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한국경제발전사

이대근 外 지음

판매가(적립금) 28,000 (1,400원)
분류 나남신서 신서 1113
판형 신국판
면수 600
발행일 2005-09-27
ISBN 978-89-300-8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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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도서 금액     28,000
국내 역사학계의 주류는 이미 조선 후기에 자본주의의 싹이 텄다는 ‘자본주의 맹아론’, 일본 제국주의로 인해 자생적 근대화가 지체되었다는 ‘수탈론’, 해방 이후 급속한 공업화는 한국사회 내부의 동력에 따른 것이라는 ‘내재적 발전론’의 입장에 서 있다. 이는 한국사의 내재적 발전과 자생적 근대화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일제 식민사관에 대한 강력한 반대명제였는데, ‘제국주의 비판을 위한 이데올로기’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1970년대 일본 학자들은 한국?대만의 고도성장의 원인으로 ‘식민지 역사’에 주목하기 시작하였고 본격적인 연구로 이어졌다. 안병직 교수는 이러한 일본 학자들의 연구성과를 소개하였고, 경제사방법론을 수용하면서 1987년에 낙성대연구실(현 낙성대경제연구소)을 창립했다.《근대조선공업화의 연구》(일조각, 1993),《조선토지조사사업의 연구》(민음사, 1997)와 같은 연구성과는 국사학계를 상당한 자극을 주었다. 1990년대 중후반 여러 지면을 통해 ‘수탈론’, ‘식민지근대화론’ 논쟁이 활기차게 진행되었다. ‘식민사관의 재현’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낙성대경제연구소의 방대한 수치와 통계를 분석하는 ‘실증적 방법론’을 통한 연구성과는 꾸준히 발표되면서 저변을 넓혔다.

이 책은 그러한 낙성대경제연구소가 실증적 경제사 연구성과를 토대로 17~19세기 조선 후기이후, 오늘에 이르는 한국경제의 긴 역사적 전개과정을 기존의 통설과는 다른 시각에서 재평가?재해석하고자 한 기획의 성과로 만들었다.

모두 4부 17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부 “전통사회의 경제와 그 이행”은 17~19세기 조선후기의 사회경제 실상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살펴보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먼저 제1장(박이택) “조선 후기 경제체제”는 조선의 경제체제의 하위체계를 구성하는 소농(小農)경제, 미곡(米穀)경제, 화폐경제, 재분배경제 등이 어떠한 방식으로 상호연계되어 있고, 각 경제주체의 경제적 행위양식의 특성을 통해 조선 후기 경제체제의 성격을 밝혀 당시 중국이나 일본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를 비교사적으로 분석한다. 제2장(박기주) “조선 후기 농민의 생활수준”은 당시 1인당 경지면적이나 토지생산성 등을 통하여 농민의 생활수준을 가늠하고, 이를 중국이나 일본의 그것과 비교한다. 제3장(김재호) “전통적 재분배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이행”은 18세기 이후 20세기초에 걸친 조선 후기의 전통적 경제체제의 특징인 ‘재분배경제’에서 근대적인 ‘시장경제’로의 이행과정을 밝힌다.

한국경제를 둘러싼 국제관계가 어떻게 진전되고 그를 통한 각종 경제제도의 개혁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다룬 것이 제2부 “국제관계와 시장경제제도의 발달”이다. 여기서는 한국경제가 개항 이후 식민지기와 해방 후의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제도를 어떻게 발전시켰으며, 또 그 과정에서 어떻게 경제발전도 가능했는가 하는 점에 분석의 초점을 맞추었다.
