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비평 15호

(주)나남출판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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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사회비평 S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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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1996-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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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석학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는 독일의 사회학자이며 철학자인 하버마스가 방한중이다. 권위주의의 지배하에서 오랫동안 결빙되었던 시민사회가 민주화의 계기를 맞아 한창 기지개를 켜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사람들간의 자유로운 대화와 논쟁에서 뿜어나오는 변혁의 에너지에 기대를 걸고 있는 하버마스 사회이론의 문제의식은 그런 만큼 더욱 신선한 가능성으로 다가온다.

하버마스는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대두된 사회과학의 패배인식을 감싸안으면서 차단된 통로를 뚫어주는 학자로 평가되고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조금 낯선 주제겠지만, 그의 학문적 시도를 집약하고 있는《의사소통행위론》은 구조로부터 행위자로, 현상으로부터 도덕과 규범으로 관심의 표적을 전환시키고 전환의 방식을 보여줌으로써 경험주의 사회이론의 피상성과 목적론적 실천이론의 의도족 오류를 다같이 치유하는 길을 제시하였다.

20세가 인류를 구제하려는 이러저러한 논거로 뭉쳐진 이데올로기의 난립시대라고 한다면, 이데올로기의 타당성과 현실체제의 구속양상을 사람들간의 동의와 합의의 공간으로 던져 넣는 하버마스의 이론은 그의 평생의 의도대로 '해방에의 기획' 또는 로고스 중심주의적 사고로부터 벗어난 '이성적 사회의 기획'이라 부를 만하다.

근대성의 이름으로 구속받아 온 이성을 원래의 상태로 복원시키는 것, 이성을 메마른 합리화과정에서 분리시키는 것이야말로 모든 비판이론에서 실종된 윤리와 규범을 생활세계의 공간으로 복귀시키는 가장 중대한 과제임을 확신하는 그의 이론으로부터, 논리와 윤리가 합일된 사회이론의 원형을 목격한다. 지난 십여 년 동안 세계학계는 이른바 '사회과 세계의 변화상이 이론 수용력의 범위를 넘어설 때와 기존의 지배적 패러다임 자체에 심각한 회의가 제기될 때 발생한다.


양자의 계기는 동시적으로 주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구태여 구분한다면, 70년대의 위기는경쟁적 패러다임간의 우위성 다툼 속에서 진행된 비교적 풍요로운 형태의 것이었던 반면 이 시대의 위기는 우위를 점해 온 패러다임들의 성찰적 반성과 자체 붕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1980년대 말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소련의 해체, 대량생산체계의 유용성 소진, 후기 물질주의적 가치관의 성숙과 확산 등이 지배적 패러다임의 쇠퇴를 촉진한 요인들인데, 이들의 쇠퇴는 '포스트'라는 접두사를 걸치고 나타나는 여러 형태의 저항·해체·비판사상과 사회이론가들에게 상대적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어찌 보면, 독자적 적실성을 주장하며 서로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는 포스트이즘의 제경향들은 지배적 패러다임의 권위와 영향력을 새로운 유행의 상호교신과 교류의 장으로 흡수 분산시키는 정보기술의 마력적 성격에 의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패러다임의 위기'는 거대이론(grand theory)의 종언을 재촉하려는 이론적 의욕을 집약하는 명시적 개념이기도 하고, 현대성의 핵심논지들의 보증이나 부정을 출발점으로 설정한 미시이론들의 생동적 반란을 지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거대이론의 유용성이 거의 삭아든 듯한 이 시점에서 거대이론화의 새로운 지평을 활짝 열어 놓은 사람이 바로 하버마스이다. 하버마스는 푸코와 함께 현대 사회과학계에서 가장 논의가 많이 되는 사람이다. 그 이유는 명료하게 보인다. 계몽주의를 동일한 시원(始原)으로 출발하는 두 사람의 사상은 근대적 주체의 상실, 왜곡, 확립과정을 사회질서의 중추인 권력, 권력형성, 권력행사의 네트워크 속에서 규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푸코는 일상적 체험의 영역에서 작동하는 권력/지식의 동학으로 거시권력의 버팀대를 갉아 쓰러뜨렸음에 비하여, 하버마스는 생활세계에 내버려진 도덕적·규범적 상호이해의 행위들을 복원하여 찌그러진 현대성의 권력기제들의 억압적 성격을 폭로하고 해방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비판이론의 배타적 특권일 터이지만, 이른바 '정통사회과학' (orthodox social science)의 경계를 두고 보면, 푸코와 하버마스는 경계를 사이에 두고 동일한 작업을 수행한 것을 보인다.

즉, 푸코는 정통사회과학의 관심 밖에 존재하였던 비정상적·비규범적·타부적 대상에서 배제와 격리와 감금을 체화하는 규율의 본질을 꿰뚫었다면, 하버마스는 규범적·도덕적·실천적 가치를 내팽개쳐 온 정통 사회과학의 인식론적 내벽을 헐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버마스는 기존의 사회과학적 전통에 입각해 있으면서 새로운 정통(a new orthodoxy)을 정초하는 데에 성공한 학자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것이 이번 호를 '하버마스 특집'으로 꾸민 배경이다.〈특집 Ⅰ〉은 하버마스의 이론체계를 네 가지 관점에서 조명하였고,〈특집 Ⅱ〉는 그의 실천적 관심에 해당하는 논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 각 특집에 한두 편의 논문을 더 게재할 예정이었으나 필자들의 사정으로 누락되었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러나, 하버마스의 지적 초상화에 해당하는〈특집 Ⅲ : 좌담〉이 있기에 조금은 안심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의 대중적 명성에 비하면 하버마스의 이론은 쉽사리 와 닿지 않는다. 독자들이 그의 사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는 과정에서〈좌담〉이라는 형식이 제안되었다. 그리하여, 하버마스를 전공하는 패기만만한 학자들을 초청하여 그의 지적 초상화를 그려보았다.〈인물과 사상〉란에 게재된 허영식 씨의 글은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들을 하버마스의 세계로 편안하게 안내할 것이다. 하버마스의 방한을 기념하는 이번 호가 그의 사상을 비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특집·하버마스 : 이성적 사회의 기획, 그 논리와 윤리

Ⅰ. 현대의 마지막 거대이론

언술검증과 비판이론 ·한상진
의사소통적 규범정초 기획의 한계·정호근
하버마스의 이론적 전략·이홍균
하버마스와 프랑스 후기구조주의·이기현

Ⅱ. 신사회운동의 지평

하버마스와 새로운 사회운동·권용혁
하버마스의 소통적 주권론과 雙線的 토론정치 이
념·황태연
말없는 자연은 윤리적 책임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가·이진우
하버마스 사회 분석틀에 대한 여성주의적 비판·
이상화

,b>Ⅲ. 좌담 : 하버마스의 비판적 독해·송호근, 김재현, 박영도, 윤평중, 장춘익

인간과 사상

하버마스 : 의사소통의 인간화를 위한 역정·허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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