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비평 5호

(주)나남출판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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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사회비평 S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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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199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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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이란 현실세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자 개혁에의 의지이다. 비판과 개혁의식의 수준과 방향, 현재적 모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대단히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이데올로기적 갈등과 진통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더욱이 사회발전의 향방에 대한 합의기반이 협소하거나 특정집단에 의하여 그것이 강요되는 상황에서라면 지성의 촉각은 점점더 예민해지고 비판의 목소리는 생기를 더해 간다.

2년 전《사회비평》을 세상에 상재하던 때가 바로 그러한 시기였다. 그러면서 우리는 비판적 성찰의 생동력을 한 자리에 담아내는 공동적 문화공간의 확대를 구상하였고, 누구든지 허물없이 만나 자신의 세계관을 개진하는 담론의 교차로가 되기를 희망하였다. 창간사에 밝혔듯이,《사회비평》은 "이 사회 안에 감추어지고 왜곡되게 해석된 요인들을 들춰내고 비판하며 진실을 개진하려는 모든 문자행위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면서, 삶을 바꾸고 세상을 주체적으로 바꾸겠다고 꿈꾸는 모든 사람, 노동자와 농민, 학자와 작가를 찾아나서는 대장정에 오를 것"을 약속하였다. 진리추구의 행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신과의 대결에서 쉽사리 지치는 사람은 지성인이 되기를 그만두어야 한다는 막스 베버의 지적처럼,《사회비평》은 상충하는 시각과 이데올로기의 우열을 성급하게 가름하려 하기보다는 공동적 담론의 공간에서 허위의식은 스스로 허위의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다리는 인내의 자세를 선택하였다. 이러한 태도에 대하여 그동안 학계와 지성계로부터 많은 공감과 격려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무척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역으로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사회비평》은 일각에서 제기된 무색무취라는 냉소를 감당해야 했던 것도 사실이다.

다만 유색유취의 자세는 유용하고 바람직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사실상 지성적 사는 어떤 이념의 연속적 선택과정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선택행위는 정치적 변화에 민감하고도 탄력적인 적응력을 스스로 갖출 것을 요구받는데, 그러한 상황에서 비판적 사고를 논리적 임의성과 권력에의 욕구로부터 확연하게 구분하고 지켜낸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과제가 된다.

특히, 이념이 권력 (어떤 형태로든지)으로 연결되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진정으로〈자유로운〉 비판적 사고는 드물다.시각의 임의성과 권력의지를 최대한 견제한다는 관점에서, 오늘날 한국 사회의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자유주의적 이념의 부활현상은 주목을 요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1980년대 급진론적 사회변혁론의 위세에 밀려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다가 지난 시대에 대한 일종의 환멸과 허무의 심성을 배경으로 최근 문학, 철학, 사회과학 그리고 인문학 등에서 광범위하게 표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표출〉이라는 단순한 현상을 넘어서서 자유주의 이념과 그것을 탐지한 사회세력은 지난 날의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다시금 장악하기 위하여 새로운 응전의 자세를 보인다고 하는 편이 적절하다.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고전적 명제에 충실하자면, 자유주의 이념의 부활은 이념의 프리즘을 확대해 준다는 의미에서 사뭇 무시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의 변혁을 일구어 내었던 지난 연대의 사회운동 에너지들의 쇠퇴현상을 가속화하면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좀 석연치 않은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 유포되는 자유주의 이념은 종교운동, 노동자, 농민운동, 학생운동, 그리고 재야의 정치적 저항운동 등의 다기적 분절과 간극의 틈새를 비집고서 그 이데올로기적 기반을 치장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에,〈문화적 다양성〉이라는 고전적 명제의 배경에 놓인 무엇인가를 자꾸 의심하게 되는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무릇, 자유주의 이념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보수주의로도 진보주의로도 그 변화가 무쌍하였다는 점은 주지하는 바이다.

오늘날 한국의 자유주의 이념의 부활은 유화적 정치술, 안정적 경제성장에의 과도한 집착, 그리고 변혁에 대한 심리적 불안감 등과 같은 요인에 기초한다는 점은 일종의 상식일 것이다. 실제로 이것의 사회적 영향은 즉각 현실로 재현되었다. 수서사건의 여파 속에서 실시된 지방의회 선거에서 친여성향의 인사가 대거 당선된 현상은 그것을 입증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밖에 자유주의 이념의 현실적 위세는 도처에 존재한다.

