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실패한 신인가

한스헤르만 호페 지음 박효종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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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나남신서 1022
판형 신국판
면수 472
발행일 2004-04-10
ISBN 978-89-300-8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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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과연 '역사의 종언'(End of History)인가

1차 세계대전은 현대사에서 중요한 분기점 가운데 하나이다. 이 전쟁으로 인해 서구사회는 군주제 통치와 왕의 지배로부터 민주공화제 통치와 국민의 지배로의 전환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은 구시대의 특성을 가진 지역적 분쟁으로 시작하였으나 미국이 공식적으로 전쟁에 참전하게 되면서 전쟁은 이데올로기적 양상을 띠게 되었다. 미국이라는 공화국 이념 안에 본래 있던 민주주의 원리는 이로써 이데올로기적 전쟁의 성격을 결정지었고 미국의 승리와 함께 민주주의 이념 역시 승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과연 '승리'라고 할 수 있는가? 현시점에서 조망해 볼 때 미국 체제는 '역사의 종언'을 시현하기보다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음을 여러 면에서 볼 수 있다. 실제적인 임금 소득은 떨어졌으며, 실업률은 점점 상승하였고 공적 부채는 천문학적 수준으로 상승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가 만개한 지 한 세기도 안 되어 지속적으로 이혼율, 사생아, 낙태, 범죄행위가 증가하였으며 평등주의적 이민정책이 증대한 결과 사회적 분쟁과 민족, 인종, 도덕·문화적 적대감과 긴장감은 현저하게 고조되었다. 만약 윌슨이 재선공약에 따라 미국의 1차 세계대전 개입을 막았다면, 확증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유럽 내의 전쟁은 초반에 끝이 났을 것이며, 더욱이 전쟁은 일방적 요구와 지시보다는 상호 수용가능하고 체면을 세울 수 있는 절충된 평화의 형태로 끝났을 것이다. 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 독일, 러시아는 전통적 군주제를 유지했을 것이며 이는 공산주의, 나치즘, 2차 세계대전을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사유경제에 대한 통제와 정부의 개입범위가 오늘날과 같은 수준으로 높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반추해 볼 때 미국 체제―민주주의 체제―의 장점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이 다시 대두될 수밖에 없다. 이를 바탕으로 본서는 군주제 정부에 관한 수정적인 견해와 긍정적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즉 군주제 정부는 사적으로 소유된 정부로 정의되며 통치자인 군주에 의해 미래 지향성, 자본적 가치와 경제적 계산에 대한 고려를 증진시키는 체제로 설명된다. 반면에 민주주의 정부는 공적으로 소유된 정부로, 이 정부의 통치자들은 자본의 가치를 무시 혹은 경시하는 체제로 설명된다.
그렇다면 기존의 민주주의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 체제에서 질서가 지켜질 수 있는가? ('공적'이 아닌)사적으로 소유된 정부는 자유롭게 자금을 조달하는 보험회사로 운영되는 체제, 보험회사가 법과 질서를 경쟁적으로 제공하는 체제로 소개된다. 그리고 이 체제의 성립을 위해서는 개개인의 연방탈퇴―기존 정부·국가로부터의 탈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소수로부터 사회적 혁명을 시작하여 여론을 변화시킨다면 어떠한 정부도 붕괴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조선일보 4월 17일 토요일 학술면>
국가가 사라져야 진정한 민주주의 열린다

민주주의는 실패한 신인가/한스헤르만 호페 지음/박효종 옮김/나남출판

낡디낡은 트렁크 하나 애면글면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무엇이든 담을 수 있고 어디든 갖고 갈 수 있어서? 아니면 그저 편하고 익숙해서? ‘민주주의’란 게 꼭 이 트렁크를 닮아 누구에게나 만만하고 임의롭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지나쳐 버릴 때마다 모두의 허전함은 내심 컸다. 그게 뭔지를 둘러싼 갈증과 텍스트의 빈곤을 아우성치는 이들의 목청 또한 높았다. 들을수록 애매하고 반복할수록 어슴푸레해 가기만 했던 저 ‘모순’이니 ‘위기’니 하는 추상명사마저 수없이 써 가며. 하물며 교과서가 손1에 닿아도 강의는 버거웠다. 지천으로 깔린 책들만으로도 압살당할 만큼 민주주의는 풍요로웠건만 우리의 뇌리는 정말 왜 그다지도 가난했던 것일까.

