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제
2006년 10월, 북한은 핵실험을 단행했다. 북미 핵협상이 시작된 후 약 15년 동안 계속된 수많은 협상의 성과는 무엇인가.
이 책은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전개됐던 1990년대 북미 핵협상과 그 이후 시작된 남북한 및 미국, 중국 간의 4자회담을 추적 분석하면서 북핵문제의 본질을 파헤치고 있다. 당시 미국은 모든 점에서 북한보다 우위에 있었지만, 협상결과 북한이 더 많은 실리를 취했다. 북한은 미국과의 핵협상을 통해 생존의 길을 열었고, 한국과 미국이 제의한 4자회담을 교묘히 활용해 식량난을 극복했다. 현재 북한은 1993년 ‘NPT 탈퇴’라는 카드로 미국에 대응했던 것처럼, ‘핵실험’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쓰고 있다.
출판사 서평
반복되는 북한의 벼랑끝 정책, 1990년대 4자회담으로부터 배울 것은 무엇인가?
북핵문제의 어제와 오늘
북한의 핵문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지난 2월 13일 6자회담에서 타결된 ‘9·19공동성명 초기 이행조치 합의’가 순탄하게 행동으로 옮겨져 한반도를 덮고 있는 핵구름이 말끔히 걷힐 것인가, 아니면 더욱 짙은 먹구름이 금세라도 세찬 소나기를 퍼부을 듯 핵전쟁의 긴장이 고조될 것인가. 혹은 이처럼 극과 극의 상황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경색된 국면이 전개되는가 하면, 부분적으로 협상이 타결되어 화해분위기가 조성되는 등 결렬과 타협이 꾸준히 곡선을 그려나가는 상황도 가정할 수 있다. 사회과학은 미래를 정확히 진단할 수 없다는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다. 무수한 변수들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과학과 같이 미래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사회과학은 그렇기 때문에 ‘일어난 일과 현상’에 대한 분석과 조명을 통해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 전망하려 한다. 미래에 대한 것은 오직 ‘예측’과 ‘전망’의 수준에서 바라볼 뿐이다. ‘예측’이나 ‘전망’은 언제나 가능성의 차원에 머물 수밖에 없다. 오늘 해가 지면 내일은 분명히 해가 뜰 것이라는 자명한 진리는 사회과학의 영역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문제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 역시 ‘예측’과 ‘전망’의 수준에서 해답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 그 해답은 결코 자명한 것이 될 수 없다. 지나고 보니 과거의 ‘예측’과 ‘전망’이 맞았다고 하는 것은 가능성의 범위를 더욱 적확하게 설정했거나 아니면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그렇다면 ‘가능성의 범위’를 어떻게 더욱 적확하게 설정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은 과거의 현상과 사실을 정확히 규명하고 분석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일 것이다. 1990년대의 북한 핵문제에 대한 재조명과 분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도 바로 내일의 북한 핵문제에 대한 보다 적합한 ‘예측’과 ‘전망’을 하기 위해서다.
북핵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라!
이 책은 탈냉전 이후 숨막히게 전개된 북한과의 핵협상과 그 뒤를 이어 시작된 남북한 및 미국과 중국 간의 4자회담을 추적·분석하면서 북한 핵문제의 본질을 파헤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90년대 초 북한의 핵문제가 대두됐을 때 북한이나 미국의 정책이 전개된 과정과 오늘의 상황을 비교·분석해 보면 그 논의의 방법이나 접근에 얼마간의 기술적인 차이가 있을 뿐, 전반적 흐름은 거의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당시 미국은 북한에 비해 모든 점에서 협상의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협상의 결과를 놓고 보면 북한이 더 많은 실리를 취했다. 평양당국은 미국과의 핵협상을 통해 생존의 길을 열었다. 탈냉전의 혹독한 국제정세의 변화에 직면했던 평양당국은 핵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정권존립의 위기를 넘겼다. 이어 시작된 4자회담은 1990년대 중반의 식량위기를 극복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그로부터 수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북한은 핵실험을 단행했고 6자회담을 통해 북한경제의 가장 큰 취약점인 에너지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1990년대와 기술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북한이 사용한 카드의 차이일 뿐이다. 199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라는 카드를 활용했다면, 이번에는 ‘핵실험’이라는 카드를 사용한 것이다. 1990년대에는 북한이 보유한 소량의 플루토늄에 관심이 집중됐지만, 이제는 핵탄두와 핵폭탄이 협상의 핵심내용이 됐다. 북한이 제시하는 핵카드는 그만큼 더 강력하고 위험한 것으로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과 미국은 1990년대의 협상과 유사한 길을 가고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그것으로 모든 협상이 끝나고 강력한 응징뿐이라던 주변국가들의 협박은 ‘엄포’로 끝나고 다시 구체적인 타협책을 모색하고 있다. 1990년대와 마찬가지로 북미간의 관계개선과 에너지 제공 그리고 그에 따른 북한의 핵관련조치 이행을 위한 실무협상이 시작되는 시점인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이와 같은 오늘의 현실을 염두에 두면서 1990년대의 북미 핵협상과 4자회담을 분석했다. 1990년대의 사실(fact)에 대한 정확한 분석은, 오늘날 유사하게 전개되고 있는 현상에 대한 결과를 예측하고 전망하는 데 큰 교훈을 줄 것이 분명하다. 비록 예측하지 못했거나 전망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고 1990년대의 행태와는 다른 결과가 나온다고 해도 그것은 그런 일이 일어나고 난 이후에 다시 조명해 볼 사안이다. 미래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인간능력의 한계를 감안하면, 과거의 유사한 경험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분석하는 일이 현재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현명한 학문적 작업임에 틀림없다. 저자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현재 전개되고 있는 북한 핵문제에 대해 ‘보다 적확한 예측과 전망’을 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1990년대의 북미 핵협상과 4자회담을 규명·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왜 동북아정치체계 수준의 분석인가?
저자는 1990년대의 북미 핵협상과 4자회담을 분석할 때 동북아정치체계 수준에서 분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동북아정치체계 수준의 분석인가? 당시 동북아정치질서와 환경이 미국이나 북한 등 구성국가(actor)들의 대외행동에 다른 어떤 요인보다도 더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북한이 벼랑끝 정책을 취할 수 있었던 것도, 월등하게 힘의 우위를 갖고 있는 미국이 북한과 비교할 때 협상의 이(利)를 취하지 못한 것도 결국은 동북아 정치체계의 독특성과 연관이 있는 것이다. 오늘날 동북아 정치체계를 보면 자본주의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구성국가들간의 관계도 변하는 등 전환과정에 있다.
1990년대의 북미 핵협상과 4자회담을 동북아정치체계 수준에서 조명한 이 책은 6자회담을 비롯해 현재 진행중인 북한의 핵문제를 둘러싼 이해 당사국들의 협상과 타협행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오늘날 동북아 정치체계는, 1990년대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구성국가들의 대외 행동을 제약하거나 기회를 부여하는 등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