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을 창조한 안도 다다오의 홋카이도 '대두불'
작성일 : 2024-04-05   조회수 : 15

설날 연휴 중에 아내와 함께 홋카이도를 찾았다(2023. 1.22∼25). 서너 차례 왔던 곳이고 3, 4년 전에는 아이들과 함께하기도 했다. 이번 겨울은 12월 중순까지 이상고온으로 수목원 일을 한참 동안 했는데, 그다음 한달 반은 계속되는 영하 15도 안팎의 강추위에 시달렸다. 기상이변으로 북극 한파가 고기압과 저기압의 사이를 뚫고 내려왔다고 한다. 설국(雪國)에서 온천이라도 했으면 싶어 오랜만에 여행사 깃발을 따라나섰다. 여러 해 연례행사로 겨울철이면 한두 번 아내와 함께 대중교통편으로 직접 온천료칸을 찾는 여행을 즐겼는데, 이곳은 교통편이 불편하여 어쩔 수 없었다. 3년 동안 코로나 한파로 굶주렸던 여행사가 여행길이 다시 열리자 그동안의 손실을 밀려드는 여행객에게 일거에 보상받으려는 듯한 촌스러운 탐욕을 보이는데 실망했다. 특히 여행사가 준비한 식당음식이 그랬다. 10여년 전까지 횡행했던 싸구려 여행의 데자뷔였다. 처음으로 토하기도 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위도가 같은 이곳의 설경만은 여전했다. 10년 전 설날무렵 바이칼 호수를 가기위해 2박 3일 동안 몸을 실었던 시베리아 횡단열차 차창을 스쳤던 자작나무 숲들이 여기서는 손에 닿을 만큼 가까이 눈 속에서 나를 반긴다. 우리나라 면적 80퍼센트에 달하는 광대한 설국의 원시성이 자연 그대로 펼쳐진다. 영화 속의 ‘오겡키데스카’라고 안부를 묻는 연인의 외로운 외침이 메아리치는 안타까운 낭만의 설원이기도 하다.

 

삿포로에서 안도 다다오의 작품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우연한 행복이었다. 귀국 비행기의 남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한 듯한 가이드의 관광일정에 없던 돌발 선택에 그동안 겪었던 단체여행의 불편함이 일거에 씻겨 나갔기 때문이다. 물과 빛, 유리와 노출 콘크리트를 많이 사용하고, 바람, 나무, 하늘 등 자연과 밀접하게 결합한 건축 디자인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기 시작한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 2000년을 전후해서 한국에도 소개되기 시작했다. 그 무렵 파주출판단지에 지었던 나남사옥의 디자인도 노출 콘크리트 기법을 사용하여 그 영향이 물씬 풍겼다. 그러나 나중에 나오시마(直島)에서 찾아본 안도 다다오의 빛의 굴절까지는 흉내내지 못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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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 근처 “부처의 언덕”에서 어깨높이의 눈길을 헤치며 한참을 걸어가야 머리만 봉긋하게 지상으로 내민 거대한 석불을 만날 수 있다. 중요한 물건은 쉽게 보여서는 안 된다며 공간 체험의 기억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구상한 ‘보이지 않는’ 대불(大頭佛)로 향하는 공간의 드라마가 시작된다.

 

눈에 파묻힌 공원묘원인 마코마나이(眞駒內) 타키노레이안(滝野靈園)에 2015년 말에 완공된 대불이 있었다.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다. 빛의 공간을 강조하여 설계한 나오시마의 한 현대적 작품과는 또 다른 웅장한 경외심을 갖게 한다.

 

마코마나이 타키노 영원(靈園)은 홋카이도 삿포로시 미나미구 마코마나이의 완만한 언덕에 위치한 홋카이도 최대의 민영 영원이다. 총면적 약 54만 평에 이르는 부지의 30%에 약 7만 기의 묘소가 있다. 부지의 70%는 일반적인 영원이 그렇듯이 모두 공원과 산책로가 되어 있지만, 타키노 영원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대불과 함께 입구에 설치된 석상(石像)들 때문이다.

