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승 회고록:정도의 길, 고행의 길

성낙승 지음

판매가(적립금) 43,000 (2,150원)
판형 신국판
면수 484
발행일 2022-02-28
ISBN 978-89-300-41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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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도서 금액     43,000

정도의 실천자 성낙승 전 금강대 총장의 인생역정

 

이 책은 1960년 대한민국 최초의 공무원 공개채용시험에 합격한 이래 33년의 관료 생활, 20여 년의 기업ㆍ대학 생활을 통해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성낙승 전 금강대 총장의 회고록이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일제강점기와 6ㆍ25전쟁의 고난을 통과한 유년기, 다사다난했던 33년간의 관료생활에 이어 20여 년간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아리랑국제방송 이사장, 금강대 총장 등 다양한 기관의 수장을 지낸 직장생활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자의 부모님에 대한 지극한 효심을 엿볼 수 있는 부모님 묘소 및 고향집 단장기이다.

전쟁의 포연이 채 가시지 않은 1955년 고려대에 입학해 70년 가까이 인생의 목표를 향해 숨 가쁘게 도전해 온 저자의 인생사는 전후 허허벌판에서 출발해 오늘날 눈부시게 발전한 대한민국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서론 7

출간 축하의 글 - 이용만(전 재무부장관) 11

출간 축하의 글 - 성낙인(서울대학교 전 총장ㆍ현 명예교수) 15

 

 

제1장 내 고향 창녕

 

창녕은 소(小) 경주 39

 

부곡온천, 우포늪과 화왕산성 42

 

내가 자란 대지면 45

1. 창녕 성(成)씨 본향. 시조명당과 절신 47

2. 고려 충신 성사재 비각(碑閣) 49

3. 성씨 고가(成氏 古家)와 양파 시배지탑 50

4. 물계서원 원정비와 우계문집 책판 52

 

물계서원을 복원하다 53

1. 물계서원의 복원 추진 53

2. 물계서원의 소장자료 문화재 지정 55

3. 정부정책의 전환과 서원복원 승인지원 57

4. 물계서원의 착공과 복원 완성 58

 

 

제2장 나의 유년 시절

 

나의 친가와 외가 63

1. 나의 친가 63

2. 나의 외가 65

 

나의 출생과 유년 시절 66

1. 나의 출생 66

2. 분가와 유년 시절 67

 

나의 가족상황 70

1. 부모님 70

2. 아내와 자녀 71

3. 나의 형제자매 74

 

 

제3장 나의 학창 생활

 

고향에서 보낸 초등학교 시절 81

1. 홍역에서 기적적으로 회생하다 81

2. 유어초등학교로 전학하다 82

3. 8․15 광복으로 귀향, 셋방살이 84

4. 미락마을 토담초가집을 마련, 이사를 하다 86

 

고향에서 중학교 시절 90

1. 6․25전쟁 발발하다 92

2. 6․25전쟁으로 피란생활 96

1) 피란 가다 남동생 출생 97

2) 밀양군 부북면에서 피란살이 99

3. 전쟁으로 토담초가집 전소, 움막살이하다 99

4. 중학 졸업 후 고교 진학 포기, 농부가 되다 103

 

처음 타향살이 한 고교 시절 105

1. 고등학교 진학 경위 105

1) 경북고등학교 전학을 포기하다 110

2) 휴전, 정전협정이 체결되다 111

2. 고교 졸업 직전 가출을 결심하다 112

 

향학을 위한 서울 타향살이 115

1. 야반 가출하여 서울생활을 하다 115

1) 고교선배 자취방을 전전하다 116

2) 염리동 농가에 기숙, 농사와 가정교사를 하다 118

3) 농가에서 늦게야 대학 진학의 꿈을 키우다 120

2. 뒤늦게 진학한 대학을 졸업하다 121

1) 가출 1년여 만에 귀향하다 122

2) 자유당 정권 탄압으로 시․군으로 전전하신 아버지 125

3) 모친의 농사 도우려 하계방학 전에 귀향하다 127

4) 아버지의 한을 풀기 위해 관료의 길 선택하다 127

5) 뒤늦게 진학한 고난의 대학생활 청산하다 129

 