그 흔한 눅들 만한 그림 하나 없이 호페는 이 책에서 그간의 지적 빈곤과 허전함 곳곳에 지혜의 ‘푸른 칼’을 꽂는다. 정신 차려 깨어나고 되돌아 반성하라고 조용히 외치며 민주주의는 이제 정말 왜 가망 없는지, 그래도 기대고 비비며 안겨야 할 사상인지 묻고 답한다.

아울러 1차대전 이후 미국의 승리와 민주주의의 승리가 이제 추레하게 사그라지는 역사의 원인을 짚되, 미국의 전쟁 불개입이 현실로 나타났더라면 절충된 평화와 유럽의 전통적 군주제는 유지되었을 것이라고 애석해하기도 한다. “러시아와 독일, 오스트리아의 황제가 제자리에 있었다면, 러시아에서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서유럽에서 증대되던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한 반응으로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파시스트와 나치스가 똑같이 권력을 장악하는 사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21쪽)

이 같은 도발적 회한이나 근본적 역사전복의 상상이 현실의 아픔을 치유하는 직효약은 물론 못 된다. 아무리 빨리 해본들 늦는 게 ‘후회’ 아니던가. 그 속에서 역사의 수레를 되돌리지 못하는 것 또한 슬픈 일임을 굳이 말로 표현할 필요 있을까.

그런데 이 책은 더 나아가서 20세기 미국의 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도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측면에서 ‘사회민주주의’에 속한다는 극단적 주장을 개진한다. 하지만 군주제 정부에 관한 수정적 견해(사적으로 소유된 정부)와 민주주의 정부의 새로운 해석(공적으로 소유된 정부)을 새삼 가르며 그 중간지대에서 ‘소수의 사회혁명’을 모종의 대안으로 구하는 방식은 일찍이 토크빌이나 사르토리도 궁리하지 못했고, 헬드나 맥퍼슨도 토해내지 못한 생각이었다.

이 책이 제시하는 사회 혁명이란 ‘자유지상주의’에 입각한 것으로, “마침내 국가의 관할 영역이 사라질 때까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지역들(싱가포르와 같은 독립적 자유도시들)이 무제한적으로 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구상이 더욱 천연덕스럽고 얄밉도록 매력적인 이유도 사실은 아나키도 국가도 아닌, 사적으로 소유된 정부에 의해 자유롭게 자금을 조달하며 법과 질서를 경쟁적으로 제공하는 보험회사가 앞날의 체제로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공공재산을 사유재산으로 돌리고 모든 징세권과 입법권을 불법적인 것으로 선언하여 새로운 헌법을 채택하고, 최종적으로 보험회사들로 하여금 그들이 하게 되어 있는 (보호와 보상)업무를 수행하도록 허용하라”는 것이다. 죽은 루소를 흔들어 깨워 로버트 노직 곁에 앉히고 이어 조지 오웰까지 자리 권하며 호페의 얘길 듣게 할라치면 그들은 끝에 가 뭐라 말할까.

▲ 박종성/서원대 교수

그래도 금세 이해 못할 몇 구절은 진한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가령 “자연적으로 주어진 자원의 질에 차이가 나는 이상 입식윤리를 통해 창출된 결과는 평등하기보다 불평등하리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다”(222~223쪽)라든지, “고임금 지역 국가가 실시하는 이민정책의 주요 원리는, 무역의 경우에 ‘자유’무역이라는 것이 갖는 의미와 똑같은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 이민과 입국의 경우에는 초청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함의하고 있다는 통찰에서 비롯된 것이다”(272쪽)의 경우처럼 자꾸 현미경을 들이대며 읽고 싶어지는 진짜 이유는 이미 역자가 펴낸 저서 ‘합리적 선택과 공공재’ 1·2(인간사랑)나 ‘국가와 권위’(박영사)에서 맛보았던 감동을 계속 이어가고 싶어서다. 그나저나 제아무리 민주주의가 ‘실패한 신’이라 해도 아직은 여러 사람을 품을 만큼 그 가슴이 넉넉하지 않을까.
(박종성·서원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동아일보 4월 17일 토요일 책의 향기>
[인문사회]‘민주주의는…’ 미국식 민주주의 ‘철학의 빈곤’