급진적 이념에 비하여 자유주의 이념은 형식적이기는 하지만〈자유와 평등〉에의 전통적 호소력을 지니고 있기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쉽사리 동원하는 유리한 입지를 점하기는 하지만, 민주개혁에의 범위와 여지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것의 진정한 속셈은 신중하게 따져보아야할 것임에는 틀림없다.이러한 관점에서, 이번 호에는 현단계에서 맑시즘의 위상을 검토해 보고자 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맑시즘 내의 새로운 중요한 시도로서. 맑시즘의 미시적 기초를 다지고 있는〈분석적 맑시즘〉은 기존의 맑시즘 논의에 숨통을 터주는 신선한 도전이며 모색이다. 신광영 씨는 분석적 맑시즘의 이론적 지형을, 김용학 씨는 방법론적 개인주의에 기초한 뢰머의 새로운 돌파구를, 임혁백 씨는 노동계급의 정치에 관한 쉐보르스키의 우회적 문제의식을 각각 정리해주고 있다.

이 특집은 한국에서 분석적 맑시즘에 관한 최초의 시도라는 의의를 지니겠지만, 과학적 사회이론으로서의 맑시즘을 절차탁마해온 필자들의 지적 고민이 섬세하게 드러나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주목을 끈다. 또 인간해방을 지향하면서도 그 목표를 저해하는 철학적 자기모순이 맑시즘의 논리체계에 이미 내재해 있음을 신랄하게 지적한 서병훈 씨의 글이나, 여행기 형식으로 씌어진 동구권 변화에 대한 김대환 씨의 글은 사회주의에 그같은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현실에 대한 본격적 문제제기이다.

특히, 후자는 우리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말하는 동안 그들은〈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평범한 사실을 깨달아야함을 수긍하면서도 또다른 곳을 응시하여야 하는 필자의 불편함을 솔직한 필치로 보여주고 있다. 그 밖에 경험적 지표에 근거하여 세계체제의 구조변화의 윤곽과 자본주의 발전전략의 한계를 제시하는 논문들인 이수훈 씨와 신윤환 씨의 글도 특집과 관련하여 상호조명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공통적 관심사인 자본주의적 발전의 폐단과 구조적 수정의 필요성에 비추면, 동구권의 변화를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성으로 곧장 연결시키는 논리적 비약과 이데올로기적 의도는 어느 정도 제어될 수 있을 것이다.이번 호에는 수준높은 논문들을 많이 게재할 수 있게 됨을 독자들과 더불어 기쁘게 생각한다. 글의 수준 때문에 대중적 접근에의 어려움이 야기된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지만, 인문학적 전통과 지성적 사고의 엄격성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려는 우리의 태도의 정당성은 입증되리라고 믿는다. 이것이 이 시대에 공존하는 여타의 대중학술지와《사회비평》을 구분하는 기준이라고 스스로 생각해 본다. 좋은 글들을 보내주신 필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지면이 초과된 관계로 부득이 다음 호로 넘길 수밖에 없는 글을 주신 분들에게는 너그러운 혜량을 구하고자 한다.
특집 : 현대 맑시즘의 좌표와 미래

Ⅰ. 분석적 맑시즘의 도전

맑스주의의 위기와 분석적 맑스주의·신광영
분석맑시즘에 대한 한 변론 ― 엘스터의 방법론을 중심으로·김용학
자본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전환의 비용 ― 쉐보르
스키의 분석적 맑시즘·임혁백

Ⅱ. 사회주의의 변화와 적응

〈해방 민주주의〉의 실종 ― 포스트 맑시즘의 도전과 맑스의 고민·서병훈
칼 맑스에서 부다페스트로 ― 동구의 개혁과 맑시즘의 운명에 대한 인상기·김대환

논 문

탈 냉전시대의 제 3 세계 경제발전 전략·신윤환
세계자본주의의 추기와 추세·이수훈
우루과이 라운드와 농민·농업, 그 총체적 이해· 박길성
김지하의 담시·김인환
합의로서의 합리성 ― 하버마스 비판이론의 경우·박이문
한국의 국가, 그 생성과 역사적 추이·전상인

고전산책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김성국

인간과 사상

조소앙, 민족해방에의 한 비극적 투신·정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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