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와 문화

김승현.정영희 공역 지음 김승현.정영희 공역 옮김

판매가(적립금) 재판준비중
분류 나남신서 984
판형 신국판
면수 328
발행일 2004-11-20
ISBN 89-300-39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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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공인구에 땀땀이 배인 방글라데시 저임 아동노동자들의 눈물. ‘대한민국 4강’이라는 쾌거에 들떠있던 2002년 월드컵 당시, ‘세계인의 축제’라 자임하는 이 행사의 위상을 놓고 일각에서 거론했던 이의제기의 핵심문구다. 특정 지역서 향유되는 문화 양식에 대한 가치판단은 이제 그같은 향유를 떠받치는 전지구적인 경제?정치적 맥락과 더 이상 별개로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견해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오늘날 ‘문화’라는 용어가 더 이상 정치나 경제 바깥에 위치한 ‘잔여 영역’을 지칭하지 않는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문화라는 용어는 이제 기존 삶의 직조 방식을 둘러싼 다양한 경제적?정치적 담론과 실천의 장(場) 자체를 함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국민국가 단위로 구획돼 있던 지식체계와 생활방식을 무효화하거나, 적어도 약화시키는 실존 조건의 근본적 변화를 함의하는 것이기도 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세계화(Globalization)는 이같은 변화를 이끈 근본 동인이자 그 결과라 할 전지구적 추세로, 우리의 일상 속에 이미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존 톰린슨의《세계화와 문화》는 세계화를 둘러싼 정치적 선택과 맞물린 지적인 논쟁 지형 및 이의 역사적 맥락을 조감하는 데 아주 유용하다. 이미《문화제국주의》라는 저서를 통해 문화를 근대세계의 정치경제를 구성하는 ‘생활양식’ 분석의 키워드라 보고, 담론적?지리적으로 이같은 생활양식이 보편화된 상황을 적절히 설명할 이론적 입장으로 ‘세계화론’을 제안했던 책쓴이에게, 이 책은 자신이《문화제국주의》에서 시론적으로 다뤘던 논지의 심화?확장판이라 할 만하다. 톰린슨은 세계화라 불리는, 근대 세계체제에 고유한 장기적 추세가 (재)활성화하는 데 있어 문화의 차원이 중심적인 위상을 차지하게 된 역사적 맥락과, 이와 같은 방식의 논의가 갖는 분석적?이론적 유효성, 나아가 오늘날 필요한 정치적 실천전략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이 책을 여타의 논의와 변별케 하는 대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세계화를 근대세계에 전례없던 과정으로서가 아니라 근대세계의 존재양식에 고유한 속성, 달리 말해 근대성에 내재한 존재론적 속성으로 파악하려는 책쓴이의 시각이다. 책쓴이는 근대세계의 자기존속 양식으로서 내재해 있던 세계화 속성이 오늘날에 이르러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존립 기반 자체를 바꾸고 있다고 보는데, 들뢰즈?가타리의 논의에 기대어 쓰인 ‘탈영토화’라는 용어는 이같은 과정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이다. 책쓴이는 이같은 양상을 통해 오늘날의 모든 문화는 물론, 문화 일반 자체가 실은 혼종적 내지 횡단적이라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고 본다. 이같은 통찰로부터 책쓴이는 문화적 실천의 구성적이고 혼종적인 측면이 세계화된 현실의 조건에서 어떤 규정력과 윤리-정치적 함의를 발휘하고 있는지 조심스레 살피고 있다(제1~4장).
다른 하나는, 미디어, 혹은 매체가 세계화 속에서 갖는 위상과 그 성격을 다룬 부분이다. 앞서 밝혔듯 근대세계의 내재적 속성으로서 이뤄지는 세계화에 있어, 이 과정을 매개하는 근대 미디어는 기술적 혁신 여하를 떠나 기본적으로 시공간 응축을 이끄는 근접성의 신장에 그 기능적 본질이 있다고 책쓴이는 보고 있다. 무엇보다 책쓴이는 미디어의 기술적 진보와 이의 보편적 확산만을 놓고서 미디어에 의한 소통공간의 지리적 확장이 갖는 의미를 과잉해석하는 기술주의적인 미디어관과 분명한 선을 긋는다. 기술결정론적인 미디어관으로는 미디어가 특정한 지식-권력?제도의 생산과 매개되면서 이를 정당화하거나 심지어 강제하기도 하는 문화적?정치경제적 맥락을 잡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화 추세 속에서 미디어가 단순한 지배 이데올로기의 전령으로 거부와 타도의 대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항할 윤리적?정치적 판단과 실천적 연대의 계기를 마련해 주는 매개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보는 책쓴이의 논의는 이와 관련을 맺는다. 요컨대 책쓴이는 미디어를 정보전달을 매개하는 기술적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 일종의 사회적 벡터로서, 즉 권력과 조직의 함수로 이해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제5장).이같은 일련의 논의들은 마지막 장에서 책쓴이가 신중하게 제안하는 ‘윤리적 글로컬리즘’을 구체화하는 데 필요한 이론적 정지작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쓴이는 거대서사적 보편주의가 남긴 역사적 폐해를 충분히 인정하지만, 보편주의적 전망 자체의 폐기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한다. ‘개체성/국지성’을 도외시하지 않는 집합적인 윤리적 실천 속에서 ‘좋은’ 보편주의의 실현이 가시화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책쓴이가 요청하는 보편성은 세계화를 지지해 온 담론적 신기루이자 철학적 환상으로서의 보편주의와 첨예한 긴장을 이룬다. 윤리적 글로컬리즘은 이와 같이 ‘개체성/국지성’과 ‘지구성’의 복합적 고려를 축으로 하는 세계화 시대의 정치적 실천전략을 압축하고 있다.
세계화의 성격과 그 추이와 관련한 논의는, 그것이 하나의 쟁점으로 본격화한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토피아/디스토피아로 대별되는 담론적 극단에서 자유롭지 못한 듯하다. 전자가 미래에 대한 장밋빛 주술로 현실을 호도하고 있다면, 후자의 경우에는 현실을 바꿀 다종다양한 반체제적 실천의 너비를 스스로 좁히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현실 이해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선험적인 도덕적 판단이 아니라 현존 체제의 모순과 관련한 세계화 추세의 이중적 측면을 냉정하게 포착해 내는 데 있다 할 때, 이같은 입장은 결코 적절치 않다. 기존 질서의 ‘내적 갱신’에 주력할 것인지, 또는 이로부터 단절할 지적?실천적 조건의 창출에 무게를 실을지에 관한 정치적 판단을 내리는 데 있어 선행돼야 할 것은 현실에 대한 ‘균형잡힌’ 분석 작업이라 할 때, 이는 더더욱 그러하다.
세계화에 따른 문화 개념의 확장은 오늘날까지 자명하다 여겨져 온 삶과 앎의 방식으로 회수되지 않는 새로운 논의 지평을 요구하는 지적?윤리적 상황과 맞물려 있다. 이런 맥락에서 세계화의 문화적 차원에 관한 논의는 미래를 둘러싼 지적 논쟁의 끝이 아니라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존 톰린슨의《세계화와 문화》는 이와 같은 논쟁의 지형을 읽는 데 경쾌하면서도 친절한 길라잡이 역할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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