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비평 9호

(주)나남출판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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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사회비평 S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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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199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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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동안 세계의 지성계는 이른바 "사회과학의 대실패"라는 자성적 인식에 부심하고 있다. 공산권의 몰락과 그것을 계기로 한 세계질서의 재편과정은 특히 비판적 인식을 지향해 왔던 지성계에 철학의 빈곤을 자인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그 강요의 주체가 '덜 사악한 악마'로서의 자본주의의 신축성이라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 때문에 비판적 지성의 당혹함은 한층 배가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질서의 재편과정을 주도하고 있는 힘은 신자유주의 이념과 그것의 행동원리로서 시장이다.

이 양자는 부르주아적 생활원리의 핵심기제이면서 동시에 금세기의 비판적 지성이 힘겹게 투쟁하여 왔던 바로 그 공격 목표였다. 그런데, 이십세기 말인 지금에 와서 그것의 현실적응력과 견인력이 새삼 확인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 앞에서 사회과학의 대실패 이상의 어떤 비장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실패에의 자성은 차단된 듯이 보이는 통로를 돌파하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전제이다.

자성적 성찰 없이 태어나는 비판은 추진력과 현실적합성을 상실한다.지난 삼 년 동안에 걸쳐《사회비평》이 새로운 사상의 모색과 관련된 일련의 주제로 특집을 꾸며 왔던 배경에서 독자들은 바로 이러한 의지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4호부터 시작된《사회비평》의 출구 찾기는 이번 호에 와서 어느 정도 마무리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다.

물론, 그간의 특집에서 시도된 다양한 시각과 탐구들이 예의 당혹감과 대안부재의 현실상황을 타개하는 데에 충분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적어도 철학의 빈곤이 운위되는 배경을 확인하고 비판적 지성의 취약점이 치유 가능하다는 점을 확신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조금은 여유를 가져도 괜찮치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특히, 이번 호의 특집에 상재된 네 편의 논문들이 비판적 인식의 지평을 확대하는 데에 바쳐져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김조년 씨의 논문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격변에 처해진 우리에게 역사변동에 대한 장기적 안목을 부여해 주는 데에 손색이 없다.

근현대 사상사는 위기와 극복의 반복과정에 다름 아니라는 담담한 인식으로부터 과거, 현재, 미래를 여유있게 수용하는 필자 특유의 인식론에 대하여 흔치 않은 단단한 논의를 개진하고 있다. 한편, 정치사상에 대한 몇 편의 무게 있는 논문을 이미 상재한 바 있는 서병훈 교수의 글은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다.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은 흔히 그것의 대칭적 이념인 사회주의의 명제에 빗대어 행해져 왔던 것이 그간의 관례였다고 한다면, 서병훈 교수는 오히려 자유주의 이념 내부로 과감히 진입해 들어가 그것의 논리적, 사상적 취약점을 하나씩 들추어내는 방식으로 신자유주의의 이념사적 의의를 현재화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지배력을 행사하는 이 시대에 그것의 극복방안은 바로 그 이념의 틀 속에 내재하고 있다는 예리함이 돋보이는 시도라 할 것이다. 이에 비하여, 이성형과 박길성 교수의 논문은 남미와 중국의 개혁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유럽공동체의 탄생을 계기로 선진자본국의 최근 변화가 관심의 주된 초점이 되어 왔던 저간의 정황에 비추어 중국과 남미의 변화 분석이 출구 찾기의 또 다른 실험 예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집 제목이 암시하듯이, '사상의 탄생'은 '전환의 고통'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에의 확인이 이번 호 특집이 바라는 최소한의 기대이다.이 시점에서 그동안 편집진들에 쏟아진 독자들로부터의 다양한 견해와 평가들에 대하여 간략히 언급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독자들의 평가는 대체로 두 가지로 묶을 수 있겠다. 하나는, 그간의 특집이(또는《사회비평》의 주된 관심이 한국사회의 변화상과 현안문제로부터 조금은 유리되어 있다는 질책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변동의 핵심을 거시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에 대단히 유용한 시각을 제시하여 주었다는 긍정적 평가이다.

우리는 전자의 질책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사회비평이 추구해 왔던 애초의 편집의도가 이제는 어느 정도 정착되었다는 자부심을 두번째의 평가로부터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현실에 대한 지성적 해부'라는《사회비평》의 기본지침이다. 우리는 다양한 저널과 대중매체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서 지성인들의 현실분석의 전형을 보여주고 이 지켜나가고자 하였다. 때로는 너무 현학적 논의에 치우쳤을 가능성도 인정하지만,《사회비평》나름대로의 엄격성을 보여주는 데에는 성공했으리라는 자부심도 갖고 있다.

사회현실과의 적실성에 주목하면서 지성적 엄격성과 품격을 갖춘 필자와 논문을 선보이는 데에 더욱 노력할 것을 독자들에게 약속드린다.이번 호부터〈연구노트〉란을 신설하였다. 이 창구를 통하여 많은 학자들로부터 연구에의 열정과 지적 탐구의 숨겨진 얘기, 그리고 자서전적 고백을 솔직담백하게 전해 들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번 호에는 일제하 노동운동사 연구에 정진하고 있는 김경일 교수의 글을 싣는다. 그 외에 다섯 편의 일반 논문과 서울대 민교협 주최 학술회의에서 발표된 세 편의 논문을 싣는다. 이 논문들은 편집과정에서 필자와 여러 가지의 논의를 거쳐 약간 수정 내지 보완되었다. 이번 호의 발행이 약간 늦어진 점을 너그럽게 양해해 주시기를 바라고, 또한, 지령 10호를 맞으며《사회비평》의 쇄신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도 아울러 밝혀둔다.
특집 : 전환의 진통과 사상의 탄생

위기의 역사와 극복의 사상·김조년
"우리는 이제 모두 사회주의자?"·서병훈
중국의 개혁 : 논리, 동학, 그리고 사회적 비용·박길성
라틴아메리카의 신자유주의 : '시장이 생산하는 자유'·이성형

고전산책

최제우의《동경대전》·김인환
연구노트

노동계급의 역사와 그 현대적 의미에 대한 탐구·김경일

일반원고

정치권력과 대중조작·이효성
분석맑시즘 비판·이상호
계급론의 방법론적 고찰·김호균
민주주의와 소유집착적 개인주의·황주홍
사회적 합의주의의 정치경제적 조건·선한승
푸코의 니체 사상에 대한 인식과 그 변화과정·안외순

오늘의 쟁점 : 한국 경제에서의 독점과 종속

한국사회를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김수행
한국 자본주의와 독점재벌·홍장표
한국자본주의와 경제적 종속의 전망·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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