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향의 두 번째 여행에세이. 티베트, 미얀마, 크레타, 카라코람 하이웨이, 그리고 동해에 이르기까지 그의 발길이 머물렀던 곳의 풍광들이 굽이굽이 펼쳐진다. 시인의 섬세한 감성으로 풀어낸 유려한 문장들은 시인의 발걸음을 따라 묻어나는 향취와 여행에의 유혹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러면서도 “안을 보고, 밖을 보고, 안팎을 보는” 주변인으로서, 대상을 자신과 동일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고자 하는 진정성이 돋보인다. 그는 이 에세이 속에서, 그저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여전히 해갈되지 않는 정신에 대한 목마름으로 길을 떠나 ‘지나감’과 ‘머묾’, 현재와 과거의 교차점에 서 있는 여행자일 뿐이다.
과거와 현재의 혼재
시인의 발길이 닿는 곳은 과거의 흔적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곳들이다. 수만 년 흐른 강, 수만 년 깊어진 호수, 수만 년 솟아 오른 산, 수만 년 다져진 길…. 억겁의 세월을 지낸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온 인간 삶의 자취들을 마주한 순간에도 그는 과거형을 쓰지 않는다. 대신 짧게 끊어 쓴 현재형의 문장 사이사이에는 과거와 현재의 공존 속에 온갖 상념들이 떠돌고 있다. 그가 지나온 과거의 ‘그곳’들은 ‘오늘을 꾸물꾸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현재와 미래가 흐르고 있는 공간이다. ‘그곳’의 시간은 멈추어져 있지 않으며 여전히 제 생명을 이어나가고 있다. 우리가 책장을 넘기는 이 순간에도.
우기가 되면 집도 모래도 사라지고 한바탕 씻고 씻기고 나면 다시 또 모래가 쌓이고 떠돌던 사람들이 찾아들고 헐렁한 집이 삐그덕거리고 시간은 또 그렇게 강과 사람과 나무와 하늘 세상 모든 것들을 부추기며 흐른다 삶이 구절구절 흘러간다. - ‘이라와디 강’ 중에서 ‘지나가다’ ‘머무르다’
‘지나가다’와 ‘머무르다’ 사이에 있는 것은 쉼표일까, 마침표일까. 시인이 만난 티베트의 유목민들, 미얀마의 사미승들, 파다웅족 여인들, 동해 북평 장터의 상인들…이들은 지금 여기의 우리들에겐 우리 삶 밖의 주변인들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우리는, 끊임없이 떠도는 유목민에게조차도, 그저 잠시 머무르다 떠나는 여행자일 뿐이다. 이 에세이 속에는 수많은 지나감과 머묾의 교차점이 존재한다. 시인은 그 교차점 위에서 관찰자적 시점으로, 자기자신과 대상에의 감정이입을 피하고 있는 그대로를 보려 한다. 떠오른 단상들은 주변인으로서의 생각일 뿐이며 마음의 이끌림은 드러내지 않는다. 대상뿐만 아니라 자기자신에게도 빠져들지 않음으로써, 글을 읽으며 그의 발길을 따라가는 독자들에게도 생각의 공간을 허여한다. 이는 ‘멀리 그리고 분명히 보는’ 유목민의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