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언론사상사

허버트 알철 지음 양승목(충남대) 옮김

판매가(적립금) 35,000 (1,750원)
분류 나남신서 1236
판형 신국판
면수 682
발행일 1993-08-30
ISBN 978-89-300-82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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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도서 금액     35,000
밀턴에서 맥루한까지

'덕담'과 '예찬'으로 일관하는 우리의 '서평문화'가 싫어 마음을 독하게 먹었지만 충남대 양승목 교수가 번역한《현대언론사상사》(나남)을 읽으면서 '잘못 걸려 들었구나'하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그 누구든 이 책을 접하게 된다면 이 서평자의 그런 곤혹스러움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상하게도 우리 학계에는 번역을 깔보는 아주 못된 풍조가 만연해 있다. 그런 경향에 비추어 본다면 677쪽에 이르는 방대한 번역을 3년여에 걸쳐 꼼꼼하게 홀로 '직접'해 낸 양 교수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내야 마땅하겠지만 그건 우리 학계의 '치부'가 될 터인즉 오히려 3년의 세월을 보낸 양 교수의 게으름을 꼬집는 걸로 칭찬을 대신하자.

이 책을 읽으면서 갖게 된 생각은 전혀 엉뚱한 것이었다. 왜 우리나라에선 이런 책이 나올 수 없는 것일까? 언론사상이 없기 때문일까? 그건 결코 아니다. 이 책의 저자인 허버트 알철만큼 뛰어난 학자가 없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일까?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대학의 경직된 배타성을 비판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저자인 알철은 미국 존슨 홉킨스 대학의 교수이다. 그는 1차적으로 학생들을 위한 교재로 이 책을 썼다. 우리나라에선 대학교재라면 일단 일반인들이 손을 대지 않는다. 너무나도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현대언론사상사》는 아주 재미있다.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이 의도적으로 삽입되어 있다. 문장도 딱딱하지 않고 화려하다. 딱딱한 글에만 익숙해 있던 역자가 번역의 어려움을 토로할 정도이다. 책의 편집도 다분히 대중시장을 겨냥한 배려를 담고 있다.

그것이 바로 미국 자본주의의 상술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억지는 부리지 말자.
알철은 언론인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며 지금도 자유기고가로 맹활약하고 있다. 요컨대, 그는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의 성공적인 결합을 몸소 실천해 보이고 있는 인물이다. 우리 학계의 문제는 저널리즘을 지나치게 경멸한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정말 바람직한 의미의 산학협
동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 책의 내용에 앞서 형식에서 그 교훈을 얻어내야 할 것이다. 이제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이 책의 원제목은《밀턴에서 맥루한까지 : 미국 저널리즘의 배경사상》이다.

무려 3백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이름깨나 있는 서구 사상가들을 모두 다루고 있다. 교양 철학서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당연히 이 책은 언론사상의 '전문점'이라기보다는 '백화점'이다. 그건 이 책의 단점이자 장점이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건 어떤 사상가를 어느 위치에 얼마만한 면적으로 '진열'했는가 하는 점이다.

저자는 미국 저널리즘의 현실을 그러한 '진열'의 근거로 삼고 있다. 따라서 미국 저널리즘이 세계적인 '추세'임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 책의 번역 제목을《현대언론사상사》로 붙이기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지난 91년 국내에도 번역돼 소개된 바 있는 저자의 84년 저서《지배권력과 제도언론》(강상현·윤영철 역)에 비해 자본주의 언론에 대한 비판의 강도가 약화된 느낌을 준다. 언론에 가해지는 정치경제적 제약에 대한 관심이 언론사상으로 돌려지면서 철학으로 모든 걸 설명해 보고자 했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이유는 '화법' 또는 '전술'의 차이에 있는 것 같다.

《지배권력과 제도언론》이 공개석상에서 행한언론에 대한 준엄한 비판이라면 이책은 언론인과 소주잔을 나누면서 타이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언론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실용주의'라는 개념이 얼마나 잘못 오해되고 있으며 그 밖에 언론인들이 신봉하는 언론관행이 어디에서 연유된 것인지 저자는 언론인들에게 술잔을 건네가면서 자상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사실 제목에 걸맞지 않게 저자가 진정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의외로 소박하다. 그는 저널리즘은 오로지 눈앞의 현실이며 실천일 뿐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그 현실과 실천의 뿌리를 살펴볼 것을 촉구하고 있으며, '언론'을 스스로 창조해 낸 것처럼 자만하는 언론인들에게 제발 역사성을 회복하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언론이 오랜 기간 동안 미국 언론을 맹목적으로 추종해 왔지만 미국의 언론사상이 우리의 언론사상일 수는 없다.
'권언유착' '언론장학생' '촌지'라는 개념이 시사하듯이, 우리의 언론은 매우 독특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현대언론사상사'도 나아야 한다. 역자인 양승목 교수가 이 책의 다소 부풀려진 번역 제목에 책임을 지는 의미에서라도 그 과업을 지금 당장 시작하길 기대해 마지 않는다.
강준만(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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