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대한민국사

윤무한 지음

판매가(적립금) 재판준비중
분류 나남신서 1180
판형 신국판
면수 360
발행일 2006-12-10
ISBN 89-300-8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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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도서 금액     재판준비중
인물을 통해 혼란한 한국 현대사를 조명하다
암울한 일제시대부터 민주화투쟁의 불길이 타오른 1970년대까지 한국 현대사는 상처가 깊은 만큼 금기처럼 되었다. 현대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역시 이름과 이미지만으로 뿌옇게 존재했다. 이 책은 현대사에 대한 관심을 넓히고 공유하기 위해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다간 당대 인물들의 생애와 사상 및 활동 궤적을 더듬는다. 민중적 민족주의를 주창한 신채호부터, 그동안 역사의 주류에서 제외된 중간파 여운형과 김규식, 한국 현대사를 실질적으로 주도한 이승만, 김일성, 박정희에 이르기까지 우리 현대사에 막강한 영향을 끼친 인물들의 생애는 얽히고 설킨 현대사의 미로를 흥미롭게 풀어갈 것이다.
 
민중적 민족주의자 신채호
단재 신채호는 애국계몽운동가이자 언론인이며, 민족사학자이자 전투적 민족운동가이며 민중적 민족주의자였다. 딱히 어느 한 범주에 넣어 그를 규정하기가 어렵다. 그만큼 모든 방면에서 전면적으로 그리고 치열하게 자신을 불사르면서 일제 식민지시대를 살다가 조국의 제단에 백골까지 헌납한 인물이다. 이 책은 신채호의 근대민족사관과 그가 3.1운동을 계기로 민중 주체의 독립운동이라는 사상적 각성을 하는 과정을 쫓는다.
 
좌익계 민족주의자 홍명희와 김원봉
식민지시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홍명희가 걸어간 정치역정을 통틀어 보면, 그는 좌우익의 대립을 지양하는 민족통일전선 노선을 일관되게 견지했다. 평생 우리 민족의 해방과 통일운동을 위해 고투(苦鬪)한 홍명희의 정치노선을 굳이 한마디로 규정하자면 ‘진보적 민족주의’라고 할까. 그런 굳은 심지 때문인지 북에서 숙청의 피바람이 몰아칠 때도 살아남아 천수를 누렸으며, 죽은 후에는 평양 애국열사릉에 안장되었다.
김원봉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남쪽에서는 1948년 월북하여 북한정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북쪽에서는 민족해방운동사를 김일성 중심의 항일무장투쟁사로 한정한 이데올로기적 제약 때문에 김원봉은 우리 역사책에서 모두 이름이 지워졌다. 그러나 독립운동 관계자료나 해방 후의 자료를 보면 김원봉을 빼고는 한국 현대사의 맥락이 연결되지 않을 만큼 그는 우리 근 현대사의 고비마다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일제시대에는 민족해방운동의 제일선에 섰으며, 해방 후에는 민주주의민족전선의 의장으로 활약했다. 김원봉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관류하는 한줄기 변치 않는 저류(底流)가 있었으니, 그것은 민족독립을 최고의 가치로 삼으면서 민중의 이익을 일관되게 추구한 진보적 민족주의자의 모습이다. 이제 그를 다시 평가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주류에서 제외된 중간파 여운형과 김규식
여운형에게는 정치인을 이념적으로 규정하는 모든 수사가 동원되었다. 공산주의자, 좌경적 사회주의자, 민주적 사회주의자, 민족적 사회주의자, 사회적 민족주의자, 민주주의자, 자유주의자 등 온갖 스펙트럼으로 투영된 것이다. 레닌, 모택동과 교류하고 일본천황과 독대한 일화,《조선중앙일보》사장 시절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말소한 사건, 10여 차례의 테러의 위기에 직면하다 암살당하기까지의 역정을 흥미롭게 엮었다.
김규식은 일제 강점기 동안 파리강화회의 한국대표, 조선민족혁명당 주석, 임시정부 부주석으로 민족해방운동을 위해 헌신했다. 해방 후에는 좌와 우의 합작과 협상을 통한 민족의 해방과 통일을 위해 온몸을 던지는 등 한국 현대사의 주요 고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김원봉, 여운형, 김구와 협력해 통일조국을 건설하려 한 그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서로 화해하고 화합하고 합작해야 한다”, “나라와 전체 민족을 위해서는 지도자건 국민이건 자기 자신부터 먼저 죽여야 한다. 자기를 죽여야 한다”라는 유언은 북핵사태로 남북이 긴장상태에 놓인 지금 더욱 귀한 가르침을 준다.
 
우익계 민족주의자 김 구
백범이 오늘에 와서 단순히 흘러간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더욱 새롭게 해석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사수하면서 대한민국의 법통성을 그 누구보다 강하게 주장한 것보다는, 우익전선의 한가운데 우뚝 섰으면서도 민족자주와 민족통일을 위해서는 좌우익의 협상에 앞장섰다는 점이 높이 평가받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엘리트가 아닌 민중 곁에서 독립운동과 통일운동을 지도한 것은 여느 민족주의자와 차별된다.
 