제4장(이헌창) “개항기?식민지기의 국제경제관계”는 1876년 개항에서 1945년 해방되기까지 한국경제를 둘러싼 대외적 관계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고찰한다. 앞의 제4장을 이어받아 제5장(이대근) “해방 후 경제성장과 국제적 계기”에서는 해방 후 한국경제의 전개에서 국제적 요인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검토하고, 한?미?일 무역구조의 변화 등에 따른 국제적 계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제6장(이영훈) “시장경제제도의 성립과 발달”에서는 전통사회에서 근대적인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제도로 이행하기 위한 전제조건인 ‘사유재산제도’의 확립이나 근대적 ‘민법’의 도입, 그리고 유통 근대화를 위한 각종 시장기구의 정비 등이 주로 20세기 초 식민지 시대에 들어 일본 식민지정책 일환으로서의 각종 법령(朝鮮民事令 등)이나 사업(토지조사사업 등)의 실시를 통해 성립되고 발달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구체적 예증을 통해 밝힌다. 제7장(이명휘) “금융제도의 형성과 발전”은 식민지시기의 근대적 제도금융 성립과 식민지 금융제도가 과도기를 거쳐 1960년대 본격적인 경제개발과 더불어 다시 정책, 곧 개발금융으로 재생되는 과정을 분석한다.

제3부 “경제성장과 공업화전략”에서는 식민지시대에도 상당한 수준의 공업화와 경제성장이 이루어졌음을 인정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해방 후 농업을 포함하는 경제개발과정에서의 제도개혁과 공업화전략을 주요 테마별로 살펴본다. 식민지시대의 공업화나 농업의 발전, 그리고 국민의 생활수준 문제를 포함해 해방 후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구조변동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부분이다.
제8장(장시원) “근?현대 농업성장과 구조변동”에서는 먼저 식민지기에 대표적 농업정책이었던 ‘산미증식계획’의 영향을 다각적으로 분석한다. 이어 식민지하에서 생성된 ‘기생지주제’(寄生地主制)가 해방 후 1950년대 초에 실시한 농지개혁으로 소멸하게 된 점, 그와 함께 1950년대 농지개혁이 소농경영(小農經營)의 기반을 확립해 그 후 한국농업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는 점을 밝힌다. 아울러 1960년대 이후 농업발전과 구조변동과정에서 제기되는 여러 문제점도 분석한다. 제9장(김낙년) “식민지기 공업화의 전개”에서는 지금까지 제기되었던 식민지공업화를 보는 여러 논점을 정리하고, 해방 후 공업화까지 포함하는 수량적 지표를 제시해 이 시기 공업화와 구조변화를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조망한다. 제10장(주익종) “식민지기 조선인의 생활수준”은 식민지기에 있어 조선인의 생활수준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하는 물음에 대한 회답을 얻기 위한 것으로, 우선 기존의 생활수준 악화론과 개선론의 주요 쟁점을 비교 검토한다. 다음에 최근의 낙성대연구소 연구팀의 식민지기 GDP/GDE 추계작업 결과를 소개하고 그것으로 조선인의 소득이나 소비도 늘어났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제11장(최상오) “외국원조와 수입대체공업화”는 1948년의 정부수립 후, 그리고 1950년대 오로지 미국원조에 의한 전재(戰災)복구와 부흥을 위한 경제계획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는데, 미국원조 도입을 둘러싸고 한?미 두 나라 간의 원조규모와 조건, 원조물자의 구성, 적용 환율 등의 문제를 가지고 항상 대립했음을 밝힌다. 제12장(이상철) “수출주도공업화 전략으로의 전환과 성과”에서는, 196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재빠른 수출주도전략으로의 방향전환이 수출의 급속한 확대는 물론 수출구조의 고도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오게 된 과정을 주로 수출실적 분석을 통해 밝힌다. 