 

언덕 입구에는 뜬금없이 사람 키의 서너 배가 되는 거대한 모아이 석상 33좌가 도열해 사람들을 반긴다. 영원에 들어섰으니 겸손하라고 타이르는 것 같은 위압감은 떨칠 수 없다. 들어서는 문은 낮게 만들어 고개를 숙여야만 출입이 가능하게 한 우리 전통 서원(書院)의 설계와는 반대이다. 영원무궁이라는 뜻의 애국가·국가 가사 표현도 우리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이고, 일본은 “작은 조약돌이 큰 바위가 되어서 이끼가 낄 때까지”로 반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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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석상들을 손으로 만져 보니 천연 돌을 조각한 것이 아니라 시멘트로 가공한 일본사람다운 모작(模作)이다. 칠레에서 비행기로 5시간 가는 태평양 한가운데 이스터 섬에서 발견된 거대한 바위를 쪼아 사람 얼굴처럼 가공한 600개 넘는 모아이를 모사한 것이다. 모아이 석상이 일본에서는 낯설지 않은 모양이다. 이미 1960년 칠레 대지진 때 기중기를 보내 쓰러진 모아이 석상 복원을 도와준 감사의 표시로 7기의 모아이 석상 모사를 허락받아 미야자키 선메세 니치난 테마공원에 세웠다고 한다. 태평양 지진판을 함께하는 공동 운명체라는 인식이라도 같이 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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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 사찰처럼 입구에는 손을 씻을 물이 있고, 안도 다다오 설계 특유의 직사각형 연못수(水庭)은 눈 속에 깊이 묻혔다. 물로써 영혼과 마음을 정화시키며 신성한 경계인 물의 정원을 끼고 입장하게 설계했다고 한다. 꽃 피는 봄날 이곳을 다시 찾아 언덕을 뒤덮는 광대한 라벤더 꽃궁궐과 물의 정원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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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로 하늘을 덮어 만든 거대한 40미터 동굴 끝 빛이 쏟아지는 공간에 좌대에 앉은 대불의 발끝이 보인다. 이곳은 곧 웅장한 성전(聖殿)이 된다. 둥그렇게 뚫린 천장 위에 부처의 머리가 봉긋 솟아있고 어깨 위엔 눈이 소복이 쌓여 있다. 우리는 왜 대불을 하늘로만 솟구치게 높게만 만들려고 했을까. 좌불(座佛)로도 이처럼 경건함의 극치를 갖게 할 수 있다. 생명의 근원인 태(胎) 안 같은 동굴을 거치면서 이승과 저승을 사색하게 하는 통과제의를 먼저 거치도록 설계되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좌대 아래단에 종(鍾) 대신 놓인 커다란 징을 쳐 중생의 출현을 알린다. 향단(香壇)에는 앞서 예불 드린 사람들이 피워놓았을 향의 파란 연기가 학처럼 춤추며 대불을 껴안고 하늘로 피워 오른다. 푸르디 푸른 겨울 하늘을 광배(光背)의 아우라로 띄우고 거대한 석불이 인자한 미소로 우러러보며 합장하는 우리를 안는다.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도하는 뭉클함에 전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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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무렵 8개월 만에 다시 이곳을 찾았다(2023. 9.26∼29). 15만 그루의 라벤더가 연출하는 여름날의 장관은 놓쳤지만, 폭설 속에 묻혀 보지 못했던 안도 다다오의 속내를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지지난 해 조부모님과 부모님을 수목원에 수목장(樹木葬)으로 모시고 나면서 20만 평의 나남수목원에 10년 넘게 잘 자라고 있는 3천여 그루의 반송단지를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지 골몰하던 중이었다. 지난 해에 김형국 교수의 부탁으로 106세 장수한 김병기 화백의 수목장을 받아들였더니 막내 아들(김청윤)이 감사하다며 2미터 넘는 대작 철제조각상 ‘기도’를 기증해 인수전 옆 잔디밭에 세워 전통과 현대가 어우르는 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무언가의 손에 잡힐 것 같은 번뜩스치는 아이디어의 실체를 얻고 싶은 마음이 두 번째 발길을 재촉했는지도 모른다.

 

단체관광의 깃발을 벗어나는 여유도 만끽했다. 몇 차례 찾았던 휴화산인 노보리베츠의 고즈넉한 청수장 료칸에서 유황냄새 가득한 온천을 마치고 삿포로 역에서 지하철을 30분 타면 마코마나이역이다. 순환버스로 20분 동안 일본 자위대 부대를 거쳐 농촌의 한가로운 모습들을 지켜보다 보면 타키노 영원(靈園)이다.

