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비평 11호

(주)나남출판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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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사회비평 S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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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199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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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창간호의 대담에서 영구분단론과 남한 붕괴론과 북한몰락론을 모두 부정하는 방향으로 사회개혁의 벡터를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북한의 주석이 교체됨으로써 우리의 주장은 일층 현실적이고 체계적인 논의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요즈음 언론의 논조가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비서 개인의 퍼스낼리티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바람직한 시각이 아니다.

그들이 중요한 동인들의 하나인 것은 틀림없으나 그들은 북한이란 체계의 부품들이지 그들의 결정이 곧장 체계의 변형을 초래할 수 있는 역사의 주체는 결코 아니다. 암시장이 나날이 확대되어 공식시장을 위협하고 있는 북한의 체계에서, 암시장을 인정하지 않고 설계되는 개혁·개방은 얼마간의 생산능률 향상과 국민 소득 증대를 성취할 수 있다 하더라도 당장 그 성과가 흡수되어 체계의 동요를 초래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역사적 현재의 객관적 가능성을 체계의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 북한이 개방만 하면 남북관계가 정상화되고 남북의 긴장이 완화되리라는 기대는 성급하고 주관적인 희망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주체사상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것 또한 체계의 부품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식 사회주의는 60년대 남한의 한국적 민주주의처럼 본질적으로 민족 파시즘에 해당되는 내용이기는 하나, 그것은 상당한 정도의 진폭을 허용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이다.

'우리식'이라는 수식어에 새로운 규정이기 때문에 주체사상은 정통 맑시즘보다 오히려 상대하기 편한 파트너일 수도 있으며 사회체계의 분화에 따라 이른바 문민화한 정전형태의 창출 직전까지도 유효한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남한의 체계는 과연 마음 편하게 통일을 논의할 수 있는 정도로 잘 작동하고 있는가? 아직도 굶는 어린애가 있고 버림받는 노인이 있고 병원에 가지 못하는 환자가 있다.

체계 자체로서 최소한의 복리기금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4천 5백만의 인구가 갑자기 7천만이 되었을 때의 실업률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백만 명이 넘는 북한의 군인들 중 일부가 무장을 풀지 않고 유격전을 벌여 통일이 내전으로 전개되는 위험에 대하여, 북한 주민들의 욕구를 표출해 주는 정당이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아서 통일이 빨갱이 사냥으로 전개되는 위험에 대하여 대비하고 있는가?

인물보다 체계를 먼저 고려하는 시각이 온갖 감정적이고 당위적인 헛소동을 불식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신제도주의 이론을 이번 호의 특집으로 다루었다. 아직 우리의 현실에 밀착해 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지식을 이용하고 결합하는 실험은 대중운동의 확산과 함께 체계를 변형하는 가능성을 실천하는 기본 동인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신제도주의 이론의 타당성을 학계에 질문해 보기로 한 것이다.

독자들은 특집뿐 아니라 일반 논문들의 거의 대부분이 인물보다는 체계, 특히 소단위 체계의 흐름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을 터인데, 우리는 이러한 논의의 방향이 우리 사회에 널리 확산되기를 희망한다.특별기획으로는 대학교육에 관한 교수, 학생, 교사, 기업인, 공무원, 언론인 등 여섯 직업집단의 시각을 조사해 보았다.

대학의 일차적인 목적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직업체계의 재생산에 있다. 그러한 대학의 전형이 이스라엘의 네게브 대학이다. 네게브 사막 가운데 있는 이 대학의 교수들과 학생들은 정부의 지원 아래 사막을 개발하고 있다. 이 대학의 연구와 수업은 곧장 산업생산과 무기병참에 연결된다. 우리 대학이 현장을 통한 직업적 실천에서나, 수학을 통한 형식적 합리성에서나, 외국어를 통한 국제적 적응성에서나 유럽의 대학에 비교하여 많이 떨어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대학의 수학능력은 졸업시험 하나로 평가하면서도 기숙사(컬리지)의 튜터 제도를 활용하여 교수와 학생의 일상적인 토론이 모두 학생에 대한 평가로 이어지는 캠브리지나 옥스포드 대학의 거의 낭비적으로 보이는 교육방법과 현재 우리의 교육방법을 비교하여 효과를 측정한다는 것은 이만저만 불합리한 태도가 아니다.

주민이 3천 명밖에 안되는 조그만 읍의 도서관에서도 유럽에 있는 모든 자료를 열람할 수 있고 대출할 수 있는 도서관들의 연계 그물이 우리 대학에 마련되고 있는가? 이러한 사정은 대학만이 아니라 기업이나 언론, 국가기구에도 동일하게 해당될 것이다. 미쓰비시와 삼성을 비교하거나《슈피겔》과《조선일보》를 비교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우리는 우리 모두가 같은 진흙탕에 빠져 있음을 이해하고 병든 아이들이 서로 친하듯 우리의 사회 체계 자체를 변형하기 위하여 힘을 합쳐야 한다.

지식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그것 또한 체계의 부품일 뿐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 시대의 객관적 가능성을 가르고 밝히려는 역사감각에 토대하여 나날의 커뮤니케이션을 확대하고 결속함으로써 직업의 차원과 대중운동의 차원이 접합되는 방향만이 이기적인 자아중심주의를 억제하고 우리 사회를 견디고 살만한 것으로 변형시키는 전망을 열어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기획은 누구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직업 집단들의 자기반성과 상호이해에 기여하려는 것이다.모든 비판은 체계의 응고를 막아주는 장치이지만, 또 반성없는 비판은 파시즘을 조장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비판에 앞서 자기 안의 파시즘의 밀도를 낮추어야 한다. 저밖에 모르는 학자들, 제 집밖에 모르는 자본가들의 폐해를 우리는 이미 충분히 겪었다.

창간호의 머리말에서 이미 밝혔듯이《사회비평》은 이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운동하고 있는 온갖 형태의 파시즘에 대한 거절을 완강하게 지속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러한 거절은 먼저 자긴 안에서 운동하는 파시즘에 대한 거절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각오 또한 창간호부터 변함없이 지속되는 우리들의 결의이다.
특집·행위에서 제도로 : 신제도주의 이론

국가정책과 신제도주의·염재호
개인의 합리성과 제도의 신화까지 : 조직과 시장의 사회학·이재열
신제도학파 경제사의 성과와 한계 : 더글러스 노스를 중심으로·길인성
문학의 장과 아비튀스·현택수

특별기획 : 한국의 대학교육, 어디에 서 있는가

6개 직업집단의 시각 비교분석·염재호, 서병훈, 김용학, 송호근

고전산책

루소의《에밀》을 중심으로·김용민

인간과 사상

존 롤즈와 승계호 : 현대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갈림길·김주성

일반논문

개발의 문화와 '문화적으로 다듬어진 발전'·김경동
불협화음의 권리선언 : 포스트모던 건축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전형인가·이기식
사회적 상상의 복원 혹은 상징의 사회학·이기현
하버마스 : 비판적 사회이론의 정립과 정치적 실천의 회복을 위한 노력·장춘익
맑스와 서구중심주의·김세연
분단 후 한국사회에서의 '진보적' 투표행태에 관한 연구 : 1956년, 63년 대통령 선거를 중심으로·손호철
한국 민족주의의 기원 : 정치운동과 공공영역·김용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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