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자본주의와 한국사회-국가, 시민사회,

김호기(연세대 사회학) 지음

판매가(적립금) 10,000 (500원)
분류 사회비평신서 49
면수 453
발행일 1995-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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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도서 금액     10,000
80년대 한국의 사회과학계에 대한 기억은 예리한 통증과 현기증을 동반한다. 지난 시대의 암울했던 경험들이 자본주의의 치명적 모순과의 투쟁과정에서 해결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학문적 검증을 받기 전에 자본주의의 승리가 선언되었기 때문이다.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는 투쟁의 에너지원인 '생산 패러다임'의 현실적 합성을 반감시켰고 변혁론자들의 근본주의를 현실주의와 실용주의로 대체시키는 위력을 발휘했다. 신고전주의와 신보수주의가 더욱 힘을 얻는 글로벌 이코노미의 시대에 맑시즘과 생산 패러다임의 현대적 변용을 시도하는 학자, 다시 '본질'로 돌아서는 지식인과 마주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생산 패러다임이란 이제는 낡은 패러다임이다.

그런데 이 낡은 패러다임의 이론적 변혁작업이 한 '젊은' 사회과학자에 의해 꾸준히 시도되어 왔다는 사실을 이해하려면 지난 80년대 사회과학계의 경험을 기억해야 한다. 저자의 고백대로, 이 책은 자본주의의 다층적 얼굴을 총체적으로 조명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세대의 정서를 대변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복합적 변동과정이 생산 패러다임의 경제결정론적 시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제 명백하다. 알튀세의 중층결정론, 하버마스의 의사소통론, 제섭의 전략관계론 등의 포스트맑시즘적 시도들은 비대해진 국가권력으로부터 시민사회의 변혁적 에너지를 그대로 담아내려는 의지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에서 동원된 사회학자와 사회이론들은 모두 낡은 패러다임의 논리적 유연성과 현대적 의미를 증대시키려는 공통적 목적을 갖고 있는데, 저자의 끈질긴 필치와 분석력은 유럽학자들의 복잡한 사고와 고뇌를 '대안있는 자본주의'의 모색으로 수렴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의 독주와 비합리적 지배를 현대자본주의의 불가피한 결과로 인싣하면서도 시민사회에 내재된 도덕적 잠재력의 분출을 궁극적 해결책으로 상정하는 저자가 저항의지의 표현인 신사회운동에 관심을 두는 것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신사회운동 지난 시대변혁 운동의 추진력이었던 계급적 에너지가 포스트포디즘적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새롭게 분출되는 생명력이다.

저자는 여성운동과 환경운동으로 대변되는 녹색혁명에 대한 민중적 요구에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감싸안을 포용력을 찾아낸다. 정보화사회 또는 지식사회의 도래를 둘러싼 미래학자들의 현란한 수식어와 근거 없는 낙관론을 좀처럼 용납하지 않으려는 저자의 비파적 고집이 단지 자본주의적 헤게모니의 난공불락성에 포위되지 않고 하버마스의 생활관계론이나 그람시적 시민사회론의 건강성으로 반전하고 있는 것은 시민사회의 탄력성과 자기 정화력에 대한 저자의 사회적 믿음 때문이다.

이 책의 배경에 깔린 저자의 지적 고뇌를 신중하게 따라가다 보면 89년 '민중의 가을'에 붕괴된 듯이 보이는 생산 패러다임의 낡은 긴장이 어느덧 새로운 형태와 의미를 부여받고 있음을 감지할 것이다.

송호근(서울대 사회학과)
현대자본주의와 국가/시민사회, 신사회운동, 민주주의/동아시아 산업화의 정치경제학/한국 민주주의의 현재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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