육군 복무 후 조기결혼 131

1. 육군훈련소에 지원입소하다 131

1) 논산 육군훈련소 입소 132

2) 마산 군의학교 수료 후 제5육군병원 복무 134

3) 4․19 혁명과 과도정부 출범 135

2. 육군 제대하고 조기결혼하다 137

1) 군 제대 후 공무원 공개채용시험 준비 137

2) 부모님의 강요에 조기결혼하다 138

 

 

제4장 나의 직장 생활(1961~2011)

 

관계(官界: 행정관료) 봉직 143

1. 하급공무원(8급: 서기)에서 출발하다 143

1) 공무원 공개채용시험 합격 143

2) 국무원사무처 배치, 국토건설본부 파견 144

3) 5․16 군사혁명 발생, 국무원사무처 복귀 146

4) 결혼 후 처음 서울의 셋방살이 전전하다 154

5) 아내의 초등학교 교사 복직 156

6) 지원 입대시킨 남동생 부상으로 곤욕 160

7) 연희동 무허가 집 철거로 쫓겨나다 164

8) 성산중학교와 창녕고등학교 설립허가를 돕다 168

2. 사무관(5급: 계장)으로 승진하다 171

1) 월권과 견제로 한 많은 설움을 이겨내다 171

2) 공개경쟁승진시험 3차 면접시험 혼자 탈락 설움 172

3) 대학 재학 중 설정한 3대 목표 추진 176

4) 종무과 종교법인계장으로 부임 177

5) 위장병 악화에서 기적적으로 회생하다 178

6) 민원인에게 보낸 편지, 금고 보관 소식 180

7) 16년간의 비구ㆍ대처 불교분규 역사적 해결 184

8) 전국모범공무원 선정 포상, 대통령표창 205

9) 예술과 예술행정계장으로 새마을활동 전개 206

10) 문화예술인 새마을 답사 작품발간 배포 208

11) 월남전 시찰답사 참전기록화 제작전시 209

12) 10월 유신 선포 당일 국전 개막 준비 곤욕 213

3. 서기관(4급: 과장)으로 승진하다 216

1) 문예진흥담당관을 거쳐 종무과장으로 전보되다 216

2) 비리 종교법인 취소로 소송을 당하다 219

3) 3대 종교 지도자 육영수 영부인 국민장 집전안내 220

4) 동교동에서 연희동으로 이사하다 221

5) 국장 승진 거절, 법무담당관과 신문과장으로 이동 222

4. 부이사관(3급: 국장)으로 승진하다 225

1) 홍보조정담당국장(홍보조정관)으로 임명되다 225

2) 10ㆍ26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발생 226

3) 아버지의 별세 227

4) 감사담당국장(감사관)으로 전보되다 229

5. 이사관(2급: 국장)으로 승진하다 233

1) 초대 매체국장에 임명되다 233

2) 중국항공기 춘천비행장에 불시착 사건 발생 234

3) ‘셀마’ 태풍과 대홍수로 피해를 당하다 235

4) 타의로 공무원 사직, 집권당 전문위원으로 차출 237

6. 관리관(1급: 차관보)으로 승진하다 239

1) 문화공보부로 복직, 종무실장으로 임명하다 239

2) 종교계 대표 성직자와 젊은 목회자의 등장 241

3) 10․27 불교법난 해결 247

4) 공보처 기획관리실장으로 이동하다 252

7. 문민정권 강요로 관료생활 청산 260

 

정계(政界: 집권당 전문위원) 봉직 264

1. 전문위원 차출 경위 264

1) 문화공보부 종무실장 승진 제의 사절 265

2) 6․29 선언, 언론ㆍ문화예술 자율화정책 수립 266

3) 제13대 대통령선거공약 개발 268

4) 미혼인 두 남동생의 성혼으로 무거운 짐을 벗다 271

2. 전문위원을 사직하고 문화공보부로 복직하다 273

 

