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의 태동에 대한 시각

1990년 이후 현재까지 한국의 복지제도는 복지국가가 태동했다고 논하기에 충분한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논자마다 견해가 다르다. 복지국가의 태동을 말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부터, 그런 성장은 인정되지만 여전히 부진하고 소극적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견해, 한국의 복지수준은 복지국가를 논할 수 없고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추세에 있을 뿐이라는 부정적 견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견해들이 제기된다.
논자마다 의견이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복지제도의 발전상을 평가할 기준이 되는 자료가 분산적이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실증적 자료의 수집과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복지제도 변화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복지정책의 구조변화를 보여줄 수 있는 연구방법론을 활용했다. 이를 통해 한국에서 복지국가가 시동을 걸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 그 과정에서 어떤 특성이 만들어졌고 무슨 제약이 부과되었는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점검했다. 이런 과정에서 복지제도의 발전과 변화에 대한 이론적 시각을 날줄로 하고, 그에 대한 실증적 자료를 씨줄로 삼아 이 책을 엮어냈다.
한국의 복지정치를 논하기에 앞서 읽어볼 만한 이 책을 사회복지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복지국가로 발전하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복지국가로의 시동이 걸렸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복지국가가 탄생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발전과 성장의 길은 험난하다”는 조건을 달았다. 다시 말해 복지국가가 탄생했다기보다 ‘복지국가로의 시동이 걸린 것’이다. 이렇게 시동을 걸게 한 두 물줄기가 바로 민주화와 세계화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으로 가늠할 수 있는 한국의 현주소를 보면 복지국가로의 길은 평탄치 않다.
노무현정권에서 복지제도의 성장이 더디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말할 수 없다. 민주주의가 복지제도의 발전에 미치는 영향은 대체로 느리고 완만하다. 노무현정권이 분배 프로그램에 정책적 역량을 집중했으나 별로 성과가 없었던 것은 경제위기의 소멸과 복지확대에 대한 거부권의 회복 때문이다. 또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은 다양한 이해집단의 반대를 불러왔다. 이 때문에 신규 프로그램의 도입을 두고 여러 가지 갈등과 대립이 일어났지만 뚜렷한 복지업적은 거의 없어 보였다.
노무현정권은 국정원리에 관하여 패러다임적 전환을 일궈냈다. ‘분배와 평등’은 노무현정권이 추진한 가장 강력한 정치적 슬로건이고, 복지제도는 그것을 실현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국정이념에서 성취한 패러다임적 전환은 실질적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새로운 복지정책을 과제로 남긴다

‘위기’(危機)는 두 가지의 한자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위험을 뜻하고 다른 하나는 기회를 뜻한다. 한국은 지금 복지국가로 발전하는 데 위기를 맞았다. 그렇다면 여러 가지 자료분석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위험 요소를 어떻게 기회로 만들 것인가?
한국은 복지서비스 영역을 늘려야 한다. 또한 복지제도를 치밀하게 설계해야 한다. 그러나 경기침체와 관용심의 부족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정부가 어떤 논리를 동원해도 비방과 왜곡으로 귀결될 뿐이다.
점진주의적, 부가적 방식의 느린 성장, 새로운 복지수요가 사회적 쟁점으로 부상한 이후에야 새로운 프로그램이 도입되는 사후적 조치, 소극적 조치, 기업구조조정이 쏟아내는 문제들을 해소하는 방식의 반응적 정책양식, 그리고 경기침체와 함께 강화되는 거부권과 반복지이념 등, 한국의 복지제도에는 많은 제약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양식으로 건강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사회서비스 문제 등과 관련하여 ‘새로운 복지정치’의 탐색이라는 과제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