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내일을 묻는다

정범모 지음

판매가(적립금) 재판준비중
분류 나남신서 1060
판형 신국판
면수 416
발행일 2004-10-20
ISBN 89-300-8060-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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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원로’는 있는가? 물론, 있다. 단적인 예로 지난 9월 있었던 시국선언에 참여한 이른바 ‘사회지도급 원로’들의 수는 1,500명이었다. 숫적으로만 보면, 앞서 던진 물음이 무색할 정도로 사실 한국에서 ‘원로’라 불리는 이들은 차고 넘친다. 문제는 그들 모습에서 ‘원로’다운 깊이와 너비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아니, 이들이 밝힌 ‘우려’의 목소리에서 자기가 살아 온 역사와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흔적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이들 ‘원로’들에게서 확인할 수 있는 거라곤 오로지 ‘생존’만이 전부였던 시대, 그런 강퍅한 시대를 살던 이들이 체험할 수밖에 없던 삶의 팍팍함 뿐이다. 앞서 던진 물음이 뜬금없지도, 그 무게 또한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혼돈과 분열의 시대’를 살아갈 우리에게 새로운 지적?윤리적 도전과 비전만큼이나 절실한 것은, 원로의 연륜이 배인 법고창신(法古創新)의 혜안이기 때문이다.

정범모 전 한림대 총장의《한국의 내일을 묻는다》는 이같은 물음에 대한 한 원로의 성실한 응답이라 할 수 있다. ‘정범모 교육학 3부작’이라 할《미래의 선택》,《인간의 자아실현》,《한국의 교육세력》을 통해 한국 교육의 조건과 전망에 관해 폭넓은 논의를 펼쳐온 저자에게 이 책은, 그간 이뤄져 온 연구?저술 활동에 대한 총결산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 나름대로 온축해 온 지적 성과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면서 현실과의 긴장을 팽팽히 유지하려는 저자 논의는 이 책에 묵직한 시의성까지 부여하고 있다.
이 책의 화두는 부제에도 나와 있듯, 국력?국격(國格)?교육이다. 오늘날 한국이 처한 경제적?정치적?문화적 난맥상에는 이 세 가지 화두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빈곤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국력과 국격, 그리고 교육의 기초 부실이야말로 각종 경제?정치?문화적 분열과 갈등을 초래하는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국력과 국격, 교육이 삼위일체가 되지 않는 한, “국가 없는 서러움, 진저리나는 가난, 처참한 전쟁, 숨막히는 압제” 등 천신만고 끝에 누리게 된 우리 사회의 풍요와 번영은 좋았던 옛시절의 추억으로 전락할 것이라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의 체험과 그에 대한 진중한 반추에 기초하여 이와 같은 우려와 불안을 돌파할 장기적인 방책을 탐색하고, 그 논리를 짜임새 있게 벼려내는 작업은 이 책의 주된 내용을 이룬다. 그렇다면 저자에게 국력?국격?교육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저자에게 국력이란 통상적으로 그렇듯, 부국강병(富國强兵)의 동의어가 아니다. 궁극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저자 역시 한국의 부강함을 누구보다 바라고 있지만, 이를 성취하는 데 필요한 요소들에 대해 보다 개방적이고 포괄적인 논의와 논리가 전재돼야 한다고 본다는 점에서 여타의 부국강병론이나 국수론 계열의 논의와는 크게 대별된다. 국력을 구성원들의 다양한 잠재적 역량의 총체이자, 이같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제3장) 저자는 이같은 국력을 배양하는 ‘풍토적’ 요소로서 네 가지를 제시하고 있는데, 다가치 풍토, 내재가치 풍토, 자율의 풍토, 다양의 풍토가 바로 그것이다. 오랜 식민과 독재의 상흔이자 산물이라 할 군사주의적 획일성과 경제지상주의에서 비롯된 문화적?정치적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앞서의 네 가지 요소를 내면화하는 일이 시급하며, 국력은 이 과정에서 공고해지는 것이라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미국의 경험과 이념적 지향을 모델로 하고는 있지만, ‘풍토’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 한반도에 고유한 체험이 이같은 과정에 오롯이 녹아들어야 한다는 점 역시 저자의 논의를 여타의 미국 추수론과 변별해 주는 대목이다.(제4장)