아울러 고도성장의 원인을 1950년대까지의 앞선 공업화 경험과 1960년대 이후의 세계경제동향이 국제분업적 측면에서 한국수출에 유리하게 작용하였다는 점 등도 함께 지적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제13장(박영구) “구조변동과 중화학공업화”는 1970년대 정치적으로는 ‘유신체제’하에서 경제개발의 핵심적 과제로 추진된 중화학공업화 정책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작업이라 할 수 있다. 여러 난관을 무릅쓰고 성공적으로 추진된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가 1980년대 이후의 한국경제 전개에 미친 수출촉진효과 등의 긍정적 경향과 더불어 다른 한편으로는 자원배분의 왜곡 등이라는 부정적 영향까지 함께 규명한다.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10여 년 이상 1인당 소득 1만달러 수준에서 맴돌고 있는 한국경제의 현재의 모습을 놓고 사람들은 ‘중진국 함정’에 빠진 것이 아니냐고 하기도 한다. 제4부 “한국경제의 당면 과제와 전망”에서는 한국경제가 선진국으로의 진입하기 위하여 요구되는 당면 과제로 ①재벌문제와 산업(재벌)정책, ②노동정책, ③금융시장정책, 그리고 ④국제화 전략의 4가지를 우선적으로 골라, 각각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제14장(신장섭) “기업집단과 재벌정책”은 한국의 ‘재벌’유형의 기업집단은 세계적으로 보편적 현상이라는 점과, 한국에서의 기존 재벌문제 논의와 대책은 잘못되고 있다는 기본 인식아래 기업집단이 광범하게 확장되는 원리를 ‘범위(範圍)의 경제’(economies of scope)이론으로 설명한다. 제15장(박덕제) “노동정책과 노사관계”에서는 이를테면 양질의 풍부한 노동력의 존재가 경제성장의 필수적 조건임을 전제로, 1960년대 이후 한국경제 성장과정에서 이러한 조건이 어떻게 충족되어 왔는가를 밝힌다. 제16장(김석진) “금융개방화와 정책과제”에서는 준비되지 않는 금융의 자율화?개방화 조치는 국내금융산업에 여러 가지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심지어 많은 금융기관이 외국자본의 손아귀에 넘어가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금융개방화가 곧바로 외국금융자본에의 종속화로 귀결되지 않게 하는 대책도 강구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제17장(이대근) “한국경제의 국제화 전략”에서는 먼저 오늘의 세계경제 추세를 글로벌리즘과 리저널리즘으로 가르고, 그 속에서 제3의 대안으로 이른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방식이 있음을 지적한다.
------------------<동아일보 2005-10-08>
식민지 근대화론을 연구하는 낙성대경제연구소가 실증적 경제사 연구 성과를 토대로 19세기 개항을 통한 문호 개방과 서구 문물 도입, 20세기 전반의 식민지기, 1945년 광복과 분단, 전쟁, 1960∼70년대 경제 도약과 고도성장, 1990년대 이후 외환위기와 구조조정에 이르는 한국 경제의 전개 과정을 주요 테마별로 살펴본 책이다. 이대근 성균관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를 비롯해 16명의 중진 경제학자들의 논문 17편이 실렸다. 1부에선 17∼19세기 조선후기 사회경제 실상을 있는 그대로 살펴보며 2부에선 한국 경제를 둘러싼 국제 관계가 어떻게 진전되고 각종 제도 개혁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다뤘다. 이어 3부에선 식민지시대에도 상당한 수준의 공업화와 경제성장이 이루어졌음을 인정하는 연장선상에서 광복 후 경제개발 과정에서의 제도 개혁과 공업화 전략을 다뤘으며 마지막으로 선진국 진입을 위한 당면 과제와 해결 방안을 짚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조선일보 2005-10-07 >
실증에 입각한 경제사
[조선일보 이한수 기자]
‘새로운’ 이유는 총론을 쓴 이대근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글에 잘 나타난다. 이 교수는 “한국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자기 역사를 쓸데없이 미화하거나 일반 국민으로 하여금 자기 역사의 객관적 사실에는 눈을 멀게 하고 있다”며 “실증적 경제사 연구성과를 토대로 기존의 통설과는 다른 시각에서 (한국경제를) 재평가해 보고자 한다”고 말한다.
