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장군-숙명의 대결:쿠데타에서 사상논쟁까지

김준하 지음

판매가(적립금) 12,000 (600원)
분류 나남신서 901
판형 신국판
면수 368
발행일 2002-05-20
ISBN 89-300-39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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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도서 금액     12,000

<동아일보 2002/07/10기사에서>

김준하씨 “尹대통령,5·16세력과 내통안했다”


5·16쿠데타 당시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던 김준하(金準河·72)씨가 5·16부터 1963년 제5대 대통령선거 때까지 격변의 역사현장에서 보고 겪은 사실을 담은 회고록 ‘대통령과 장군’(나남출판)을 펴냈다.
김씨는 “5·16과 관련해 왜곡 조작된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기 위해 회고록을 펴내게 됐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로 정치현장을 취재했던 김씨는 4·19혁명 후 청와대 대변인으로 옮겨 윤보선 대통령이 하야할 때까지 19개월 동안 청와대에서 격동의 현장을 지켜봤다. 이후 그는 군사정권의 집요한 감시를 받았고 1971년 고려대 강사를 거쳐 79년 동부고속 사장, 92년 강원일보 사장 등을 지냈다.
“쿠데타 바로 다음날 대통령 친서를 이한림 1군사령관과 민기식 2군단장, 최석 5군단장에게 전달하기 위해 전방부대를 방문했었다. 전방에 가보니 상명하복이 생명인 군대 내부가 이미 엉망이었다. 이한림 장군은 쿠데타 세력을 비난하며 예하 부대를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쳤지만 1군사령부 직속인 민기식 군단장은 혁명 지지를 선언했고 박춘식 사단장은 민 군단장 앞에서 ‘나는 누구의 명령도 안 듣는다’고 무례하게 굴기까지 했다.”
김씨는 윤 대통령이 쿠데타 세력과 내통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내가 곁에서 지켜본 바로는 내통하거나 묵인한 일은 결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국군통수권이 없었던 윤 대통령은 마셜 그린 주한 미 대사와 카터 매그루더 유엔군사령관에게 미군을 동원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는 등 피를 흘리지 않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애썼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정치군인들의 치밀한 사전계획과 장면 정권의 무능과 분열 때문에 쿠데타 세력이 집권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또 혁신세력이 주도한 야간 데모 등 사회적 혼란, 물가 폭등과 경제 파탄, 공무원들의 복지부동 등이 쿠데타의 빌미가 됐다는 것.
김씨는 박정희 소장의 첫인상에 대해서는 “박정희와 윤 대통령과의 면담 과정 등을 지켜보면서 아주 영리하고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며 “박정희는 민정 이양 등에 관해 수시로 말을 바꿨다”고 말했다.동아일보 퇴직사원 모임인 동우회는 11일 오후 6시반 서울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김씨의 저서 출판기념회를 갖는다.

김차수기자 kimcs@donga.com

Ⅰ·'신문기자'에서 '대변인'이 되기까지9

독도(獨島)에 등대를 세워라 ― 최초의 특종기사·16 / "김일성이 기뻐할 것인가 싫어할 것인가"·20 / '불온문서' 투입은 내가 시켰다·23 / 후계자를 보장받은 대통령 양자(養子)·25 / 정권의 명운(命運)을 재촉한 부정선거·29 / 3·15의 증인 '부정선거 지령문'·32 / 뜻하지 않은 대통령과의 인연·35

Ⅱ·청와대가 겪은 5·16 비화41

헌병에게 포위된 새벽의 청와대·43 / 먼저 권총을 뽑지 않은 장도영과 박정희·48 / " '인조반정' 정신으로 목숨걸고 거사했다"·51 / "올 것이 왔다(?)"·55 / 극과 극의 인생을 살아온 윤보선과 박정희·56 / 대통령, "미군이 반란군을 진압해 달라"·58 / 장도영에게 농락당한 대통령의 충정·63 /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68 / 청와대는 한가한 상징적 존재·70 / 친서(親書)에는 '피'의 '피'자도 없었다·73 / "나에게 무슨 일 생기면 재가(再嫁)하시오"·76 / "말뼈다귀인지 개뼈다귀인지 알고나 있소"·78 / "누구의 명령도 안 듣겠다"는 권총 찬 사단장·79 / 서울 점령 작전계획 수립한 최석 장군·83 / 혁명군 육성밖에는 믿을 수 없어·87 / 초상집 같은 최후의 국무회의·92 / 허공에 뜬 대통령 자리·97 / 외교관 한 사람이 대통령의 운명을 바꿔 놔·102 / 외신들 5·16쿠데타를 '군사독재'로 규탄·105 / '동아'기자 구속은 이성을 잃은 망동·107 / "동아 기자 구속한 일 있나?"·110 / 청와대는 군사정권의 귀찮은 존재·114 / 2차 하야계획도 수포로 돌아가·116 / 대장 계급장을 대통령이 직접 달아달라·119 / 박·케네디 회담으로 군사정권 의기충천·121 / 군인들은 대통령을 완고하고 고집이 센 성격의 소유자로 오인·124 / 대통령 빨리 그만둬라!·128 / 윤보선·박정희의 최후의 설전·130 / 청와대 떠나는 비운의 대통령·133

