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기의 시는 고향 ‘영광’을 떠나지 않는다.”- 시인 김준태
장진기 시인의 고향은 전남 영광이다. 청년기를 서울에서 보낸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고향에서 지냈다. 이 사실은 시인의 시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키워드임이 틀림없다. 그의 시가 고향 영광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영광은 ‘신령스러운 땅’인 동시에 ‘비극의 고장’이다. 한반도에 최초로 불교가 들어와 세웠다는 명찰 불갑사와 소태산 박중빈이 득도한 원불교의 성지가 바로 영광에 있고, 한국전쟁을 전후로 하여 군민의 삼분의 일이 목숨을 잃은 세계사에 전례가 없는 고장도 바로 영광이다.
시인은 고향의 이러한 영광과 상처를 고스란히 껴안는다. 반가사유상의 얼굴에 띤 미소를 보며 내뱉은 “이대로만 살다 가면 되겠다”(<관상> 중)는 나직한 읊조림은 깨달은 자의 겸허함을 품고 있다. 동시에 그는 우리의 현실, 우리의 생활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가 오랫동안 반핵 환경운동을 한 사실 역시 시에서 알아볼 수 있다. 그가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은 서정적이면서도 투쟁적이다. 특히 5부에 실린 ‘꽃무릇 연작시’는 자연에 대한 시인의 절절한 연애편지이자 결기 어린 선언문 같기도 하다. “소원은 있으나 말하지 않으련다/ 내 몸이 지더라도 꽃무릇 필 터이니/ 아비를 묻지 말고서 꽃 필 때 다녀가거라”(<소원 꽃무릇>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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