비판의 칼날은 역사학계의 주류 이론에 겨눠져 있다. 조선후기에 이미 자본주의의 싹이 텄다는 ‘자본주의 맹아론’, 일제 때문에 자생적 근대화가 지체됐다는 ‘수탈론’, 해방 이후 급속한 산업화는 한국사회 내부 동력에 따른 것이라는 ‘내재적 발전론’ 등이다.
1987년 창립한 낙성대연구소의 경제학자 16명이 조선후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경제의 발전과정을 실증적으로 분석한다. 17~19세기 경제와 생활수준,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생활과 공업화 정도, 해방 후 원조경제와 중화학공업화의 성과와 문제점 등을 평가한다.
--------------------------<조선일보 2005-10-11 >
"한강의 기적 평가 왜곡됐다"
'새 한국경제발전사(共著)' 낸 진보학자 이대근 성대 명예교수
"민주화정권 이념적 지향 국민들 역사관 눈멀게 해"
[조선일보 김기철 기자]
“1960년대 이후 한국이 거둔 경제발전은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것임에도 국내 일각에서는 그것을 인정치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경제에 대해서까지 이처럼 무모하게 자행되는 이념적 왜곡과 편향은 마땅히 바로 잡아야 한다.”
경제사학자 이대근(李大根·66)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박정희 개발모델에 대한 일각의 부정적 평가에 직격탄을 날렸다. 경제사학계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낙성대경제연구소’(소장·이영훈 서울대교수) 학자 15명과 함께 지난 주 출간한 ‘새로운 한국경제발전사’(나남출판사)에서다. 이 교수는 총론에서 “이른바 민주화 정권의 이념적 지향은 국민들로 하여금 자기 역사의 객관적 사실에는 눈을 멀게 하고, 반대로 나르시시즘적 자기 도취사관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면서 “지난 날의 역사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오늘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것에 대하여도 오로지 ‘민족이란 창(窓)’을 통해 바라보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난주 국사편찬위원회와 역사 관련 4개 학회가 공동주최한 광복 60년 학술대회에서도 발표에 나서 ?식민지 유산의 긍정 ?1950년대 경제 성장에 대한 재평가 ? 대일 청구권 자금의 경제개발 기여 등 민감한 이슈를 제기,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그의 주장 중 식민지배 유산과 박정희 개발 모델에 대한 평가 등은 상당한 논란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이 교수는 1980년대 고 박현채 교수와 사회구성체 논쟁을 주도하는 등 진보적 학술운동의 중심에 있었고, 경제사학회 회장을 역임한 중진 학자다. 지난 8월 성균관대에서 정년 퇴직했지만, 더 정열적으로 학문에 매달리고 있다. 10일 낮 경기도 과천 자택에서 이 교수를 만났다.
―60년대 이후 경제발전 성과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는가.
“경제학쪽과 역사학, 사회학, 정치학 등 비(非)경제학 분야의 시각이 너무나 달라서 그런 것 아닌가. 경제보다는 정치적 입장이나 민족주의적 이념이 개입돼있기 때문에 논쟁조차도 어렵게 되어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관련돼 있기 때문인가.
“그렇겠지. 어떤 학자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아니고 장면이나 다른 사람이 맡았더라도 이 정도로 잘 됐을 것이라고 하지만, 이런 추론은 무책임하고 과학적이지도 않다. 동아시아 신흥공업국가를 보자. 장제스나 장징궈, 리콴유 등 우리만큼 독재 안 한 나라가 있는가. 산업화 초기에 어느 정도의 정치적 통제와 억압이 따르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가. 왜 박정희의 경우만 매도하려고 하는가.”
―산업화 초기에 자본의 동원과 배분을 위해 정치적 독재가 필요하다는 것은 지나친 합리화 아닌가. 노동자에 대한 탄압이나 소득 불균형 등의 후유증도 만만찮다.