 

홋카이도의 무성한 영원 부지 안에 15년 전에 축조된 석조의 대불이 혼자 덩그렇게 놓여 있는 타키노 영원의 풍경을 창조하는 프로젝트에 안도 다다오가 마법의 손길을 뻗친 것은 2012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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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은 총 중량 4천 톤의 원석에서 잘라 낸 무구(無垢)의 석상으로, 엄선된 돌이 사용되었고, 특히 부처머리는 얼룩 하나 없고, 갈라진 것처럼 아름답게 완성되어 있었다. 시야가 툭 터진 열린 평지에 말하자면 벌거벗겨진 채 진좌(鎭座)해서인지 어딘가 침착하지 않은 인상이었다. 높이 13.5m, 중량 1,500톤의 석조 대불의 장대한 조형에 상응하여 보다 정신성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예배 시설로 만들어, 석조 대불을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신비한 존재로 만들고 싶었던 안도 다다오는 인도의 아잔타, 중국 둔황 같은 석굴(石窟) 사원(寺院)을 떠올렸다.

 

대지의 암반을 빠져나온 인공 동굴이 그것이다. 그 폐쇄된 공간의 깊은 곳에서 돌에서 튀어나온 불상이 암반에 뚫린 구멍으로부터 희미한 빛을 받아 빛나는 모습을, 그 공간 체험의 감동을 홋카이도의 장엄한 풍경 속에서 재현했다. 석굴사원의 공간처럼 보다 영험스런 공간으로 보여줄 수 있도록, 대불을 땅에 묻는 것처럼 대불의 머리 아래를 라벤더의 언덕으로 덮는다는 아이디어가 "머리 대불" 발상의 원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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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는 모두가 대불을 중심으로 융기하는 라벤더의 언덕 속에 묻혀 있다. 그 때문에 완만한 골짜기와 같은 참배길을 걷기 시작하면 아직 대불의 '머리'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대로 언덕을 향해 다가가면 참배길 도중에 벽에 둘러싸인 수정(水庭)을 만난다. 벽을 따라 통로를 따라 가서 다시 우회하여 다시 원래 축선으로 돌아간다. 수정은 일상에서 비일상 세계로 참배객의 마음을 전환하기 위한 장치이다.

 

이 ‘경계’를 거쳐 언덕 앞에 뚫린 터널 앞에 선다.

 

동전 6분의 1의 곡선을 그리는 콘크리트 리브의 연속이 만들어내는 터널 내부는 희미한 어둠에 싸인 '태(胎)’ 속을 연상시키는 공간이다. 전체 길이 40m의 터널 통로 끝에서 마침내 대불과 대면하지만, 여전히 대불의 전모는 보이지 않는다. 터널을 지나 대불을 둘러싸는 원형 평면의 공간인 대불 회랑에 발을 들여 놓고 고개를 한참쳐들어야 처음으로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 밑에 대불의 얼굴을 숭배할 수 있다.

 

대불회랑은, 굳이 지붕이 없는, 분출의 공간이다. 여기에는 빛뿐만 아니라 비와 바람, 눈과 같은 자연이 그대로 안으로 들어온다. 이 자연의 움직임이 참배객과 대불과의 만남의 장소를 보다 신성하고 풍성하게 연출한다.

 

부처의 언덕은 약 15만 주 라벤더로 덮었다. 그많은 수량을 한꺼번에 조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공사 착공 전년으로부터 다른 장소에 재배용지를 확보해서 라벤다의 씨를 뿌려 동시에 길렀다. 2015년 본체 공사 완료 후 눈이 녹기를 기다려 부처의 언덕에 심을 수 있었다. 식재시에는 주민 자원봉사원도 대거 참가했다고 한다. 이렇게 봄에는 신록의 초록, 여름에는 라벤다의 옅은 보라색, 겨울에는 백은(白銀)의 색으로 물든 '대불의 언덕'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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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에 완성된 홋카이도 최초의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이 ‘물 위의 교회’다. 호시노 리조트 도마무에 인공 호수를 배경으로 한 심플한 기하학에 의한 구성으로 홋카이도의 풍부한 자연의 직감을 있는 그대로 체감할 수 있는 자연과 일체화하는 장치로 만들어졌다. ‘두대불’과 같이 드라마틱한 어프로치의 공간을 가진다.

안도 다다오의 작품은 우리나라에도 여러 곳에 있다. 노출 콘크리트 기법과 물의 정원, 무질서한 돌만을 바닥을 채운 공간 강원도 원주의 ‘뮤지엄 산’, 제주도 ‘섭지코지 글라스 타워’, ‘유민미술관’, ‘본태미술관’, 서울 ‘대학로 JCC아트센터’, 강서구 마곡 ‘LG아트센터’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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