국가공기업계(國家公企業界) 봉직 276

1. 한국방송광고공사의 탄생과 출범 277

2. 공사 설립 후의 방송광고 영업상황과 문제점 278

1) 방송광고 영업 방송매체 현황 278

2) 방송광고 영업상의 문제점 278

3. 공사 운영의 혁신 단행. 새로운 위상을 확립하다 279

1) 공사의 인력ㆍ조직 감축 및 경영혁신 단행 280

2) 방송광고 영업의 개선, 질적 향상 281

3) 공사에 대한 위상 향상과 이미지 개선 281

4.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재임 중 일화 286

1) 장관의 방송영상주식회사 사장 사표 요구 286

2) 방송광고공사 노조와의 격돌 288

3) 방송광고공사 후임사장 수시 거론 290

4) 국회의원 출마 권유 사절 291

5) 창녕중학교 총동문회 명부 발간 고충 293

6) 나의 인생목표 3모작 추진요건 완비 295

 

방송언론계(放送言論界) 봉직 298

1. 국제방송교류재단(아리랑국제방송) 이사장 298

1) 국제화시대, 종합영상센터를 건립 활용하다 299

2) 재단의 경영 부정비리 혁파로 정상화하다 301

2. 불교방송(BBS) 사장 303

1) 불교방송의 설립경위와 인연 303

2) 경영부실 부정사건 척결 304

3) 흑자경영으로 방송운영의 안정화 확립 307

4) 김대중 대통령 불교방송 방문 특강과 특정직 제의 311

5) 고향집 수리 위해 사장 연임 정관개정 거절 315

6) 어머니의 별세 315

7) 불교방송 사장 정년퇴임 319

3. 방송언론단체 임원활동 319

1) 한국언론인금고 융자심의위원 319

2) 한국방송공사ㆍ한국통신공사 이사 320

3) 문화방송ㆍ한국교육방송 자문위원 등 320

 

민간기업계(民間企業界) 봉직 321

1. 주식회사 동서(東西) 감사 321

2. 성재개발주식회사 회장 329

3. (재)동서식품장학회 이사 및 (주)동서 사외이사 330

 

정부관계기관(政府關係機關) 봉직 333

1. 대통령자문 방송개혁위원회 위원 333

2. 방송위원회 방송광고심의위원회 위원장 334

3.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자문위원 334

 

교육․학계(敎育․學界) 봉직 335

1. 금강대학교 총장 335

1) 총장 취임사 요지(2007. 2. 15) 337

2) 대학발전과 경영에 대한 소견발표 요지 340

3) 재임 4년간 내부체제 개혁과 대학 위상 제고 342

4) 총장 재임 중 일화 347

5) 노무현ㆍ김대중 대통령 서거 장례위원 위촉 참례 355

6) 학위수여식 식사 요지(2007. 2. 26) 358

7) 총장 임기만료 퇴임인사 요지(2011. 2. 8) 361

8) 고향집 수리 위해 총장 유임 요구 사절 367

2. 대학교 초빙교수와 겸임교수 368

1) 천안대학교 초빙교수 368

2)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369

 

 

제5장 고향집과 부모님 묘소 단장․수리정비

 

고향집 내외주변 정비단장 373

1. 창고를 철거하고 집 안 우물을 메우다 375

1) 집 앞 돈사 철거, 서편 담장 축대 조성 375

2) 집 안 화단 조성, 집 뒤 두충나무 제거정비 376

3) 대문 앞ㆍ진입로 변 조경공사, 철문 설치 376

4) 집 앞 진입로 확장 포장, 매실단지 조성 378

2. 집 안에 상수도 가설공사 379

 

부모님 묘소 정비단장 381

1. 부모님 묘소를 대대적으로 정비하다 381

1) 묘비 문안 작성, 감수 필사 381

2) 묘비 제작 383

3) 묘소 정비단장 384

2. 묘비 제막식을 거행하다 387

1) 비석문 내용 요지 389

2) 묘소 정비 후 정성스런 관리 391

 

고향집 보수정비 추진과 완성 394

1. 경북지방의 명문고택을 현지답사하다 394

2. 고향집을 보수정비하다 396

1) 고향집 토기와를 강판기와로 교체 396

2) 본채에 현판 설치 397

3) 본채 가옥수리 397

4) 사랑채 수리 399

5) 대문채 수리 400

6) 집 안 정원 등 정비 완료 401

 