“산업화 선진국이란 영국을 보자. 산업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방직 노동자들이 폐결핵에 시달렸는가. 독일이나 일본도 1930년대에 중화학 공업화 과정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가 얼마나 심했는가. 한국은 오히려 이들 경우에 비해 착취의 정도가 훨씬 덜했고, 기간도 짧았다. 우리 사회의 비판론자들은 국제 비교사적 안목이 너무나 부족하다. 소득 불균형도 구체적 수치에 의존하지 않은 주장을 펴고 있다. 소득분배의 불균형을 나타내는 지니 계수를 보면, 우리는 대단히 낮다.”
―97년 이후 IMF식 구조조정 이후 우리 경제가 ‘중진국 함정’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국식 노사관계나 경영기법의 일방적 도입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조건적인 노동 시장 유연화는 근로자의 근로 의욕을 떨어뜨리는 등 폐단이 있다. 기업에서는 기회만 있으면 사람을 자르려고 하는데, 종업원들이 왜 온몸을 던져 일하겠는가. 한국이 지금 이런 미국 기업을 따라가고 있다.”
―김대중 정부의 남북 관계 기조변화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고 비판했다.
“2차 대전 이후, 국내 분업을 강조한 나라 경제는 실패했고, 국제 분업에 치중한 나라는 성공적이었다. 실패한 경우의 대표적 사례는 북한이다. 그런데, 남북한간의 6·15 선언을 보자. 민족 경제를 육성하자는 대목이 나온다. 이것은 한국을 놓고 보면, 국제 분업체제에서 북한을 포함하는 국내 분업체제로 넘어가자는 소리다. 따라서 한국 경제에는 나쁠 수 밖에 없다.”
---------------------------<교수신문.2005.10.31>
놀라운 실증연구 축적...연구방향의 지나친 편중 문제2005년 10월 30일 송규진 고려대
송규진 /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한국사
낙성대경제연구소에서 기획하여 발간한 ‘새로운 한국경제발전사’는 전통사회의 경제와 그 이행, 국제관계와 시장경제제도의 발달, 경제성장과 공업화전략, 과제와 전망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기적으로 조선후기로부터 19세기 개항을 통한 문호 개방과 서구 문물의 도입기, 식민지기, 해방과 민족분단, 그리고 6·25전쟁을 겪은 혼란기, 1960~70년대의 경제 도약과 고도성장기, 1900년대 이후의 IMF 경제위기와 구조조정, 그리고 경제패러다임 전환에 처한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발전사적 시각에서 다루고 있다.
집필진에서 겸손하게 이야기하듯이 필자들이 많기 때문에 책의 일관적 통일성에서 문제가 있고 반드시 다루었어야 할 주제들을 빠트린 경우가 있다고 해도 한국근현대 경제사를 일목요연하게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또 통계를 자료로 활용하고 추계 등의 방법론을 활용하면서도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노력한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각각의 장들이 논문형식을 취하고 있고 장마다 주제가 다르기 때문에 책 전체를 일률적으로 평가하면 무리가 따를 수 있다. 다만 집필진이 이 책의 집필 동기를 총론에서 명확하게 밝히고 있기 때문에 동기와 그 결과에 중심을 두고 살펴보고자 한다. 집필진은 17~19세기 조선 후기 이후 오늘에 이르는 한국경제의 긴 역사적 전개과정을 놓고 어떤 측면에서든 기존의 통설과는 다른 시각에서 그것을 재평가·재해석하고자 했다. 집필자들이 이야기하는 기존의 통설과 다른 시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집필진의 의견을 종합하면 다음의 두 가지가 아닌가 한다. 먼저 조선 후기의 상품화폐경제의 발전과 자본주의 맹아의 출현, 개항 이후 세계시장에로의 편입과 외압에 의한 ‘내재적 발전’의 좌절, 식민지 지배에 대한 수탈과 그에 대한 저항이라는 관점을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1960년대 이후 한국이 거둔 세계사에 그 유례가 없는 경제발전에 대해서 국내에서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풍토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역사학계에서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논의 중의 하나가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수탈론’을 둘러싼 문제이다. 이런 민감한 문제에 대해 이 책은 명확하게 자신들의 시각을 드러낸 셈이다.
