 세계화의 흐름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민주화와 세계화의 흐름 안에서 어떤 구체적 대안을 모색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번호 <사회비평>은 민주화와 세계화의 접합, 즉 민주정부의 가장 극단적인 세계화 정책이자 우리 사회에 가장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한미FTA” 문제와 이와 연관하여 “우리 문화 속의 미국주의” 문제를 특집으로 다룬다.
 “특집1: 한미FTA의 국제정치경제”에서는, 그동안 국내 경제문제 중심으로 다루어진 우리사회의 한미FTA 논의 흐름과는 달리, 한미FTA가 동아시아 지역주의의 미래, 한반도경제, 그리고 헌법과 법률 차원에서 제기하는 여러 핵심 문제와 과제를 분석한다.
오늘날 세계화는 지역화라는 형태로 전개되는데, 동아시아, 특히 동북아에서 지역협력은 중일갈등 및 역사갈등으로 인해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최태욱(한림 국제대학원 대학 국제정치경제)은 이런 상황에서 한미FTA는 미국식 세계화를 추진하는 정책수단으로, 미국의 동아시아 개입을 위한 정책수단으로 기능할 뿐, 동아시아 지역협력은 오히려 저해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따라서 오히려 동아시아 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동아시아 역내 국가들과의 FTA를 추진하는 것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가능성이 좀 더 구체화되면서, 한반도경제의 구상도 가시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남북경제통합을 지향하고 대륙으로의 경제.지리적 확장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한반도경제권은 우리 경제의 성격을 바꾸어놓고, 동북아 협력의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체제의 핵심 당사자일 뿐 아니라, 대북경제제재조치를 통해 남북경제협력의 속도를 통제하고 있는 미국의 협력 없이는 이 한반도경제 구상은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FTA가 타결되었다. 김연철(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은 특히 한미FTA의 역외가공위원회에 관한 합의에 반영된 북미관계와 한반도의 정치경제적 현실을 집중분석하면서, 한반도경제권 형성을 위한 과제와 함의를 짚어본다.
한미FTA 협정은 거의 모든 협정대상 분야에서 한국의 헌법체계, 법률체계와의 충돌을 예고하고 있다. 이것이 낡은 제도와 법률을 개선하는 계기일 수도 있으나, 어디까지나 우리 헌법의 근본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한미FTA 협정은 우리 헌법의 제반 규정들과 충돌을 빚고 있다. 송호창(변호사)은 국가정책의 집행까지 강하게 제약하는 ‘투자자 국가 제소권’의 폐해를 중심으로 이 문제를 파헤친다.
한미 FTA는 경제적인 면만이 아니라 문화적 측면에서도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미국주의를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생각에서 특집 2에서는 “우리 문화 속의 미국주의”의 다양한 양태를 영화, 일상적 삶과 의식, 대학에서의 지식생산 등의 영역에서 다각도로 검토하기로 했다. 동아시아 차원에서 한반도를 거쳐 우리 법률문제로 내려온 시선을 돌려, 이제 영화에서 시작하여 일상의 삶과 정신을 거쳐 지식생산의 국제정치로 올라가는 올림차순의 방향을 따라 가보자.
미국과 그 이미지는 집단적 판타지의 영사막이라고 할 수 있는 다종다양한 대중문화 속에서 갖가지 방식으로 비추어지는데, 그 중에서도 영화는 미국에 대한 집단적 판타지를 엿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대중문화 장르이다. 주은우(중앙대 사회학)는 한국영화에 비추어진 미국의 이미지와 그 역사적 변천을 풍성한 사례들을 들어 논의한다. 그에 의하면, 한국영화에서 미국은 3가지 이미지가 중첩되어 비추어진다. 즉 1. 물질적 풍요와 정치적․사회적 미덕을 두루 갖춘 선망의 대상이자 상상적 동일시의 모델로서, 2. 자유 민주주의 정치제도와 자본주의 경제제도를 포함하여 우리 현실의 틀을 짜는 보이지 않는 법으로서, 3. 제주 4.3 항쟁과 좌익탄압의 미군이나 기지촌 성매매여성 윤금이 살해사건의 추한 미군 같이 폭력적이고 외설적인 모습으로 비추어진다. 아울러 시대의 변천에 따라 주도적 이미지가 어떻게 바뀌는가에 대한 예리한 분석도 흥미롭다. 
