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비평 7호

(주)나남출판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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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사회비평 S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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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199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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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역사가 막을 내리려 한다. 이것은 종말인가. 아니면 또 다른 시작인가? 근착《타임》지의 에세이 The Year 2000에서 헨리 그룬발트는 이렇게 묻고 있다.돌이켜 보면 20세기의 역사는 잔인했다. 처음 반세기는 국가주의와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가 전세계를 전장터로 내몰았고, 나중 반세기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념의 허위의식이 인간의 모습을 외면한 채 증오에 찬 군비경쟁과 탐욕스러운 발전 논리로 세계를 지배했다.이제 20세기라는 긴 터널의 끝에 우리는 다다르고 있다.

터널의 끝은 또 다른 터널의 시작인가, 아니면 넓게 펼쳐진 초원인가? 사회과학도들의 탐구작업이 요구되는 때이다.지난 호에서 우리는 이러한 물음의 하나로 "다시 보는 자본주의 ― 그 동태와 모순"이라는 특집을 엮었다. 사회주의 체제의 종말이 강요하는 자본주의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자는 의도에서였다. 하지만 이러한 자본주의의 과거와 현실에 대한 논의는 더 나아가 자본주의의 미래의 얼굴을 보고 싶어하는 우리의 충동을 자극했다.

그것이 이번 호의 특집 주제를 "국제체제의 변화와 자본주의의 미래"로 엮게 된 까닭이다.현실은 통속적인 영화에서처럼 긴 터널의 끝이 푸른 초원으로 이어지는 미래를 기대하기에는 너무 가혹하고, 불투명하다. 인간의 얼굴을 한《25시》의 요한 모리츠가 이유없는 죄명으로 13년간 105군데의 수용소를 전전하다가 전쟁이 끝나 돌아온 자리에는 사랑하는 아내 수잔나가 소련군 병사의 겁탈로 잉태하여 낳게 된 네살짜리 아들이 있었고. 미군측에 지원하여 또 다른 전쟁에 참가하기를 권유하는 큰 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귀향 후 18시간의 자유밖에는 갖지 못했다는 절규와 함께 요한 모리츠는 전가족의 미군 지원서를 제출하게 되고, 미군 장교에 의해 사진을 찍히면서 웃으라는 강요를 당한다.외견상의 자본주의의 승리는 결코 인간의 승리가 아니다.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로 희망의 미래가 열렸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잠시 동안의 착각일 뿐이다. 20세기의 끝에 서서 그런대로 미래에 대한 작은 기대와 가벼운 흥분에 사로 잡히게 되는 것은 다만 더 이상 이데올로기의 투쟁이 인간의 얼굴을 짓뭉개는 일은 없으리라는 기대심리 그 이상은 아무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이제 사회과학도들의 할 일은 하나 하나 우리의 모습을 재확인하고 앞날의 얼굴을 그려보는 가운데 인간의 참 얼굴을 찾아보는 일일 것이다.많은 물음 가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구해보려 했다. 먼저 사회주의 체제의 변화로 야기되는 국제질서의 형성은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날 것인지? 신중상주의가 자유무역 체제에서 보호무역 체제로의 이행을 재촉하여 세계질서가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로 치닫게 될지?

아니면 EC와 같은 지역간의 경제 블록화 현상이 국제질서의 재편에 주요한 변수로 작용하게 될 것인지? 정치 군사적인 맥락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는 지속될 것인지? 소련의 해체는 어떠한 새로운 사회적 질서를 수용할 것인지? 즉 자본주의적 소유제도가 사회주의적 질서를 대체할 것인지? 서구 자본주의의 생산체계에는 어떠한 변화가 나타날 것인지?

줄여 말하면 세기말을 당하여 변화의 소용돌이를 일구는 태풍의 눈들을 찾아보는 작업이다. 우리는 먼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양대 세력의 균형이 깨어지고 신중상주의의 조류가 몰려오는 시점에서 세계체제의 변화에 눈을 돌리게 된다. 정갑영은 "세계체제의 변화와 블록화"에서 세계체제의 변화에 대한 망을 사회주의 체제의 개혁과 세계경제의 블록화라는 두 요소를 중심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한 이국영의 "신국제질서와 국민국가 성격의 재조명"은 새로운 국제질서의 태동에서 전세계화(globalization)라는 현상이 국민국가의 성격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를 밝히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 글에서 그는 국제질서는 국민국가에 의해 매개되는 생산관계를 기반으로 형성된다고 주장한다.다음으로 우리의 관심을 끄는 주제는 20세기를 양분하여 지배했던 미국과 소련의 미래에 대한 전망이다.

미국에 대해서는 21세기에도 국제 정치 경제질서를 주도하는 헤게모니를 유지할 것인지가 최대의 관심이고. 구 소련의 경우에는 시장경제 체제의 도입에 따른 사회체제의 변화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가 주된 관심이다. 홍규덕의 "탈냉전시대 : 미국 외교정책의 좌표와 과제"는 미국 헤게모니의 미래를 균형있게 전망하고 있다. 폴 케네디 류의 헤게모니 쇠퇴론과 조셉 나이 류의 지속론을 대비시켜 냉전체제 이후를 조감하며, 미국 외교정책의 과제로 도덕성의 회복을 지적하고 있다. 한편 황태연의 "소련의 해체와 새로운 소유권 정책의 모색"은 맑스의 소유권 제도에 대한 이론을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해석이 지닌 오류를 적시하고,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에 따른 사유재산제의 도입이 초래한 문제는 맑스의 이념을 제대로 현시하지 못한 전략적 실패라고 지적한다.