역사학계에서는 조선후기 이래 내재적으로 성장해온 근대화의 싹이 일본의 침략에 의해 짓밟히면서도 그것이 어떻게 발전해왔는가를 밝히는 데 집중되었다. 이러한 노력들은 종래 일제 식민사관에 의해 각인되었던 ‘한국사 정체론’을 불식하는데 공헌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런데 이 책의 집필진은 특정 이념(이데올로기)을 앞세운 규범적 연구방법론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객관적 史(資)料에 기초한 실증적 방법으로 선회하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기울이자고 주장하면서 기존 역사학계의 통설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역사학계에서도 기존 연구에서 조선후기의 발전상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한 것에 대해서는 비판이 일고 있지만 구체적인 사료에 입각해서 농업생산력이 발전하고 상품화폐경제가 발전했다는 것을 입증해 냈다. 그런데도 이 책은 ‘새로운’ 관점을 주장하기 위해 몇 가지 부분적인 사례로 전체를 확대 해석하려는 문제를 드러냈다. 제2장에서는 조선후기의 생활수준이 이전보다 열악했다는 것을 분석하려고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과 일본과 비교하면서 조선의 농업이 상대적으로 가장 후진적이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조선후기 토지생산성의 하락 원인으로 이앙법이 보급되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85~86쪽). 그런데 이는 제3장에서 시장경제가 발전한 원인의 하나로 이앙법과 같은 농업기술이 보급되어 농업생산성이 높아짐으로써 농민들이 교환할 수 있는 잉여생산물이 늘어났음을 지적함으로써(113쪽) 논리가 모순되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한 원인은 또 다른 규범적 연구방법론을 활용했기 때문이 아닐까.
일제하 한국경제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무제한적인 수탈이 자행되었다는 다소 감정적인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은 민족해방운동의 당위성을 부각시키려는 실천의지를 담고 출발하였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와 긍정성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감정적인 차원의 설명으로는 전근대의 약탈과 구별되는 제국주의 단계의 식민지 수탈구조에 대한 객관적 분석을 할 수 없었기에 이론적이고 실증적으로 내용을 채워가지 못한 측면이 있다. 이런 점에서 집필진이 ‘경제성장론’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많은 실증적 연구를 축적하고 있고 많은 논점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통계분석에 입각하여 당연히 도출되게 마련인 경제의 성장에 치중되어 그것에 내재된 정치적 의미, 계급적 성격, 식민지자본주의의 질적 성격과 발전전망, 삶의 질의 문제 등을 총체적으로 분석하지 않은 채 통계에 의한 결과를 전체상으로 파악하는 것은 결국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특히 통계수치를 제시하며 식민지기 조선인의 생활수준이 향상되었다는 주장(제10장)은 많은 논란이 예상된다. 당시 일제하의 수많은 자료와 일제를 경험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은 모두 거짓에 불과하단 말인가?
1960년대 이후 한국경제의 성장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없다. 이 책에서 국내에서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는데 누가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말인지 그 주체가 명확하지 않다. 아마 이 책의 집필진의 불만대상은 한국의 경제성장과정에서 구조적인 문제점을 분석한 연구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동안 재벌에 대한 특혜 및 정경유착, 수입확대 및 대외의존, 정부의 고도한 개입, 금융통제와 배분 불균형, 중화학공업화의 부적절한 시기선택과 과잉·중복투자·저효율, 노동문제 및 빈부격차, 농업문제, 환경 문제 등에 대한 많은 연구가 축적되었다. 과연 이러한 문제제기를 일컬어 이데올로기적 편향과 왜곡으로 매도할 수 있는 것인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왜곡’과 ‘편향’에 맞서 이 책에서는 명확하게 ‘새로운’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국의 ‘재벌’유형의 기업집단은 세계적으로 보편적 현상이라는 점과 한국경제가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재벌의 확장능력과 그를 지원한 정부의 강력한 정책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입증하기 위해 재벌경영은 효율성이 높았음을 강조했고 재벌이 비민주적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어불성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제14장).