한국 현대사를 쥐고 흔든 세 명의 독재자 이승만, 김일성, 박정희
이승만은 8.15광복 후 4.19민중항쟁으로 권좌에서 쫓겨날 때까지 이 나라와 민족의 운명에 가장 막강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는 초대 대통령으로서 ‘건국의 아버지’로 받들어졌는가 하면, 말년에는 독재자로 몰려 하와이로 망명, 이국 땅에서 90 생애를 마감했다. 상해임시정부의 대통령이었음에도 대부분의 시간을 미국에서 보내고, 임정 인사들과 끊임없이 반목하며 미국과 결탁해 스스로 신화를 창조한 이승만의 모습은 철저히 기회주의적이고 정치적으로 보인다. 민족분단의 원흉이자 12년의 독재를 통해 수많은 민족주의자를 죽음으로 내몬 이승만의 전 생애가 가감없이 펼쳐진다.
휴전 이후 반세기간 계속된 긴장과 대립, 그리고 크고 작은 사건 속에서 우리는 음모적이고 저돌적이며 강경한 인물로서의 김일성만 보았다. 그러나 그는 북한이 구조적 위기에 처하거나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변화가 몰아닥칠 때마다 예외 없이 실용주의 노선을 취한 유능한 협상가였다. 이 책은 김일성 ‘가짜설’이 유포된 배경을 캐며 김일성에게 드리워진 장막과 신화를 걷어낸다.
박정희는 죽은 지 2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박정희가 이룩한 경제적 성장과 그것을 상회하고도 남는 정치적 과오는 논란의 핵심이기도 하다. 저자는 교사에서 친일파 군인으로, 광복군으로, 공산당원으로, 반공이데올로기의 핵심으로, 민주화를 억압한 폭군으로 극과 극으로 변신한 그의 일생을 쫓는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에는 대의(大義)가 있었다기보다는 강력한 생존본능이 작용했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 친일파 군인에서 광복군에 합류했으니 친일파를 청산할 수 없었고, 공산당원으로 가입했다가 동료들을 밀고한 후 강력한 반공주의자가 된 것도 당연해 보인다. 이러한 생존본능의 결과가 지금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
 
권력에 대항한 민주주의자 조봉암과 장준하
조봉암은 식민지에서 해방으로, 그리고 분단과 전쟁과 독재로 이어진 격동의 한국 현대사, 그 굽이굽이에서 현실적 이상을 실현하려 한 드문 인물 중 하나였다. 그는 일제 식민지시대에는 공산주의운동 지도자로, 해방정국에서는 ‘제3전선’의 지도자로, 남한 단독정부 수립 직후에는 초대 농림부장관과 국회부의장으로서, 1950년대에는 이승만 정권과 보수야당에 대립하는 진보적 정당을 이끌어나감으로써 한국 현대사의 중심에 위치했음에도 아웃사이더로 취급된 정치지도자다. 1950년대 이승만 독재정권 아래 과감하게 전개했던 ‘평화통일운동’과 ‘진보당’ 활동은 ‘정치적 음모에 의한 처형’과 함께 조봉암의 짧지만 굵었던 일생을 이 나라 민주주의의 발전과 진보적 정치의 표석으로 남겼다.

이승만 독재시대와 박정희 정권 동안 민주주의의 등불을 밝힌 장준하는 1975년 8월 17일 산행하다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 그 후 장준하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었으나 20여 년이 흐른 후에야 훈장이 수여되었고, 의문사를 조사하기에 이르렀다. 이 책은 일본군에 입대한 뒤 사지를 넘나들며 탈출해 광복군에 합류한 후 민족주의자의 길을 걷다 광복 후에는 민주주의자로 변모한 장준하의 궤적을 밟는다.
 
 
책 속으로
박정희의 만군(滿軍)시절에 대해 일본인 동료는 이렇게 회상했다.
박정희는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말 한마디 없는 음침한 성격이었다. 그런데 “내일 조센징 토벌 나간다” 하는 명령만 떨어지면 그렇게 말이 없던 자가 갑자기 “요오시(좋다)! 토벌이다!” 하고 벽력같이 고함치곤 했다. 그래서 우리 일본생도들은 “저거 좀 돈 놈 아닌가” 하고 쑥덕거렸던 기억이 난다. ― “박정희 : 개발독재 18년의 난반사” 중에서
1960년 제4대 정 부통령선거 부정 당시《사상계》는 이승만의 하야(下野)와 정권교체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다른 언론에서 언감생심할 대담한 주장이었다. 4.19민중항쟁 당시 데모대가 화신백화점 건너편 한청빌딩에 걸린 ‘사상계’의 깃발을 올려다보며 환호성을 올린 것은《사상계》의 역할에 대한 시위대의 공감 때문이었다. ― “장준하 : 어느 민족주의자, 바람의 묘비명” 중에서
신채호
민중혁명 선언한 강골의 민족혼
홍명희
<임꺽정>의 작가, 파란의 한평생
김원봉
급진적 민족주의자의 비극적 삶
여운형
좌우합작의 선봉에서 쓰러지다
김규식
중도파 견인한 이성의 정치인
김 구
앞서 걸은 민족통일의 그 발자취
조봉암
'사법살인' 당한 한국적 진보
이승만
초대 대통령, 그 빛과 그림자
김일성
'반쪽 한국'의 '가짜설'과 신화
박정희
개발독재 18년의 난반사
장준하
어느 민족주의자, 바람의 묘비명
 
고려대 사학과, 동대학원 수료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원
동아일보사 기자, 경향신문사 부장 부국장
국민일보사 논설위원, 민주일보사 편집국장
대통령비서실 통치사료비서관
강원대 사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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