이 글에서는 오히려 중소기업 중심의 협동조합 기업을 통한 새로운 소유제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이 두 논문의 공통점은 20세기의 양대 세력이 직면한 문제를 변화에 대한 적절한 대응전략의 불비에 기인한다고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끝으로 대량생산 및 대량소비로 인류가 당면한 위기로부터 자본주의 생산체제의 변화와 환경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하는 점이 또한 우리의 관심을 끈다.

김균은 "포스트 포디즘 : 현대 자본주의의 장미빛 내일?"에서 대량생산 체계의 주역인 포디즘의 위기를 지적하고 조절이론의 입장에서 변화 가능성을 전망하고 있다. 특히 피오르와 세이블이 주장하는 유연전문화에 의한 생산체계로의 제 2 차 산업분수령을 바탕으로 한 요맨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한 점검을 시도한다. 한편 김형철의 "환경문제의 세계화 추세와 공공재"에서는 환경문제의 심각성이 역사의 종말보다는 인류의 종말을 초래할 수 있다는 입장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한다.

그는 환경문제를 공공재의 문제로 보고 시장경제 체제에서 나타나는 수인의 딜레마의 관점에서 협동 가능성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야만 인류의 종말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결국 미래는 불확실성과 복잡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 우연한 상황의 변화는 인간의 이성적, 합리적 추론에 선행하여 역사를 지배하는 힘을 갖고 있다. 확실한 변화의 조짐을 잉태한 20세기의 벼랑에 서서 자본주의의 미래와 국제체제의 변화에 대한 조망을 하는 것은 이제 11시를 넘어 자정으로 달리는 시간 속에서 새로운 선택의 결과가 초래할 인간의 모습에 대한 실오라기만한 믿음 때문이다.

우리는 웃음을 강요당하는 사진을 찍히기 전에 몇 시간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까?특집의 글들 이외에도 우리는 많은 좋은 글들을 얻는 행운을 가졌다. 일반 논문으로 실리게 된 박이문의 "자연과학과 인문과학", 한완상의 "한국에서 시민사회, 국가 그리고 계급 : 과연 시민운동은 개량주의적 선택인가?" 윤진표의 "현대 국가 형성의 문화적 특징 : 인도네시아, 태국 및 베트남에 관한 비교연구", 김호기의 "한국의 성장모델"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선거의 정치경제학"과 "지배연합, 저항연합 그리고 민주화"로 엮은 두 묶음의 기획도 작금의 한국 사회에서 한번 짚고 넘어 가야 할 현상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았다.일반논문 가운데 한완상의 글은 4월 23일, 24일 양일간 서울대에서 개최된 한국정치학회와 한국사회학회의 공동학술대회에서 기조연설로 발표되었다.

한국의 정치만능과 시민사회를 주제로 한 이 학술대회에서는 국가와 시민사회의 형성과정과 한국적 특수성에 관한 진지한 논의가 진행되었는데, 한완상의 이 논문은 논의의 전반적 면들을 파악케 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에 이번 호에 게재하였다. 또 한편의 기조연설인 서정갑의 글은 본인의 고사로 함께 게재하지 못하였음을 밝혀둔다.김호기의 글은 프뢰벨의 논문을 발췌하여 번역한 것인데, 프뢰벨은 국제노동분업 체제에 관한 독자적인 이론을 개발해온 학자로 알려져 있다.

1991년 프뢰벨은 한국 경제발전과 산업정책에 관한 연구차 내한한 바 있었는데, 당시의 연구결과를 귀국 후 편집자에게 보였었다. 이 글은 최근 한국의 경제발전에 대한 귀중한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판단되어, 번역을 의뢰하였다.지난 호의 특집들이 사회과학계에서 활발한 지적 토론의 장을 여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 우리는 그 의의를 부여하고자 한다. 이번 호의 글들도 우리 사회의 미래를 조감하는 하나의 작은 지표로서 또 다른 지적 논의의 촉매 역할을 했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바램이다.나데오스의 밤은 깊어가지만 우리의 담론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다.
특집·국제체제의 변화와 자본주의의 미래

세계체제의 변화와 블록화·정갑영
신국제질서와 국민국가 성격의 재조명·이국영
탈 냉전시대 : 미국 외교정책의 좌표와 미래·홍규덕
소련의 해체와 새로운 소유권 정책의 모색·황태연
포스트 포디즘 : 현대 자본주의의 장미빛 내일?·김 균
환경문제의 세계화 추세와 공공재·김형철
한국의 성장모델·김호기 옮김(프뢰벨)
현대 국가 형성의 문화적 특징·윤진표
자연과학과 인문과학·박이문
한국에서 시민사회·국가 그리고 계급·한완상

기획 Ⅰ·지배연합, 저항연합 그리고 민주화

민중연합, 민주연합과 한국의 민주화·백종국
민주화 과정에서의 국가와 지배연합·김석준
한국 사회의 민주화, 사회변혁 그리고 피지배연합·강문구
대기업의 신경영전략과 작업장 권력관계의 변화·박준식

기획 Ⅱ·선거의 정치경제학

선거와 경기변동·김인철
선거와 정치불신·김용호
선거개혁론·김광웅
선거 저널리즘 위기·윤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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