노동정책과 노사관계에 대한 시각은 더욱 ‘새롭다’(제15장). 노동조합에 대한 규제가 강력해져 노동운동이 위축된 유신체제하에도 개별근로자를 보호하는 조치가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박정희정권의 노동시장정책도 대단히 모범적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1980년대 학생층의 노동운동 침투(?)도 당시의 자본-노동관계는 고려하지 않고 해방 당시 남한 사회주의 사상의 연장선상에서 1980년대 당시까지도 북한사회에 대한 동경과 환상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1987년 이후에는 근로자 과잉보호를 상쇄하던 노동조합에 대한 통제가 해체되면서 이전에 존재하던 힘의 균형이 노조와 근로자에게 유리하게 바뀜으로써 노동손실일수가 증가하는 등 한국경제에 암초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국인의 반기업정서에 대해서도 기업자체의 문제를 지적하기 보다는 교육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중등학교 단계에서 올바른 경제관과 노동관을 가지도록 교육해야 하며, 근로자 대상의 교육에서도 올바른 노동의식과 기업관을 갖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문제에 대해 평가할 능력이 없다. 다만 집필진에서 내세우는 객관적 史(資)料에 기초한 실증적 방법을 강조하려면 그 근거를 보다 명확하게 제시해야 보다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고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은 ‘한국사 정체성론’과 ‘식민지근대화론’, ‘중진자본주의론’이 결합된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한국사 정체성론’은 한국사에 대한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합방’ 이전 한국사의 모든 역사적 행위가 결코 근대화를 지향할 수 없었다고 규정하는 것이다. ‘식민지근대화론’ 및 ‘중진자본주의론’은 내적 동인이 없어 자력으로 근대화를 할 수 없던 한국사회가 식민지지배를 통해 발전했고 이런 경험을 토대로 해방이후 중진자본주의, 선진자본주의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책에도 개항기의 경제성장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식민지기와 달리 이 시기에 한국의 교역조건이 뚜렷이 개선되는 등 경제성장의 동력이 있음을 밝힌 논문이 있다((제4장). 또 일제의 수탈, 한국인들이 그로 인해 받은 피해, 그 부정적 유산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347쪽)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초점이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수탈론’ 비판에 맞추어지다 보니 이런 문제의식은 상대적으로 약화되어지고 만 느낌이다.
그동안 이 책의 집필진들이 주장해온 ‘경제성장론’에 대한 학계나 일반인의 비판이 다소 감정적인 경우도 있고 곡해한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집필진도 일제의 수탈, 한국인들의 피해, 또 한국의 경제성장 이면에서 소외된 많은 문제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분석하지 않은 데 대한 자기성찰이 부족하다. 이는 연구방향이 지나치게 편중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일반국민이 자기역사의 객관적 사실에는 눈이 멀고 자기도취사관에 빠졌다’(22쪽)고 문제를 삼을 것이 아니라 일제가 가한 수탈의 객관적 사실, 독재정권이 가한 재벌에 대한 특혜 및 정경유착 문제, 노동착취 문제를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균형적 자세가 필요하다. 서평자는 이 책이 우리 학계에서 소홀시 되었던 한 측면을 복원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그것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함으로써 기존 학계에서 거둔 학문적 성과를 ‘신화’로 몰고 가려는 경향이 아닌가 한다.

 

2007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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