Ⅲ·대통령 하야 후의 숨겨진 시련137

"이봐, 위스키 있어?" 청와대 입성 제일성·139 / 대통령 비행을 대변인더러 "조사 보고하라고?"·141 / "전직 대통령은 경비원 야식대를 물어내라!·143 / 안국동 드나드는 것도 정정법 위반·146 / 유학도 취직도 너는 안 돼·148 / '증권파동은 군사정부 최악의 범죄'·153

Ⅳ·장면 정권과 쿠데타 드라마159

장 정권 탄생과 동시에 출발한 쿠데타 계획·159 / 5·16 원인 제공한 민주당 신·구파 혈투·160 / 실패한 국무총리 지명은 대통령과 총리를 불신과 원한관계로·163 / 단독 내각 강행·168 / 첫 탄생한 장면 내각 20일 후 개각·171 / 영관급 정치장교들 본격적으로 정치 개입·173 / '국군 통수권'은 대통령에게 있나? 국무총리에게 있나?·175 / 대통령에게 통수권 부여는 자유당과 민주당의 합작품·178 / 집권당 노(老), 소(少) 정파싸움은 그들의 비극적 운명을 자초·180 / '중석 사건' 폭로로 장면 정권은 치명타·185 / '면죄부' 받은 박 소장, 마음 놓고 쿠데타 계획 추진·187 / 야당인 '신민당'도 쿠데타 조연 역할·189 / 국내외 정세는 쿠데타를 예견토록 만들어·192 / 청와대 안에 자문회의 설치, 청와대는 장 내각에 대해 낙제점·195 / 4·19 부상자들 국회 의장석 점거·198 / 장 정권, '공민권'제한하는 헌법개정 단행·201 / 대통령 변장하고 횃불데모 직접 참관·204 / 장면 정권 최후의 '청와대 최고지도자회의'·205 / 청와대에도 쿠데타 정보가 있었다·208

Ⅴ·이 나라가 당신 나라냐?219

1963년 1월 1일 정치활동 재개·219 / 역사적 "4자 회담" 열려·223 / 통합야당 '민정당' 출현, 민주당은 이탈·226 / 김종필과 반 김종필 사이의 혈투·230 / 눈물의 '2·27선언'은 위장된 '대국민공약'·234 / 군정을 4년 더 연장하겠다·237 / 군인들의 만행에 항의 ― 신문들 사설없는 지면 발행·239 / 6명의 재야 지도자들 박 의장과 단판·242 / '강압'과 '읍소', 데모 방지도 가지가지·245 / 양동작전으로 성공한 '민주구국 선언대회'·249 / 미국 정부 군정연장을 노골적으로 반대·253 / 박정희, 윤보선, 허정 3자 회담 결렬·257 / 미국과 국민 압력에 백기를 든 4·8 성명·262 / 적전에서 두 동강이 난 통합야당 민정당·265 / 이해타산에 휘말린 야당통합 운동·270 / '김도연 대타작전'으로 반쪽이 난 민정당·273 / 국민의 당은 윤보선, 허정 씨의 대결장으로·277 / 군복 벗은 박정희 씨 공화당 총재와 대통령 후보로·282 / 재야 '4자 지도자회의' 성과없이 끝나·283 / 국민의 당은 권모술수와 계략으로 소일·285 / 재야 세력의 지각변동, 유진산의 '변심 파동'·290 / 윤·허 양씨 상처투성이로 대선에 돌입·296

Ⅵ·마지막 승부 ― '사상 논쟁'301

'출마의 변'으로 불이 붙은 초반전·301 / 외국 언론은 한국의 공명선거 비관·308 / 목포역 첫 유세 상공에 헬리콥터·309 / '종고산아 말하라 너는 알고 있다'·314 / '사상논쟁' 촉발시킨 전주의 폭탄발언·315 / 15년 전《서울신문》,《경향신문》기사는 유일한 증거물·320 / '허위비방'죄로 고발된 대통령 후보·322 / 반세기 만에 새로 밝혀진 여·순 사건의 진상·324 / 선거판에 태풍 몰고 온 간첩 황태성·328 / 복잡하게 엉킨 간첩과 후보 가족·332 / 대구의 폭탄발언 '박정희는 여·순 반란사건 관련자'·334 / 허정 씨 사퇴로 실질적 단일후보가 된 윤보선·338 / 빨갱이라면 왜 사단장 시켰나!·340 / 최후의 '심판자'가 된《동아일보》호외·347 / 사상 논쟁은 피치 못할 역사적 산물?·351 / 최종 순간까지 엇갈린 마지막 호소·353 / 유세 때 있었던 이런 일 저런 일·355 / 007 작전을 능가한 윤보선의 피신 행각·359 / 국민 심판에 깨끗이 승복한 사상 논쟁·361 / "같이 가자 … " 끝없는 가시밭길·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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