이택광(경희대 )은 우리에게서 미국주의는 우리네 일상의 삶을 관통하는 집단 무의식의 중요한 층이라고 진단한다. 한국에서 미국은 우리에게 규범을 강제하는 법(Law)이다. 그리고 이 법에 대한 저항이 ‘민족’이라는 판타지로 현신한다. 그리하여 미국주의와 민족주의는 서로 다르지만 일란성 쌍둥이라는 것이다. 이 착종구조에서 출발하여 이택광은 표면적인 정치세계에서부터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 삶과 의식 깊숙한 곳까지 여지없이 나타나는 친미, 반미, 민족주의 간의 복잡한 매듭을 분석한다.
세계는 있는 대로 보이고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는 언어와 취향구조에 따라 달라진다. 이 측면에서 볼 때 미국주의는 세계를 해석하고 느끼는 방식을 좌우하는 미국식 상징권력이 우리의 상징체계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홍성민(동아대 정치학)은 미국의 상징적 권력이 어떻게 한국 대학의 지식생산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되는지를 특히 정치적 지식의 국제적 전파과정에 주목하여 분석한다. 이어서 이제 한국의 민주화는 언어와 취향이라는 좀 더 섬세한 차원에서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화, 일상적 삶과 정신, 대학에서의 지식생산을 관류하는 미국주의의 형상과 변형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이 글들은 우리의 자화상을, 우리의 사회적 내면을 좀 더 정확하고 정직하게 그리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사회비평>이 지향하는 것에는 정치와 사회현상을 문화와 함께 엮어 이해해보자는 것도 포함된다. 이번 호 “문화비평”에서도 이런 방향의 글들이 지면을 빛내주고 있다. 김인환(고려대 국문학)은 김훈의 <남한산성>을 작가와 호흡을 같이하면서 “말과 길”의 길항관계 속에서 조명한다. 그리고 조광제(철학아카데미)는 최근 뜨겁게 달아오르는 국내 미술시장을 비롯하여 미술계 동향의 이면에 있는 문제점들을 앤디 워홀 붐과 연계하여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그리고 백문임(연세대 국문학)은 우리시대의 두 작가주의 감독인 홍상수와 김기덕을 다각도에서 심층적으로 비교분석한다. 이 중후한 세 편의 문화평론은 기존의 표면 비평이나 인상기를 넘어 우리 문화를 읽는 맛과 깊이를 더해줄 것이다.
시평란에서 김종엽(한신대 사회학)은 내신논란 문제와 함께 불거진 교육 평준화의 향방을 논한 장문의 시평을 통해, 이미 무너질대로 무너져버린 교육 평준화의 실상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그것의 심층적 원인으로 ‘연대 없는 평등주의’를 지목한다. 그것이 지위상승을 위한 극심한 경쟁관계의 모태라는 것이다. 따라서 근본적 문제해결도 연대성의 회복이라는 방향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유정환(경희대 영문학)은 최근 우리 사회를 ‘의심의 덫’으로 몰아넣은 ‘신정아씨 사건’과 관련하여 학문˙예술 영역에서 우리 사회가 지닌 골 깊은 문제를 지적한다.
생활 속의 환경운동가이자 대표적인 그린디자인 작가인 윤호섭 교수와의 인터뷰는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영역에서 일과 삶의 원리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귀중한 사례를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말한다”에서 소개된《농업생명공학의 정치경제학》은 농사의 처음이자 끝인 ‘씨앗’이 자본, 과학기술, 국가전략에 의해 어떻게 상품화 사유화되어, 전세계적 불균등구조를 형성하게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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