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혀

샴세딘 모함마드 헤페즈 쉬러지 지음 신규섭 옮김

판매가(적립금) 8,000 (400원)
분류 기타도서 소네트 003
판형 국판
면수 248
발행일 2005-10-15
ISBN 89-300-18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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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도서 금액     8,000
중세 이슬람 시학으로는 한국에서 처음으로《신비의 혀: 페르시아 소네트》가 나남출판에서 출간되었다. 허페즈의 시는 서남아시아뿐만 아니라 터키와 아랍을 포함한 이슬람권과 유럽에서 수십 개의 언어로 번역되었지만, 그동안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고대로부터 아시아의 양대 문화는 중국과 페르시아(이란)에 의해 지배되었다. 술과 사랑을 노래한 중국의 최고 시인이 이태백이라면, 이에 대응하는 페르시아의 최고 시인은 허페즈(Hafez, ?~1390)다.

허페즈는 14세기 초 이란 남부에 있는 예향(藝鄕)의 도시, 쉬러즈(Shiraz)에서 태어났다. 쉬러즈는 허페즈와 함께 중세 페르시아 문학을 이끈 사아디(Sa’di)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일부 이란 학자들은 중세 세계문학에서 페르시아 문학이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에 이른다고 주장하는데, 그 찬란했던 중세 페르시아 문학의 최고봉에 허페즈가 우뚝 서 있다. 괴테는 중세 페르시아 문학을 ꡒ위대하고 엄청난 문학ꡓ이라며 ꡒ유럽문학은 탁월한 페르시아 시인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ꡓ라고 말하였다. 특히, ꡒ허페즈는 누구도 대적할 자가 없는 시인ꡓ이라고 극찬하며, 생의 말기에《서동시집》(西東詩集)을 지어 허페즈의 시에 화답하였다. 허페즈는 가잘(Ghazal, 소네트)의 시형을 이용했는데, 가잘은 첫 행 두 반구의 각운이 일치해야 하고, 7~14행에 이르는 각 행의 각운이 일치해야 한다. 허페즈의 시는 괴테의 번역을 통해 유럽의 다른 언어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가잘이 세계문학을 휩쓰는 계기가 되었다.

허페즈는 대학에서 코란과 신학을 강의했으며 코란을 암송한다는 뜻에서 ꡐ허페즈ꡑ(암송하는 자)라는 호가 붙었다. 그에 대한 또 다른 애칭은 ꡐ신비의 혀ꡑ라고 붙었는데, 끝없이 상상력을 유발시키는 다의적 시어로, 비밀스런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는 그의 언어적 능력 때문일 것이다. 그는 생의 중․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세속적 사랑을 넘어 ꡐ신의 빛ꡑ을 봄으로써 이러한 애칭은 또 다른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이때 ꡐ신비ꡑ란 시인의 숨과 호흡으로 닦아내는 내면의 거울인 것이다.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고대 페르시아는 수세기 동안 불교문화를 경험했으며, 불교가 자취를 감추면서, 중세 이슬람 시대에 이르러 존속한 불교문학이 수피(Sufi) 문학으로 탄생한다.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서아시아 국가들이 불교국가를 형성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는 데 비해, 이러한 불교사상을 형성한 중심 국가였던 페르시아(이란)가 빠져 있음으로 인해 아리안의 사상체계가 제대로 이해되지 않고 있다.

허페즈는 중세 이슬람 시대에 살면서도 고대로부터 형성되어온 페르시아의 범신론적 믿음체계에 의지했다. 이란이라는 국명은 아리안에서 따왔는데, 외래종교인 이슬람교가 들어오기 전 아리안의 사유체계는 미트라교-조로아스터교-불교와 마니교(신불교)로 이어지는 범신론이 지배했다. 허페즈는 이란을 비롯한 서남아시아 국가에서 성자로서 추앙받지만, ꡐ근엄함ꡑ으로 상징되는 동양적 성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중세 페르시아 시학의 토대는 고대 페르시아 불교가 존속한 수피즘이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지만, 인간 본성과 감성에 얼마만한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각 시인의 특징이 달라진다. 한국 철학의 사단칠정론에 비교해 본다면 허페즈는 칠정론자로 파악할 수 있으며, 부조리, 광기와 카오스는 그의 철학과 사상을 이루는 반이성주의의 한 축이 되어 감성론이나 사랑(직관)론과 더불어 그의 문학을 지탱한다.

페르시아 수피즘은 이슬람 수피즘의 기원이 되었다. 이 수피즘은 이란인들의 정신적 원형이자 페르시아의 道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영성이 중세 페르시아 시인들의 사상을 지배해 왔기 때문에 영적 전통에 대한 이해 없이는 페르시아 고전시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허페즈의 시는 두 가지 면으로 해석된다. 겉으로는 중세 페르시아의 문명화된 생활, 즐거움과 후견인에 대한 칭송이 표면상의 가치이고, 안으로는 은밀한 방법으로 수피신학을 읊조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허페즈의 시는 인본주의적 사랑을 특징으로 하면서 민초들의 삶에 대한 연민, 위선에 대한 경멸과 궁극적 실재에 대한 탐구를 근간으로 한다. 그는 이전에 구사된 적이 전혀 없는 새로운 문체로 신에 대한 사랑과 연인에 대한 사랑을 혼합시켰다.
페르시아 문학의 황금시대에 가장 우뚝 선 허페즈의 시를 통해 서양 문학의 부족분을 채울 수 있으며 이슬람 문학의 실체를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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