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세대문제

박재흥 지음

판매가(적립금) 재판준비중
분류 나남신서 1078
판형 신국판
면수 344
발행일 2005-03-15
ISBN 89-300-80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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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꼰대’와 ‘후레자식’―이른바 ‘세대갈등’의 골을 가늠케 하는 말 중 압권이 아닐까? 꼰대들의 상황인식과 가치판단에 어이없어하는 후레자식들을 놓고, 꼰대들은 후레자식들의 위아래도 모르는 철없는 경거망동을 준열히 질타한다. 반목의 극을 치닫는 이들 사이에 화합은 고사하고, 이해와 소통의 여지를 찾아보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더구나 최근 몇몇 현안을 둘러싼 논쟁의 대치 양상은, 사회정치적 갈등의 저류에 ‘세대갈등’이 가로놓여 있다는 진단의 근거가 되고 있다.

항간에서는 이같은 진단에 대한 찬반 여부를 놓고 왈가왈부하고 있지만, 이는 적절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같은 진단을 어떤 식으로 활용할 때 그 유용성을 극대화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대갈등을 초래한 문화적 습속과 가치판단의 차이, 그리고 이같은 차이를 발생케 했던 지정학적?역사적 맥락에 대한 분석이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세대갈등이란 분석시각은 특정 세대로 묶이는 연령집단의 내적 차이를 은폐하고, 이같은 갈등을 넘어서는 데 필요한 세대간 소통과 유대의 잠재성을 거세하는 역설에 빠지기 십상이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어설픈 화합과 상생의 수사’를 살찌울 담론적 자양분으로 둔갑할 공산이 크다. 이같은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특정 세대와 세대간 갈등의 존재를 충분히 수긍하면서도, 그것이 고정화된 실체가 아니라 역사적 국면과 맥락으로부터 형성?소멸하는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세대갈등의 시각이 특정 세대나 세대간 골의 확인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이를 가로지를 지적?분석적 가교(架橋) 구축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2.

박재흥 교수(경상대 사회학과)의《한국의 세대문제》는 이같은 문제의식을 성실히 담아낸 노작이다. 이 책은 크게 2부로 이뤄져 있다.
1부에서는 ‘세대’라는 프리즘으로 한국사회를 읽어내는 작업의 의의와 그 이론적 근거를 밝히고, 이에 수반하는 이론적?방법론적 쟁점을 네 장에 걸쳐 살핀다. 책쓴이는 세대연구의 핵심적 실마리로 동일한 시간대에 상이한 가치관에 근거한 집합적 행위가 길항?갈등하는 ‘동시대의 비동시대성’을 지적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행위양식상의 상이함을 낳은 역사적?문화적 경험의 맥락인데, 특정 시대/국면에서 이뤄진 집합적 ‘경험의 공유’는 세대가 형성되고 또 이를 규정하는 데 결정적이다. 책쓴이는 칼 만하임의 세대 논의를 기초로 생물학적이고 족보학적인 의미로 한정돼 있는 통상적 세대 개념을 수정하는 한편, 사회운동의 발현이란 관점에서 세대갈등을 다뤘던 만하임의 제한적 문제설정 자체에 대한 갱신을 시도한다. 여기서 돋보이는 것은 세대 범주를 통해 사회갈등을 분석하는 작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세대환원론의 유혹”에 빠지지 말 것을 지적하는 책쓴이의 당부다.(제1~4장)

2부는 세대연구의 현재성과 이론적 쟁점을 다룬 1부 논의를 기초로 행한 경험적 연구결과들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세대특성 및 세대갈등의 실상에 대한 포괄적 분석이 조사대상자들의 진술을 통해 이뤄졌다는 점이다. 책쓴이는 특정 세대로 묶이는 집단성원들이 서로를 어떻게 인지?평가하는지, 이러한 가운데 이른바 ‘신세대’라 불리는 이들의 행동양식과 가치지향은 어떻게 형성되고 기존 세대와 차별화된 모습을 보이는지 하는 점들을 구술사적 방법을 활용해 살피고 있다. 이같은 연구의 연장선상에서 책쓴이는 특정한 시대에 태어난 일정한 성원들이 어떤 문화적?역사적 경험과 사건을 겪으며 자랐고 이에 대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를 추적하는 생애사(生涯史) 연구가 활성화돼야 할 것을 강조한다. 이 방법은 개인적 체험을 매개로 미시적 차원과 거시적 차원이 어떻게 맞물리며 특정한 시대규정성을 발휘하는지, 이같은 시대규정성이 사회변동 과정에서 그 지속력을 잃게 되는지 탐색하는 데 더없이 유용하다는 것이다. 세대연구가 특정 세대 전체를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세대성원들이 내면화할 수밖에 없던 시대규정성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이를 극복할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데 있다고 할 때, 이는 중요한 제안이다.(제5~9장)

이 책은 책쓴이도 언급하고 있듯이, 세대연구의 결정체이라기보다는 ‘촉매제’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역사적이고 문화적 경험의 공유 여부와 그에 따른 가치판단(나아가 실천)상의 편차를 다루는 세대연구는, 특정한 주체 형성의 사회적 맥락과 정치적 함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통해 지배질서를 돌파할 새로운 집합적 주체 형성의 조건과 가능성을 탐색한다는 점에서 ‘문화연구’(cultural study)의 문제설정과도 접맥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설정을 보다 밀도있게 파고드는 데 관심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그 평가 여부와는 별개로 일정한 시사점을 제공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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