묘소 단장․고향집 보수 후의 연이은 경사 404

1. 부모님 묘소 단장정비 후의 연이은 경사 404

2. 고향집 수리보수 후의 연이은 경사 405

 

 

제6장 인생 3모작과 3대 직업목표 달성 후의 전원생활

 

내 인생 3대 직업목표 초과달성 409

1. 목표달성 자격조건을 확보하다 412

2. 인생목표를 초과달성하다 413

 

인생 말년 고향의 전원생활 416

 

 

후기 회고록을 끝맺으며 419

 

 

부록 1 - 기고문․인터뷰 기사

 

“고향을 아끼고 그리며”(기고문 1 - 2002. 7. 1, 〈창녕일보〉) 427

 

“何日是歸鄕! 언제나 고향에 돌아가리오!”(기고문 2 - 2008. 12. 25, 창녕문화원 〈창녕문화〉 28호) 430

 

“말단공무원보다 더 검소하게 살아가는 부부: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성낙승․박영자 부부 이야기”(인터뷰 1 - 1993. 8. 1, 서울신문 〈월간 Queen〉 8월호, 위재광 기자) 433

 

“인성교육, 외국어특화교육, 행정실무교육으로 차별화된 인재 육성”(인터뷰 2 - 2009. 9. 21, 〈교수신문〉, 이영수 발행인) 440

 

“작지만 강한 명문대학, 소수정예 교육의 전당”(인터뷰 3 - 2010. 4, 〈뉴스저널〉 4월호, 박상민 기자) 444

 

“작지만 강한 비결은 외국어 특화교육”(인터뷰 4 - 2010. 7. 9, 〈동아일보〉, 지명훈 기자) 452

 

“미래 리더 꿈꾸는 학생들에게 최적의 교육환경 제공할 것”(인터뷰 5 - 2010. 12. 23, 〈조선일보〉, 류재광 기자) 455

 

 

부록 2 - 저자 약력 459

 

 

부록 3 - 사진 앨범 469

지은이ㅣ성낙승(成樂承)

1935년 경남 창녕의 농촌에서 5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중학교 재학 중 6ㆍ25 전란으로 피란생활과 집마저 전소되는 참상을 겪었다. 외가의 도움으로 고교 진학을 하였으나 더 이상 희망이 없었다. 휴전 직후 피란민들이 귀경하는 열차에 무임승차하여 야반가출을 감행하였다.

서울 변두리 농촌을 전전하다 외딴 농가에서 농사를 도우며 숙식을 해결하였다. 후덕한 주인의 배려와 충고로 천신만고 끝에 뒤늦게 고려대 법대를 진학 졸업하였다.

 

군청 말단공무원인 부친께서는 자유당 정권에 의하여 각 시군으로 전전하였으며, 모친 홀로 어린 자녀들을 거느리고 농사에 처절한 삶을 지탱하였다. 부친의 한을 풀기 위하여 관료의 길을 선택하였다.

남들은 승진에만 급급할 때, 공직 초기부터 미래를 대비하여 모진 풍상을 극복하며 동생들을 뒷바라지하며 과욕을 버리고 적선의 미덕을 쌓으며 주경야독으로 고려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진단사 자격을,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를,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 등 비장의 무기를 확보하여 인생 하반기를 아름답게 장식하여 왔다.

말단 8급 서기로 출발하여 정도를 실천하여 1급 차관보까지 승진하였으나 문민정권에 의해 물러났다.

 

30여 년의 관료생활에서 일관되게 정도를 실천하여 온 청렴성이 인정되어 국가공기업계, 방송언론계, 민간기업계, 학계로부터 초청을 수용 봉사하여 20여 년간 CEO로, 마지막에 대학총장을 봉직하고 팔순을 맞이하는 행운을 갖게 되었다.

부모님의 피땀 어린 고향집이 퇴락하여 부모님 묘소와 고향집을 새로이 단장, 수리하여 쌓였던 불효를 삭이면서 88세 미수를 맞아 고향을 오가며 고향집을 가꾸며 친지들과 함께하는 성 총장의 고향 전원생활이 한없이 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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