국격은 저자에 따르면 이같은 국력 배양 풍토의 조성에 가장 걸맞은 체제이념, 혹은 체제의 이념적 기초를 의미한다. 저자에게 그 기초는 자유민주주의다. “자유민주체제”야말로 국력 배양을 위한 풍토를 기름지게 할 가장 탄력적인 통치체제라는 것이다. 달리 말해 그것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사회체체”로, 현실의 통치 과정서 발생할 수 있는 정치적 해악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유일한 이념적 장치다. 특히 이 체제가 갖는 수월성은 저자에 따르면 ‘다수’와 ‘인민’을 참칭했던 것으로 귀결된 20세기의 역사적 경험(혹은 실험들)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제5장) 그렇다고 저자가 이같은 체제이념이 이를 내걸고 이뤄진 실제의 통치 행위와 보인 괴리에 눈을 감고 있는 건 결코 아니다. 누구보다 저자 자신이 20세기 한반도에서 식민과 독재의 경험을 통해 고착화한 군사적?경제주의적 동원체체의 해악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의 심성” 형성이 갖는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이를 위해 함양해야 할 실천 역량과 사회 조직의 논리를 탐색하려는 저자의 논의는, 자유민주체제에 대한 저자의 신념을 대미추종적 극우파들의 독실한 ‘신앙’과 변별해 주고 있다.(제6, 7장)
지도층은 이같은 사회운영 원리의 전방위적 확산에 기여할 때만이 실질적인 의미를 갖는다. 사회 전체의 역량 증대를 백안시한 채 업적지향적인 사회운영원리하에서 형성된 지도층 충원 문화의 타파가 중요한 건 이 때문이다. 교육이 국력과 국격과 함께 중요한 위상을 부여받을 수 있는 논리적 근거 또한 여기에 있다.(제8장) 더구나 국가간 경계를 가로지르며 지리적?공간적 접근성이 점차 커지는 세계화 시대, 교육이 기왕의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인간?사회관을 넘어 전인적 인간관계 구현에 기여하는 쪽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느냐 여부는 한국은 물론, 세계의 미래를 가늠하는 중요한 준거점이다.(제9, 10장)
--------------------<교수신문.2005.10.31>
國格을 세워야 미래가 있다
2005년 10월 31일 권대봉 고려대
‘한국의 내일을 묻는다’는 한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원로학자께서 한국이 어디로 가야하는가’에 대한 방향을 國力·國格·敎育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제시한 것이다. 외국을 여행해 본 사람이면 국력과 국격에 비례하여 스스로가 대접받는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해외거주 교포들은 고국이 발전하기를 항상 염원하면 살아간다. 개인의 품위는 인격으로, 나라의 품위는 국격으로 표출된다. 국력의 뒷받침 없이는 국격이 형성되기 어려우며 형성된 국격도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국력과 국격의 원천은 교육이다. 저자는 강대했던 징기스칸 원나라 후예들의 국가인 몽골과 수백년 동안 중원을 지배했던 청나라 만주족의 언어, 문화, 종족의 명멸을 지켜보며, 국력과 국격 배양의 중요성과 교육의 역할을 피력하고 있다.
먼저 국력은 전방위적 장인적 역량이라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국력이 전방위적이라는 것은 국가의 모든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역량의 총체라는 말을 의미한다. 지금 한국에는 직업분류상 약 4천6백개의 직업이 있는데 그 모든 직종에 종사하는 각계각층 직업인들 역량의 총체가 국력이며, 이들이 제각기의 영역에서 전문적 역량을 발휘할 때 그 총체가 국력이 되는 것이다. 이들 각 영역의 역량들은 밀접하게 상호 관련되어 있으며, 때로는 상보, 때로는 상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인에겐 세 가지 특성이 있다고 한다. 남의 추종을 불허하는 식견과 기량, 애착과 헌신, 사명감과 전문윤리가 그것이다. 국력이 부족·부실하다는 것은 바로 자기 일에 전문적 식견과 기량, 애착과 사명감, 그리고 투철한 전문윤리를 가지고 있는 여러 영역의 장인들이 부족·부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전방위적 장인적 역량을 기를 수 있는 방법으로 저자는 多가치, 內在가치, 자율, 다양성의 풍토조성을 제시하고 있다. 다가치 풍토란 사회에 필요한 모든 활동들이 사람들에 의해서 다 소중하게 여겨지고, 응당한 사회적 인정과 대우, 칭송과 가시성이 따르는 풍토를 의미한다. 내재가치의 풍토는 각기의 활동을 생계·치부·명예·출세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의 멋·보람·묘미 때문에 추구함을 말한다. 자율의 풍토는 장인들에게는 필수적인 것으로 자기 일에 자유·자율 없이는 전문적 역량의 축적이 있을 수도 없고 발휘될 수도 없다고 했다. 다양의 풍토는 다른 의견, 다른 사고방식들이 허용되고, 다양한 문화가 집산하는 풍토를 의미한다. 저자는 이러한 풍토조성은 이 나라 각계의 지도층과 교육자가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음으로 국격은 나라의 정신적 기강이 되는 이념적 품격을 의미하며, 한국의 경우 국격은 헌법에서 國是로도 천명한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의미한다. ‘한국에 비전과 이념이 없다’라는 말을 사회 일각에서 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인식과 신념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이러한 인식과 신념의 부족이 바로 지금 한국사회의 크나큰 문제라고 진단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합성어이고, 자유와 민주주의가 반드시 언제나 양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데에 자유민주주의의 고민이 있다. 저자가 생각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사회체제이다.