◇민주주의는 실패한 신인가/한스헤르만 호페 지음 박효종 옮김/472쪽 2만원 나남출판

미국의 민주주의가 선망의 대상인 때가 있었다. 그 미국이 오늘날 도덕적 타락, 가족과 사회의 붕괴, 문화적 부패현상의 전형적 국가로, 그리고 약소국의 주권을 무시하는 제국주의적 침략국가로 추락하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에선가. 저자에 의하면 이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군주제를 부인한 미국식 민주주의제도 때문이다.

꼬박꼬박 내는 세금은 도대체 어디에 쓰이며 왜 그렇게 자주 인상되는지, 그리고 징발당하는 세금만큼의 안전과 복지의 혜택은 받고 있는지 의아해 하는 소시민들이 있다. 사회복지를 확충한다면서 거둬들인 세금이 실업자와 신용불량자의 구제를 위해 무분별하게 낭비되고, 국가의 생산력은 향상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저자에 의하면 이는 현대 민주주의 제도가 갖고 있는 철학적 결함의 산물이다.

특정 엘리트가 정부를 독점하는 군주제도는 사유물로서의 정부를 유지하기 위해 착취당하는 피지배자의 눈치를 보면서 절제된 대내정책과 제한된 전쟁을 추구한다. 그러나 영속적인 주인이 있을 수 없는 민주정부의 한시적 관리자들은 기계적 평등에 입각한 무절제한 선심정책과 흥분하기 쉬운 국민의식을 이용해 무분별한 팽창정책을 추구한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방법론과 경제이론, 그리고 정치철학의 원리들을 원용하는 이 책의 핵심은 쉽게 말해서 이렇다.

민주주의는 원래 소란스럽고 만족스럽지 못하며 비효율적인 것이라고 체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왜 그런지를 알고자 하는 사람은 이 책에서 부분적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정치참여의 폭이 확대되면서 시민사회의 권력이 무소불위로 되는 현상을 혐오하는 사람에게는 철학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해 준다. 민주주의라는 이름하에 오히려 다수에 속하는 자신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불만을 느끼는 사람은 민주제도 비판의 이론적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저자는 중앙집권화와 전쟁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적 통합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발전과 번영을 가져오는 경제적 통합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적 자유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근대적 국가 형태에 대한 부정을 저변에 깔고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운, 즉 이주의 자유가 보장되는 소규모 국가를 바람직하게 보는 점에서 탈근대적 지향을 분명히 한다. 결국 정치적 엘리트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 그리고 근대비판의 다소 혼란스러운 결합이 이뤄진 셈이다. 역자의 말대로 읽는 과정에서 ‘몽상가’가 될 수도 있지만 국제정치학과 경제학, 사회철학 등을 두루 통합하는 폭넓은 지성에 감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탈근대론이 그러하듯이 대안모색이 정치(精緻)하지 않고, 복고반동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큼 논리전개는 아슬아슬하다.

이 책이 무책임한 무정부주의를 선동하는 악마의 교과서로 간주될지, 아니면 민주주의보다 이상적인 자연적 질서의 창출을 말하는 선지자의 예언서로 간주될지는 현존 민주주의에 대한 독자의 가치관에 달려 있다. 중언부언과 주장의 반복은 논리의 강조라기보다는 편집과정에서 저자의 무성의함으로 보인다. 다행히 매끄러운 번역과 선명한 역자의 소개문이 이 단점을 보완하고 있다. 여유가 있다면 군주제에서 민주제로의 이행을 긍정적으로 조명한 이마누엘 칸트의 ‘영구평화론’과 비교해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이웅현 고려대 연구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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