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호의 〈한국언론과 출판저널리즘〉을 읽고
매체명 : 한국행정연구원   게재일 : 2002-07-11   조회수 : 9112

한국행정연구원 | 2002. 7. 11.

 

조상호의 〈한국언론과 출판저널리즘〉을 읽고 

 

 

독서란 참으로 놀라운 경험임이 분명하다. 이 책에 마음을 두면서 나는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폭발적이고 섬세한지를 배웠고, 마지막 페이지를 닫으면서는 삶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곱씹어 보기 시작했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소박하지만 결연한 신조를 품고서, 쉽게 팔리지 않고 오래 팔리는 책만을 만들어 온 저자의 정체성 찾기와 ‘나와 남, 나와 세계, 我와 非我’의 뜻을 걸어온 “나남출판”의 당당함이 전체적으로 잘 묻어난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 책은 출판이 세상을 보는 창(窓)으로서의 기능을 어떻게 담당해 왔는가를 사회과학 출판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그에 대한 평가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출판은 세상을 보는 창(窓)이다. 동굴의 어둠이 깊을수록 열린 세계에 이르는 빛줄기는 고귀하지만 어둠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계제(階梯)일 수도 있다’라는 문구로 책의 처음과 끝을 끌어안고 있는 점은 암울한 현실을 버텨온 출판저널리즘의 진통을 잘 시사해 주고 있다. 무엇보다 언론개혁과 언론의 바람직한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회자되는 시점에서 느꼈던 시대적 절박함과 심리적 간절함을 해소시켜 준 책이었다. 그러한 갈망은 행정학을 연구하는 입장에서도 민주성ㆍ투명성이라는 이념적 틀을 환기시켜 주었다.

이 책은 급류의 현대사를 직접 헤쳐온 저자의 관점에서 1970년대 한국출판의 구조변동의 정치사회적 배경과 그 인적 구성의 특징, 비판적 지식인들에 의해 주도된 출판운동의 언론기능 수행방식, 1980년대 사회과학 출판의 인적ㆍ질적 특성과 출판의 언론기능 변화를 살피고 있다. 사회비판적 출판의 주체로서 언론탄압의 칼날에 맞섰던 해직기자와 권위주의의 껍데기를 깨치고 나온 해직교수, 제적학생이 등장했는데, 그들이 촉발한 ‘출판의 구조변동’은 대안적 언론행위를 낳았다. 이 책은 그러한 출판의 구조변동을 인적 구성의 변화와 출판문화의 변화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파악하고 있는데, 특히 저자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이들 새로운 출판인들과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책들이 한국사회에서 어떠한 언론기능을 수행하였는가 하는 문제였다. 이 문제는 권위주의 통치의 오랜 지속과 맞닿아 있기에 책의 중반부는 1970~1980년대 정치사회적 변동과 언론상황을 담담하게 그려나가고 있다. 그동안 ‘언론의 자유’가 ‘언론사의 자유’를 포장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던 적도 있었다. 앞으로는 ‘언론매체’, ‘대중매체’가 곧 ‘언론’으로 오도되는 일은 없어야겠고, 출판의 언론기능이 사람들의 세계관을 전환시키는 데 있어서 많은 기여를 하길 기대해 본다.

창가의 커튼을 젖히고 들어온 바람이 역사의 향기를 품어다 주는 듯하다. 과거를 평가하지 않는 사람은 현재도 없고 미래의 발전도 없을 것으로 믿는다. 지난날의 우리는 순수를 추구했고, 이번의 책 읽기는 역사의 순수성을 평가하는 정신적 흡수의 기회였다. 특히, 이 책의 중반부를 읽어나가는 동안 왼손에는 사상을 오른손에는 양심을 두고 타는 목마름으로 갈구했던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y)들과 동행했던 모처럼의 시간여행은 쉽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이다. 내가 누렸던 나날들은 그 나름대로 낭만적인 세상이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 들여다본 한국의 언론ㆍ출판과 현실 사이에 흐르는 강은 너무나 깊고 도도했다. 그러한 시대적 부조화를 메우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더 외부의 상처를 이겨내야 할까?

이 책은 한국의 언론과 출판이 올바르게 자리매김할 터전을 일구어 주었다. 그러기에, 뒷모습이 아름답기를 바라는 한 출판사 발행인의 미처 못다 부른 자화상의 노래를 뛰어넘어, 우리네 현대사 속으로 굽이굽이 메아리치는 간절한 떨림을 안겨 줄 것이다. ‘다음에는 나남이 내놓을 책이 무엇을 다루고 있을까?’ 하는 기대와 궁금증으로 설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왜냐하면 나남이 세상에 내놓는 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객관화시키는 훈련을 시켜 줄 뿐 아니라, 가슴 저미는 자아성찰과 살아 있는 지식으로 세상을 보게 하는 시각을 주기 때문이다. 그만큼 개인적으로도 저자의 언론ㆍ출판에 대한 사상, 관점, 철학을 흠모하고 또한 존경한다. 책이란 눈으로 단순히 읽는 것 이상의 영감을 주기도 한다. 이 책은 언론과 출판의 구조적 기능에 대해 눈을 뜨게 해준 보배 같은 책이다. 무지한 어린 후배에게 책을 통해 넓은 세상을 보도록 격려해 주셔서 무한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이러한 미약한 글이 행여 누를 끼치지 않길 바라며, 나의 성장을 아름답게 지켜봐 주신 선학(先學)의 미문(美文)에 감히 사족을 달아본다.

 

글 | 김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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