저자는 이러한 자유민주주의가 성숙하고 원활하고 생산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대칭적인 개념들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과 사회, 자율과 규율, 자유와 평등, 개방성과 프라이버시, 다양성과 통일성의 개념이다. 흔히 전통사회 또는 독재사회에서는 이들 쌍 중에서 그 한쪽인 사회·타율·폐쇄·획일의 풍토를 더 강조한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주장은 이들의 대칭인 개인·자율·개방·다양을 더 강조하게 된다. 예컨대, 독재에서는 집단과 규율만 강조하고, 민주주의에서는 개인과 자율을 존중하지만, 그렇다고 민주주의에서 사회의식과 규율이 없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균형 감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이런 정신풍토의 조성은 지도층과 교육자의 책임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교육이다. 한 나라의 교육은 두 가지 기능을 갖는다. 하나는 사람을 사람답게 기르는 일이고, 또 하나는 그럼으로써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이 둘은 서로 밀접하게 상관되어 있다. 사람이 사람다워야 나라가 나라다울 수 있고, 나라가 나라다워야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한국교육에는 이념이 없다고들 말한다. 저자는 이 말에 한편 동의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동의하지 않는다. 한국교육에는 明文의 이념으로서는 헌법에 밝힌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교육법에 함축된 全人교육이념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 이념이 교육실제에서는 도무지 작용하지 못하고 있는 점에서 이념이 없다고 말하는 것 또한 맞다. 이를 종합하면 한국교육에는 실제로 작용하는 이념은 없는 것이다. 한국교육에는 실제로 작용하는 이념은 없고, 있다면 그것은 무슨 내용의 어떤 지식이건 가리지 않고 다 잘 외워서, 출세경쟁에 이기려는 이른바 ‘입시준비교육’의 회오리만 있을 뿐이다. 입시준비교육의 회오리 앞에서는 모든 교육이념, 교육철학은 힘없이 무너지고 만다고 저자는 진단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저자는 한국의 교육이념으로 전인교육과 자유 민주 교육을 주장한다. 그러면서 사회기관, 정부, 교사에 대한 세 가지 호소를 통해 한국교육의 체질을 바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먼저 대학·정부기관·기업체 등 사회 여러 기관은 그 人事선발에서 필답고사를 지양하고 전인평가 방법을 택하기를 권유한다. 이는 교육정상화를 위한 첫 해법으로서 전인평가 방법은 그 기관을 위해서도 더 유능한 인재를 뽑는 방식이다. 다음으로 정부·교육부·교육청 등 행정기관은 학교와 교사에게 대폭 자율을 회복·허용하기를 간청한다. 이것이 한국교육의 둘째 해법으로 자율은 장인적 교사의 존립근거이고, 士氣의 근본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세번째로 교사는 교육에 대한 사명감, 식견, 전문윤리를 간직한 장인적인 교사로 자처할 것을 호소한다. 이는 모든 일에 ‘장인정신’이 필요하지만 교직에는 더 필수적이며, 교육의 궁극적, 최종적 결정자는 교사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 책을 맺으면서 현대세계의 모든 나라가 거역할 수 없는 세 가지 추세 속에서 그 압력을 받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것은 세계화, 미래화, 인간화라고 지적하고 있다. 세계화는 더 말할 나위 없이 세계를 받아들이고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고, 미래화는 예견되는 미래에 지금부터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며, 인간화는 모든 일에서 인간에 대한 관심이 그 중핵에 놓여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본서는 현재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보수와 진보의 갈등, 지역 간의 갈등, 양극화현상, 교육의 문제에 대한 해법을 명쾌하게 제시해주고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을 매우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냐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문점이 든다. 물과 기름은 섞이지 못하지만, 차가운 물과 뜨거운 물은 섞여 미지근한 물이 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을 물과 기름으로 볼 수는 없다. 우리나라가 더욱 더 발전하고 있는 진통의 과정으로 생각하고 본서의 의미를 파악한다면, 우리 미래에 소금과 같은 귀중한 메시지가 될 것이다. 또한 현재 나라를 이끌고 있는 정치지도자들, 미래의 꿈나무를 기르고 있는 교육자들, 미래 한국을 이끌어 갈 젊은이들에게 본서는 현재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보고,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는 데 도움이 되는 귀중한 자산이 되리라 믿는다.
권대봉 / 고려대·교육학
필자는 미시건주립대에서 ‘미국 미시간주 산학협동 성인컴퓨터 직업교육 참여자의 자긍심 발달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교육체제의 재구조화, 평생교육이 해법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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