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시장, 닫힌 정치

송호근(서울대사회학) 지음

판매가(적립금) 10,000 (500원)
분류 사회비평신서 45
면수 419
발행일 199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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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민주화와 노동체제

사회학이 당대의 현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학문이라면 21세기를 눈앞에 둔 현재만큼 사회학자들을 당혹케 한 시대도 드물 듯하다.
과거의 것은 죽어 가는데 새로운 학문의 패러다임은 아직 나타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송 교수는 비동시
성의 동시성을 특징으로 하는 우리시대 한국사회의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탐색해 온 사회학자 중 한 사람이다. 《한국의 노동정치와 시장》, 《시장과 이데올로기》 두 권의 저서를 통해 노동·시장·국가의 역동적인 상호관계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경주해 왔던 저자는 이 책에서 기존의 연구를 심화하고 확장한다.

이 책을 일관하고 있는 문제의식은 노동체제의 민주화다. 여기서 노동체제란 세 가지 요인, 즉 '노동시장', 노동정책 및 통제의 '노동정치', 노동운동의 '노동계급정치'로 구성되는 국가 - 시장의 결합방식을 선명히 드러내 주는 영역이다. 이 책을 구성하고 있는 대변혁기의 한국사회, 민주화와 노동정치, 노동계급의 정치, 노동시장과 복지정책에 대한 설득력 있는 이
론과 분석을 통해 저자는 이러한 노동체제의 민주화를 위한 조건들을 다각도로 탐색하고 있다.

이 책에서 송 교수가 잠정적으로 도달한 결론은 사뭇 비관적이다. 현재 문민정부의 노동정치는 1차적으로 보수여론과 국민의 안정심리에 의존하지만 그것이 미진할 때는 과거와 같이 물리력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열린시장'이 만들어 내는 사회적 모순과 폐단을 기존의 권위주의적 '닫힌 정치'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분석의 핵심이다.

요컨대 노동부문은 아직 민주화의 초보단계도 경험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사회적 타협을 추진할 수 있는 현실적인 힘과 조직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민주체제가 노동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정당한 자유경쟁'이라면 자본과 노동 사이에는 독백논리가 아닌 서로의 실체를 인정하는 대담(dialogue)논리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 점에서 송 교수는 우리사회의 미래를 위한 패러다임으로 주목받고 있는 사회적 시장경제, 사회 민주주의, 시장사회주의 등의 한국적 적실성에 대해 보다 신중한 검토를 제안하고 있다.

동구 사회주의 몰락 이후 대안적인 사회체제로 각광받고 있는 이 모델들을 그것이 등장하게 된 서구의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매개적으로 직접 적용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은 주목할 만하다. 더욱이 자본과 노동이 국제화하고 세계시장에서 국민국가들이 격화되고 있는 현재 이리국적 차원에서 사회적 타협의 여지는 축소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런 무한경쟁 속에서 과연 이 모델이 계속 살아남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은 계속 남는다.

자본주의 시장의 전횡을 비판적으로 해부하고 있다는 점에서 송 교수는 비판사회학자다. 그러나 그는 경험적인 분석을 중시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성급히 도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려 깊고 현실적인 비판사회학자다. 스스로 '경쟁의 정치사회학'이라 이름지은 노동문제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을 위한 그의 학문적 도전은 계속 주목받아야 할 것이다.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
국가와 시장의 결합구조론 : 경쟁의 정치사회학/대변혁기의 한국사회/민주화와 노동정치/노동계급의 정치 : 외부정치에서 내부정치로/노동시장과 복지정책 : 이론적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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